[And 건강] 아이들 고민 줄어들까… 10대도 쓰는 ‘원형 탈모약’ 나온다

민태원 2023. 7. 4.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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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불청객 ‘원형 탈모증’
환자 17만여명, 65%가 20∼40대
어린 나이 발병할수록 예후 나빠
심적 고통 학교·직장생활 어려움

성인 뿐 아니라 10대도 쓸수 있는
美FDA 승인 신약, 한국 허가 신청

18세 이상 허가된 ‘올루미언트’
지속 사용해야 치료 효과 큰데
월 70만원 고가… 급여화 여론 커

면역계 이상이 원인인 원형 탈모로 학교·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소아·청소년과 20~40대가 적지 않다. 최근 중증의 원형 탈모에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신약이 잇따라 나오면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어도비 스톡 제공

“두 달 전 뒤통수에 원형 탈모가 크게 생긴 걸 발견했어요. 깜짝 놀라 병원에 가서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 3번 받고 연고도 발랐는데, 차도가 없고 오히려 1개가 더 생겼습니다.”

포털사이트 Q&A 코너에 올라온 상담 글의 일부다. 자신을 20대 여성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이직하면서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효과가 없어서 치료법을 바꿔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학생 A군(14)은 3년 전 머리에 둥근 탈모반이 몇 개 생기더니 3개월 만에 눈썹과 속눈썹을 포함한 몸의 털이 빠지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부모와 함께 병원을 찾은 A군은 학교생활 및 친구 관계의 어려움과 우울감을 호소했다.

이처럼 원형 탈모증은 갑작스레 찾아오기 때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유형에 따라 머리카락이 몽땅 빠지거나 눈썹 턱수염 겨드랑이털 체모 등 온몸에서 심각한 탈모가 진행되기도 해 당사자의 자존감과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이런 중증의 원형 탈모증에 지금까지 공인된 치료제가 없었다. 바르거나 먹는 스테로이드, 면역 조절제 등 기존의 고식적 치료법은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만족도가 높지 않고 스테로이드의 경우 부작용 우려도 있다.

지난해 6월 심한 원형 탈모 치료에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성인 대상의 첫 치료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것이다. 이 신약은 올해 3월 국내 허가를 받아 원형 탈모인들에게 희망이 됐다. 지난달 중순엔 성인뿐 아니라 10대도 쓸 수 있는 신약이 FDA 승인을 획득했다. 해당 치료제 개발사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를 신청했으며 최대한 빨리 한국에 보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조만간 원형 탈모 청소년들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7만명 ‘원형 탈모’ 고통

원형 탈모증은 유전적 요인 혹은 남성 호르몬의 영향에 의한 ‘남성형 탈모(M자형 이마)’나 머리 중심부 숱이 줄고 모발이 가늘어지는 ‘여성형 탈모’, 일시적 현상인 ‘휴지기 탈모’ 등과는 다르다. 예측 불가능한 만성 자가면역질환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등 어떤 자극으로 면역계(T세포)가 활성화돼 자신의 모낭을 이물질로 잘못 인식, 공격을 가하면서 비정상적 면역반응을 일으켜 모발이 빠진다. 전체 인구의 약 2%가 평생 한 번 원형 탈모를 겪고, 전체 탈모 인구의 약 10~15%를 차지한다. 이들의 5~10%는 가장 심한 형태인 전두 탈모나 전신 탈모인 것으로 보고된다.

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원형 탈모증(질병코드 L63)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17만7589명으로 2018년(17만605명)에 비해 7000명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환자의 65%가 20~40대로, 남성형 탈모와 달리 젊은 층에 많다. 소아·청소년도 9.7%에 달한다. 대한모발학회 부회장인 서울대병원 피부과 권오상 교수는 “면역질환이니만큼, 전반적인 알레르기 자극 물질 증가 등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아토피피부염이나 백반증, 홍반성 루푸스, 류머티즘성관절염 등 다른 자가면역질환을 함께 겪기도 한다.

전체 모발의 50% 넘게 빠질 경우 중증 원형 탈모에 해당하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 이후에는 20% 이상만 빠져도 대인 관계의 어려움에 처하기 십상이다. 상당수는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 충동, 사회적 고립, 학교·직장생활의 박탈을 경험하기도 한다. 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유박린 교수는 “특히 소아·청소년은 전두·전신 탈모의 비율이 높으며 어린 나이에 발병할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 아이들의 경우 가족의 경제적 부담도 크다”고 했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대부분의 원형 탈모증은 자연 회복되거나 치료에 잘 반응한다. 발병한 지 1년 미만이면서 1~2개의 원형 탈모반만 있는 경우 자연 회복률이 약 80%다. 문제는 약 40~80%에서 1년 안에 재발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특히 전두·전신 탈모는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고 수년에 걸쳐 호전과 악화를 반복할 수 있다.

‘심한 원형 탈모’ 신약 급여화 목소리

1년여 전 국내 만 18세 이상 중증 원형 탈모 환자에 사용 가능해진 올루미언트(성분명 바리시티닙)는 기존에 류머티즘성관절염·아토피피부염 치료에 쓰이던 약인데, 원형 탈모에 새로 허가받았다. 원형 탈모 발생에 관여하는 ‘IL15, 1FN-감마’ 등 주요 면역 물질들을 비교적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기전이다. 한국인이 포함된 두 가지 3상 임상연구를 통해 심한 원형 탈모 환자에서 가짜 약 대비 우월한 모발 재성장 효과(탈모 범위가 전체 두피의 20% 이내로 감소)가 확인됐다. 유박린 교수는 “임상시험에서 심한 원형 탈모 환자의 약 반수에서 모발 회복이 나타났고 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성공률은 더 높아진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써 보면 임상 연구보다 치료 성공률을 더 높게 느끼고 있다”면서 “약 복용을 중단하면 머리는 다시 빠지는 만큼, 지속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 혈전증이나 심혈관질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유 교수는 이에 대해 “주로 류머티스내과에서 사용 후 나온 얘기인데, 피부과 영역에서는 그런 위험성을 못 느끼고 있다. 내과 환자들의 경우 평균 연령이 높고 기저질환이 많으나 피부과에서는 원형 탈모, 아토피피부염에서 사용하는데 대부분 연령이 젊고 건강해 큰 문제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처음 청소년에 FDA 허가를 받은 ‘리트풀로(성분명 리틀레시티닙)’ 역시 원형 탈모 발생에 관여하는 면역 체계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지난 4월 의학학술지 랜싯에 발표된 임상연구(2b·3상)에 따르면 전체 718명 참여자 가운데 15%(105명)가 12~17세였다. 이 약을 치료받은 환자의 23%에서 6개월 후 두피의 80% 이상 모발로 덮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가짜 약 대조군은 1.6%에 그쳤다. 기존 치료로 조절 안 되는 미충족 청소년 원형 탈모 환자들에게 중요한 치료 옵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건국대병원 피부과 이양원 교수는 “의사들에게도 ‘신무기’가 생긴 셈”이라고 했다.

먼저 국내 도입된 올루미언트의 경우 월 70만원으로 약값 부담이 만만찮다. 급여화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교수는 “중증 원형 탈모는 현재 진단 코드가 없는 상태여서 학회가 올 초부터 진단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가을쯤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머리카락의 50% 이상이 빠지거나 기존 치료에 실패한 심한 원형 탈모인 경우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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