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러시아 용병 쿠데타 이후 푸틴의 운명
명분 없는 전쟁의 인질이 된 러시아 국민이 잠재적 인질범이라 볼 수 있는 용병그룹 바그너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추앙했다. 로스토프 시민들은 총구 방향을 모스크바로 돌린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에 열광했고, 러시아 정규군은 본토 방어에 실패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24일 프리고진의 선도 부대가 모스크바 턱밑까지 진격하면서 러시아 전체가 내전 공포에 휩싸였으나 하루 만에 기사회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바그너 그룹의 군사반란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군 주요 지휘관을 면담하는 등 사태수습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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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합해도 쿠데타 파장 이어질듯
러시아 본토 방어 취약점 드러나
푸틴 상처 입어도 대체인물 없어
」
비록 ‘하루 천하’로 끝났지만, 이번 군사반란은 전 세계를 긴장시킨 전례 없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발트 지역에 신속대응군을 증파했고, 흑해와 북유럽 인근에서 정보감시태세를 격상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만일의 사태란 러시아 내전 발발과 이로 인한 연방 체제의 붕괴 및 핵 통제력 상실 등 ‘급변 사태’를 의미한다. 막판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모스크바 200㎞ 지점에서 바그너 그룹이 회군하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하지만 바그너 그룹 등 계약직 의용군에 대한 러시아군의 의존도가 높아 향후 유사 사건이 반복될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프리고진은 왜 무모한 군사반란을 감행했을까. 그는 러시아군이 먼저 바그너 그룹을 겨냥해 미사일 공격을 하는 바람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지만, 공격 주체를 특정하긴 어렵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프리고진의 자기 정치를 지켜보면서 20년 된 동지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바그너 그룹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격전지 바흐무트를 점령한 것은 푸틴 대통령에겐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프리고진이 자신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 수준으로 인식하면서 전쟁이 ‘정치의 수단’이 됐다. 여기에 바그너 그룹을 사병화한 프리고진이 푸틴 정권을 향해 쏟아낸 가시 돋친 언행은 크렘린궁을 불편하게 했다.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군사반란 혐의를 불문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대신 사정 당국은 바그너 그룹에 들어간 국가보조금에 대해 전방위적인 조사에 돌입할 태세다. 푸틴 대통령이 국가보조금의 비정상적인 배분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특정했기 때문이다. 그가 최근 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금전 문제를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초기 광범위한 세무조사와 수사를 통해 야당과 결탁했던 올리가르히(신흥 재벌)를 척결했는데, 이번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사태를 정면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프리고진이 업무상 횡령 및 배임 등 별건으로 강제 송환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리더십에 상처가 났지만, 푸틴 대통령은 건재할 것이다. 국가 번영과 발전을 위해 러시아식 전통과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주권 민주주의’와 ‘슬라브주의’ 담론이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여전히 우세하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주권 민주주의의 절대선이다. 그를 대체할 정치인도 마땅치 않다. 군사반란이 큰 상처를 남겼지만, 그렇다고 푸틴 대통령을 끌어내릴 정도는 아니다. 이번 사태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중국과 북한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바그너 그룹의 군사반란을 계기로 호위사령부 등 친위대의 능력을 강화하고, 사상 통제도 더 집요하게 추진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식량난에 고통받는 북한 주민이 러시아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건으로 애꿎은 피해를 보게 생겼다.
올여름 한반도가 뜨거워지고 있다. 이번 달 중순 한·미는 핵협의그룹(NCG) 회의에서 처음 대면한다. 북한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인 오는 27일, 이른바 ‘전승절 7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을 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리도 다음 달 을지프리덤실드(UFS) 훈련을 역대급 규모로 치를 것이란 말도 들린다.
윤석열 정부는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정보 공유를 활성화하고 중국·러시아와도 소통해야 한다.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비해 범정부 차원은 물론 한·미 간에 실질적인 대응 계획도 발전시켜야 한다. 어느 때보다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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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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