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신파에 힘을 실어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패왕별희’를 만든 천 카이거 감독의 ‘투게더’라는 영화가 있다.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는 아들을 어떻게든 성공시켜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아버지의 부성애를 그린 영화다. 여기서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한다. 그리고 아들이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는 날, 자신의 초라한 존재가 아들의 체면에 손상이 갈까 봐 과감하게 아들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 대목에서는 살짝 신파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신파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는 대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해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과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관객의 눈물을 짜내는 경우가 많은데, 천 카이거는 이와는 다른 결말을 선택했다. 아들이 아버지가 떠났다는 것을 알고 콩쿠르 출전을 포기한 채 아버지에게 달려오도록 한 것이다.
기차역에서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아버지 앞으로 달려 나온 아들. 자신을 떠나려는 아버지 앞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아들의 열정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의 피날레를 연주한다. 사실 이 부분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피날레 중에서도 결말로 몰아가는 에너지가 아주 강렬한 대목으로 유명하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울림과 독주 바이올린의 현란함이 교차하면서 음악을 절정으로 몰고 간다. 여기서 아들이 연주하는 격정적이고 화려한 차이콥스키의 선율은 그동안 아들을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치 않았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겪었던 쓸쓸한 소외감에 대한 화려하고 찬란한 보상이다.
이 영화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도 장대하고 화려한 결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이다. 그의 음악이 자칫 우울하게 끝날 영화에 힘을 실어 주었기 때문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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