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부러진 횡성 ‘수호신 나무’ 예술품으로 환생한다
오래된 마을에는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다. 주로 은행나무와 소나무·팽나무·느티나무 등이다. 주민들은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기고 마을 초입에서 악귀를 쫓아주길 바랐다. 수호신 나무들은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왔음에도 수형(나무 모양)이 꽤 아름답다는 특징도 있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바람에 쓰러지기도 한다. 그런 수호신에 보답하듯 마을 주민들이 나무 지키기에 나선다. 강원도 횡성군 느릅나무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28일 횡성군 둔내면 두원리에서 수령 410년가량의 느릅나무가 결국 부러졌다. 이 나무는 1982년 횡성군이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해 왔다. 높이 23m, 둘레 6m로 가지가 무성하다. 가지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질까 지지대까지 설치했지만 많은 비가 내리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이 나무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두 전설이 있다. 이곳을 지나던 한 노승이 땅에 느릅나무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거목이 됐다고 한다. 또 어느 해인가 느릅나무가 잎이 피지 않고 시들해져 갔는데 경북 풍기에서 한 소년이 병으로 죽으면서 어머니에게 “제가 보고 싶으면 횡성 둔내 두원리에 있는 느릅나무를 찾아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후 어머니가 느릅나무를 찾아오자 죽어가던 나무에 잎이 다시 피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런 구전을 바탕으로 느릅나무에 서낭신을 모시고 매년 제례를 올려왔다.
수백 년간 마을을 지켜 온 수호신 나무가 쓰러지면서 주민의 아쉬움과 허전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주민들은 지난달 8일 느릅나무의 영원한 안식의 의미를 담은 ‘꽃잠식’을 거행했다. 꽃잠은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잠자리’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횡성 느릅나무는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한국서각협회 횡성군지회와 조각 기능대회 은상 수상자 등 지역 예술인들이 재능 기부에 나섰다. 장비를 직접 가져오고 비용도 자체 충당한다. 나무는 둘레가 6m에 달한다. 절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기술자가 손에 꼽을 정도인 데다 건조에만 3~4년이나 걸린다.
김병혁 횡성군 산림녹지과장은 “살아서 400여 년을 두원리 마을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고 죽어서도 주민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해 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틀림없다”며 “횡성군의 자랑이 되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2018년 거센 비바람에 부러졌던 ‘수원 영통 느티나무’는 5년이 지난 현재 다시 주민들의 휴식처가 됐다. 수원 영통 신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느티나무사거리에는 3m가량의 느티나무 밑동과 부러진 나무로 만든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나무 밑동은 수령이 540년으로 자연적으로 탈락하는 수피를 제거하고, 지속해서 방수·방부 처리하며 보존한 덕분에 마치 예술 작품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 나무는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부러지기 전까지 높이 23m, 둘레 8.2m에 달했다. 2017년 산림청이 전국의 노거수와 명목 등을 평가해 선정한 으뜸 보호수 100주에 선정됐고, 보호수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의 표지에 실렸을 정도로 수려한 모습을 자랑했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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