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번스’의 아픈 추억…파월이 금리를 안 내리는 이유
현대 경제사에서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등은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린스펀 바로 직전으로 1979년부터 8년간 재임했던 폴 볼커는 ‘인플레 파이터’라는 별명과 함께 물가 상승기마다 회자된다.
하지만 아서 번스라는 연준 의장은 ‘역대 최악’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연준의 악당’이라고 말하는 비평가도 많다. 1970년대 8년이나 의장직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물가 통제라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번스는 경제학자 출신의 첫 연준 의장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미국 경제학회장을 역임했고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1970년 2월 임명해 1978년 1월까지 재임했다. 그는 성장론자였고, 경제 관료도 거쳤다. 인플레보다 고용 유지에 관심이 더 많았고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이 고용 성장을 저해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1972년 재선을 앞둔 닉슨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를 종용했다. 번스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1970년 8%대였던 미국 기준금리는 불과 1년 만에 4%대로 급락했다. 곧바로 19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터지자 미국 물가 상승률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10%대로 올라섰다. 번스는 뒤늦게 기준금리를 13.6%까지 급격히 인상했고, 그 결과 1970년대 미국 경제는 경기 침체까지 겹친 전대미문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이하게 된다.
번스는 여기서 결정적 실책을 저지른다. 경제가 나빠지자 금리를 다시 내리라는 정치권 압박에 바로 굴복해버렸다. 번스는 1년 만에 다시 기준금리를 5.24%로 끌어내린다. 이른바 ‘스톱앤고(Stop & Go)’ 전략이었다. 물가가 잡혔으니 금리를 내려 경기도 다시 살리겠다는 명분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 했지만 기대인플레만 잔뜩 부풀렸다. 결국 미국 인플레율은 다시 10%대로 치솟고 만다.
1978년 지미 카터 신임 대통령은 번스를 내쫓고 경영자 출신인 윌리엄 밀러를 신임 의장에 앉혔다. 그 역시 금리 인상에 주저하며 재무부와 갈등만 일으키다 1년여 만에 교체됐다. 이후 폴 볼커가 등장해서야 초인플레는 겨우 잡혔다. 1981년 기준금리는 무려 20%까지 올랐다.
지금의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은 1953년생이다. 20대 청년 시절 정치에 휘말리며 우유부단했던 연준 의장, 그로 인한 초인플레를 생활 속에서 경험했다.
“역사가 너무 이른 정책 완화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한다. 우리는 일이 끝날 때까지 통화 긴축 과정을 계속할 것이다.”
지난해 말 파월이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을 제시하면서 덧붙인 발언이다. 1970년대 연준의 스톱앤고를 소환했다. 그의 뇌리 속에는 아서 번스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올 들어 경기 침체 조짐이 완연하다. 연말에는 연준이 피벗(Pivot·입장 선회)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파월은 얼마 전 포르투갈 휴양 도시에 주요국 중앙은행장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앞으로 두 번 연속 금리 인상도 고려한다고 말했다. 시장과 연준의 싸움은 또다시 시작됐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6호 (2023.07.05~2023.07.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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