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스쿨존' 사고 후 6개월...12억 들여 확 바뀐 등굣길
'보행자 접근중'.
차를 탄 채 교문 앞 횡단보도에 가까이 다가가자 오른쪽 차창 밖으로 빨간색 전광판이 깜빡인다. 차량에게 사각지대에서 보행자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판이다.
3일 오후 2시 경 찾아간 서울 언북초등학교는 하교 중인 학생들로 북적였다. 언북초 2학년 자녀를 둔 권모(46)씨는 “이제라도 통학 안전 환경이 개선돼 다행”이라면서도 “오래 전부터 언덕길에 인도도 없는 길이라서 아이 혼자 다니기 위험하다 생각했는데 사고가 나기 전에 바꿀 생각을 못한 게 어른으로서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일 오후 5시경 서울 언북초 앞(스쿨존)에서 만취 상태로 차를 몰던 40대 운전자에 의해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은 운전자에게 민식이법(스쿨존 가중처벌)을 적용해 기소했다. 지난 5월 31일 법원은 음주운전과 어린이보호구역치사, 위험운전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해당 운전자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안전 환경이 개선된 건 강남경찰서와 강남구청이 늦게라도 재발 방지를 위한 대대적인 공사에 돌입한 결과다. 12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1월~5월에 걸쳐 학교 앞 교통안전표지판과 보차도펜스, 미끄럼방지포장, 과속경보시스템, LED표지판 등 시설물을 설치했다. 언덕길 곳곳에 과속 방지턱과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스쿨존 내 차량 통행 속도를 20km로 줄였다.
특히 골목이 좁아 인도를 설치할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인도를 설치할 자리를 마련했다.
이를 위해 경찰은 주변 주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언북초 인근 약 875m 도로를 일방통행구역으로 지정했다. 구청 재량으로 설정하는 어린이보호구역의 크기도 소폭 확장했다. 3일 방문한 현장에서도 단순히 학교 인근 뿐만이 아니라 인근 상점 앞까지 연장된 어린이보호구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남구청은 8월 방학 기간 안에 강남구 내 11개 초등학교 인근에 언북초처럼 도로를 일방향화하면서 인도를 설치하는 도로 개선 사업 마칠 예정이다. 언북초 녹색어머니회 권연주 회장은 “안전 조치 이후 등교 환경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며 “위험천만하던 길이 안전한 인도가 됐다”고 만족해했다.
그러나 지금도 '제2의 언북초'는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사고 전 언북초처럼 보행자 통행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초등학교 등굣길이 서울 시내에만 100여 곳이 넘는다. 서울시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시간제 차량통행제한 제도를 운영하며 서울 25개 구 관내 133개교 150개 구간에 대해 등하교 시간대에 한시적으로 학교 인근 도로를 일방통행로로 운영 중이다. 대부분은 별도로 인도를 설치하기 어려운 길목들이다.
일례로 서울 광진구 광진초등학교 인근은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해 2년 전 행정안전부에서 점검을 나온 곳이다. 논의 끝에 바닥에 초록색으로 인도를 그려 넣는 작업을 벌이고 등하교 시간대 일방통행로로 지정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현장을 방문해보니 지나가는 택시가 클랙슨을 울리고 초록색 인도 위로 택시 바퀴가 넘어가는 등 위험천만한 모습이 보였다. 서울시 담당자는 "스쿨존 예산이 있어도 구조상 도저히 인도 구분 별도로 하기 힘든 경우도 있고, 상가가 있는 경우에는 안전 시설물이 길을 막는다며 인근 주민들이 인도 설치를 거부하기도 한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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