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종료 3일 전, 어르신들 '인생책' 영상 보며 웁니다

이상자 2023. 7. 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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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회 영상에 눈물 흘린 어르신들... "졸업식도 멋지게 해 주신다고 했었는디"

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여러 면 소재지에서 모인 '마을한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씁니다. <기자말>

[이상자 기자]

▲ 마을학교 출판기념회 마을 학교 어르신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책을 만들고 출판 기념회를 했다.
ⓒ 이상자
 
인원수 부족으로 마을 학교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처했다(관련 기사: "다 틀렸네, 다 틀렸네... 공부하긴 다 틀렸네" https://omn.kr/24lr9 )

내가 가르치고 있는 '찾아가는 마을 학교 성인 문해교육'은 주 2회, 회기당 2시간 수업을 원칙으로 한다. 수업은 총 3단계로 되어있으며 단계별로 4권씩 12권으로 되어있다. 총 3년 동안 12권을 배우는 것으로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마치는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에게 자음과 모음부터 시작해 3년 동안에 12권 수업을 마치기란 쉽지 않다.

참고로 초등학교 졸업자격이 주어지는 성인문해교육은 같은 교재로 주 3회 수업으로 기간은 3년이다. 한편 평생교육법 제2조에 따르면, 문해교육이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문자해독능력을 포함한 사회적, 문화적으로 요청되는 기초생활 능력 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조직화된 교육프로그램"이라고 돼 있다.

"문해교육=내 삶의 주인 되기"

내가 처음 이 문해 수업을 시작한 것은 왜였을까. '지혜의 나무 교사용 지도서' 7쪽에 씌어있는 다음과 같은 말과 일치한다.

"문해교육은 글자를 깨우치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글을 몰라 겪었을 아픔을 풀어내고, 마음에 맺힌 못 배운 한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글자를 익혀 나를 이해하고,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며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고 훈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그간 마을 학교에서 수업하면서, 어르신들의 못 배운 한을 치유하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글 몰라서 평생 힘든 삶을 살아온 분들에게 문해교육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환하게 밝혀주는 빛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갑자기 수업을 중단하게 되니, 마음의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거운 마음으로 수업 준비를 했다.
 
▲ 마을학교 어르신 작품집 80대 학생들이 마을 학교에서 공부한 작품을 모아 낸 작품집
ⓒ 이상자
 
오늘(3일)은 마지막 수업 3일 전이다. 지난해 내가 병원 치료까지 병행하며 준비했던 출판기념회 영상을 보여드리려고 노트북을 가져가기로 했다. 함께 지낸 날들을 회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다.

이 영상을 만들게 된 건, 지난해 마을 이장님으로부터 어르신들이 공부한 것을 책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였다. 단 단서가 붙었다. 여기에 드는 수고료와 강사료는 없으니, 봉사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의 작품을 책으로 낸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나는 아주 흔쾌히 그러마고 대답했다.

책을 내기 위해 그동안 공부했던 것, 숙제했던 것, 비대면 수업할 때 숙제 등을 모았다. 문해의 달에 시화 작품 했던 것들도 모았다. 편집을 인쇄소에 맡기려고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작업해 보기로 했다. 책을 편집해 본 경험은 내 인생에 딱 한 번 있긴 하지만, 이런 걸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다. 과거 내 삶의 흔적을 아이들에게 남기려고 자서전 쓴 것을 스스로 편집-수정하고, 표지 그림, 제호 짓기, 사진 작업, 제호 글쓰기까지 직접 캘리그래피로 작업해 독립출판사에 맡겨 책을 내본 것이 경험의 전부였다.

어르신들 '인생책' 만들기 쉽지 않네 

책을 내기 위해, 나는 학생들 작품을 수업 날마다 수거해 우리 집 거실 바닥에 인원수대로 펼쳐놓고서 작업을 했다. 학생마다 작품의 편수를 똑같이 넣어야 하니 이게 참 어려웠다. 잘하는 분은 작품이 넘쳐나는데, 그렇지 않은 분은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교과서에 있는 '쓰기 숙제'한 것을 추가해 넣기로 했다.

기간이 한 달이 넘도록 집 거실 바닥에 작품들을 펼쳐 놓고, 여러 작품들이 모이는 대로 계속 작업하느라 거실은 많이 어질러졌다. 내 눈에도 거슬렸다. 늘어놓는 것을 질색하는 남편으로부터 "왜 사서 고생하느냐? 언제까지 거실을 이렇게 늘어놓고 살 거냐? 인쇄소에 맡겨라. 어깨 치료하러 다니며 뭐 하는 짓이냐?"라는 등 싫은 소리도 참 많이 들었다.

만약 돈 버는 일이었어도 그렇게 말했을까? 지청구를 듣던 어느 날엔 갑자기 남편 속내가 궁금해졌지만, 따로 묻지는 않았다. 
 
▲ 마을 학교 학생 작품집 뒤표지 80대 마을 학교 학생 작품집 학생들의 작품으로 만든 뒷표지 모습
ⓒ 이상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평생 글 몰라 주눅 들어 산 이분들의 자존감을 높여 드리고자 함이다. 어르신들에게 자존감과 자신감을 느끼게 해 어깨 한번 쭉 펴고 살게 하고 싶었다. 거기에 더해, 이 분들이 책 속에 본인 작품이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남편의 불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작업을 끝내 한 사람씩 작품을 모아 가방에 넣고 이름을 붙여 놓았다.

책 모양을 갖춰야 하니 마을의 최고 어른인 노인회장님께 발간사를 부탁했다. 이장님에게 축사를 부탁하니 사양해 여자노인회장님, 마을학교 반장님께 축하 글을 부탁드린 뒤 수정해 실었다. 분류해 놓은 작품, 목차 정리, 제호, 발간사, 축사, 앞표지 그림, 뒤표지 그림 순서 등을 일목요연하게 작성해서 클리어 파일에 담아 인쇄소에 맡기러 갔다.

책의 제호는 내가 지었지만, 제호 글씨를 부탁했더니 또 10만 원~20만 원 비용을 별도로 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잘 쓰진 못하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내가 캘리그래피로 쓰겠다고 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을 그냥 나누어 드릴 수는 없었다. 어르신들에겐 팔십 평생 처음 만든 책인데 출판기념회를 하기로 했다.

그림과 시화 작품을 전시하려고 도서관에서 이젤 한 박스를 빌리기로 했다. 현수막 준비(이장님, 평생학습과), 두드림 기타 봉사단, 시 낭송가, 노래봉사자를 섭외했다. 이 분들을 초대하는 것도 사실 살짝 부담이었는데, 80대 어르신들을 축하해 주는 일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모두 기꺼이 자원봉사로 와 주겠다고 했다.

마을 학교 교사인 힘 없는 내가 주관자와 주최자가 되어 출판 기념회를 하려고 하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왜 어려운 일을 사서 고생하느냐'고 하는 주변사람도 몇 있었지만, 한 귀로 흘려들었다. 아마 이건 어르신들에게 평생에 한 번 있는 일일테니까.

동네잔치였던 출판기념회

결론? 이 봉사자들 덕분에 멋진 출판기념회를 할 수 있었다. 거의 동네잔치나 마찬가지였다. 동네 부녀회장이 음식도 마련해 주셨다. 이 장면을 영상에 담으려고 스마트 폰 삼각대까지 샀지만, 영상에 담지 못했다. 영상 찍을 것을 한 사람에게 부탁했는데 실수로 못 찍었단다. 혼자 진행하고 사회까지 하다 보니 제대로 챙기질 못했다. 그래서 참석한 여러 사람 사진을 취합해 만든 영상이었다.

지난해 했던 출판기념회, 수업종료를 며칠 앞둔 오늘 그 당시 영상을 어르신들에게 보여 드리기 위해서 노트북을 챙긴 것이다.

첫 번째 수업 시간이 끝나기 10분 전, TV에 노트북을 연결하고 출판기념회 영상을 보았다. 영상에 흐르는 음악은 '꽃밭에 앉아서'라는 제목의 경음악이다. 영상을 보며 보는 내내 최아무개 학생이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렸다.

"와아! 와아! 이렇게 무지렁이들에게 책까지 만들어 주셨는데..."

책은 받을 수 있었지만, 정작 그 영상 속에 최아무개 학생의 얼굴은 없었다. 영상을 찍던 출간기념회 날이 오일장과 겹치면서 최 학생은 돈을 벌러 갔었기 때문이다. 

"그날 장에 돈 벌러 가지 말 걸. 누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어야지."

이어진 한 할머니의 말에 모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졸업식도 멋지게 해 주신다고 했었는디... 다 틀렸네유."

한동안 교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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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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