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낮춰라” 추경호 ‘기침’ 한 번에 정부 부처 일제히 맹공
秋 압박 9일만에…물가 안정 효과는 ‘글쎄’
하반기 물가 다잡기…“소비자 피해 없어야”
정부의 거센 압박에 제분·식품업계가 판매가격을 일제히 인하하기로 했다. 지난달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값 인하’ 발언을 한 지 9일 만이다. 그러나 물가 내림세를 소비자가 체감하긴 미미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시장 가격 결정에 직접 나서는 상황에 관한 우려도 나온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18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이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또한 지난달 21일 국내 물가 흐름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품 담합 가능성을 열심히 들여다봐야 한다”며 “유통구조 같은 것들도 면밀히 살펴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구조적 안정을 취하는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총리 발언 후 공정위는 고물가 국면 속 라면 등 주요 식품 가격 추이를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물가 관련 담합 여부를 밝히기 위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 부총리의 가격 압박에 농림축산식품부도 힘을 보탰다. 지난달 26일 농식품부는 대한제분과 CJ제일제당 등 한국제분협회 소속 회원사 7개가 참여한 간담회를 열고 밀 수입가격이 하락한 것과 관련 밀가루 가격 안정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이날 제분업계는 선물·수입가격 시차, 부대비용과 환율상승 등을 고려해 다음달 밀가루 출하가격 인하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했다.
대한제분은 정부 전방위 압박에 지난 1일부터 밀가루 주요 제품 가격을 평균 6.4% 내리기로 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밀 가격이 요동치면서 밀 선물가격은 t당 419 달러까지 치솟았다. 올해 들어 수급이 안정되면서 지난 2월 t당 270 달러 대까지 떨어지는 등 안정세 보인다. 다만 평년(201 달러)보다는 비싸다.
국내 라면업계 1위 농심이 가장 먼저 가격 인하 선봉장에 나섰다. 자사 대표상품인 신라면(봉지면)과 새우깡의 판매가격을 이달 1일부터 각각 4.5%, 6.9% 인하한다고 밝혔다. 소매점 기준 1000원에 판매되는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은 50원, 1500원인 새우깡은 100원 내렸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짜짜로니, 맛있는라면 등 12개 대표 제품 가격을 평균 4.7% 인하하며 대열에 합류했다. 오뚜기도 면류 15개 제품 가격을 5%, 팔도는 11개 제품 가격을 5.1% 각각 내렸다. 롯데웰푸드, SPC 등 제과·제빵업계도 주요 품목 판매가격을 내리기로 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5월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전년 동월대비 13.1% 상승했다.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다만, 라면 품목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00분의 2.7 수준이라 적은 편이다. 휘발유(20.8), 전기요금(15.5), 도시가스료(12.7), 돼지고기(10.6), 쇠고기(8.8) 등 에너지, 식품 가격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라면과 과자, 빵 등에 들어가는 원재료인 밀가루 소비자물가 가중치는 0.1에 불과하다.
정부가 가격 인하 대상 표적으로 라면을 삼았던 것은 인플레이션을 잡기보다 서민 부담 가중을 덜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론 체감물가 관리에 팔을 걷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정부가 공언한 ‘상저하고’ 흐름을 확고히 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물가 안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물가 안정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모습은 바람직하나 시장에 반하는 가격 개입과 특정한 업종과 품목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것은 업계와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원재료 상승이나 업계 담합 등을 정확히 구분해 실질적인 국민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국내 라면 업계는 과점시장이다 보니 가격 경쟁이 어렵다”며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한 가격 인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업계는 소비자 부담이 완화될 수 있도록 이번 가격 인하에 동참해야 할 시점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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