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기관 손실 메꿔준 증권사…돌려막기 영업 '칼날'
[한국경제TV 박승완 기자]
채권 돌려막기 등 관행으로 이뤄져 온 증권사들의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해 금융당국이 집중 점검에 들어갔다. KB증권, 하나증권, SK증권에 이어 한국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등이 새로운 조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증권사의 채권형 랩어카운트(이하 랩)·특정금전신탁(이하 신탁) 업무실태에 대한 집중 점검을 실시 중이라고 3일 밝혔다. 지난해 하반기 자금시장 경색으로 채권형 랩·신탁 가입자들의 대규모 환매 요청이 발생하자 일부 증권사들이 투자 손실을 보전했다는 의혹에서다.
채권형 랩·신탁 영업실태를 살펴보면 고객은 단기 여유자금 운용을 위해 가입하지만 일부 증권사는 거래량이 적은 장기 기업어음(CP) 등을 편입·운용(미스매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격변동위험이 높은 장기 CP 특성상 리스크 관리에 소홀하면 평가손실이 누적되는데, 일부 증권사들은 손실분을 다른 고객 계좌나 증권사 고유자산에 비싸게 매도하는 방식으로 메꾼 것으로 파악된다.
채권형 랩·신탁의 계약기간은 통상 3∼6개월이며 단기 여유자금 운용이 목적이지만, 일부 증권사는 법인들의 자금 유치를 위해 높은 수익률을 경쟁적으로 제시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나아가 수익률 달성을 위해 만기가 장기(1~3년 이상)이거나 유동성이 매우 낮은 CP 등을 편입하는 상품을 설계·판매했다.
운용 과정에서도 1대1 계약이 원칙이지만, 만기 시점에서 운용 중인 다른 계좌에 장부가로 매각하는 방법으로 환매자금을 마련한 정황이 포착됐다. 다른 증권사와 종목이 서로 다른 채권, CP 등을 주고 받는 연계·교체거래는 자본시장법의 규제 대상이다.
환매 과정에서 증권사는 랩·신탁 계약 만기 시 편입자산을 시장에 매각해 환매 대금을 지급하거나 만기연장·계약해지를 통한 반환이 원칙이다. 하지만 고객 계좌 간 연계·교체거래로 만기를 맞은 고객의 손실을 다른 고객에게 넘기거나 증권사 고유자금으로 고객자산을 고가에 사들여 목표 수익률을 맞췄다.
실제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5월 중 증권사들은 고유자산을 활용해 고객의 랩·신탁에 편입된 CP 등을 고가로 매입해주는 방식으로 환매대금을 마련·지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상고객은 영세법인이 아닌 대기업 또는 기관투자자(연기금, 공제회 등)가 대부분인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 과정에서 올해 5월말 기준 수백억 원 규모의 평가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행위는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금감원 판단이다. 법인 고액투자자를 위해 실적배당상품인 랩·신탁을 확정금리형 상품처럼 운영하는 등 투자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관행을 만들었고, 나아가 증권사의 고유자산 등을 활용하여 손실을 보전한 행위는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의 근간을 훼손했다는 지적이다.
만기 불일치 운용으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점도 문제시된다. 금리급등 시기에 보유자산의 평가손실이 누적되는데도 적극적인 자산 매매나 교체 등을 통한 리스크 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뜻이다.
랩·신탁 영업에 대한 '내부통제'도 도마 위에 올랐는데, 교체거래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이상 거래가격 통제 등이 전무했다는 설명이다. 당국은 적법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및 승인절차 없이 고유재산을 활용하여 일부 고객에 대한 손실보전행위를 하는 등 준법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점검 결과 확인된 위법 사항에 대한 엄정 조치를 통해 더 이상 잘못된 관행이 지속되지 않도록 시장질서를 바로잡을 계획이다. 금감원은 "점검을 완료한 증권사 외에도 위법 개연성이 높은 증권사를 추가 선정하여 업무의 적정성을 면밀히 점검하겠다"면서 "리스크 관리 및 준법감시 체계가 미흡한 증권사에 대해서는 내부통제기능을 제고하여 올바른 업무관행이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승완기자 pswan@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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