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이 여전히 고통스러운 그 남자

변상철 2023. 7. 3. 15: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홀:어느세월호생존자 이야기' 북콘서트에 참석한 김동수씨 이야기

[변상철 기자]

 2014년 4월 세월호 탑승 전 머물렀던 식당을 둘러보는 김동수씨와 가족
ⓒ 변상철
 
"여기 주유소 기름 값이 인천에서 가장 싸거든. 여기서 기름을 가득 넣고 연안부두로 가서 선적주차장에 차 대기시켜 놓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어. 저 분식집이 배 출발하기 전에 화물기사들끼리 떡볶이랑 순대 시켜서 막 먹고 있던 곳이야."

김동수씨는 큰딸이 운전하는 차량에 올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처음으로 인천 연안부두를 방문해 둘러보고 있었다. 지난 2일 인천1호선 박촌역 부근 바람길카페에서 열린 '홀: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북콘서트에 초청을 받은 김동수씨는 행사 참가 전에 조금 일찍 도착해 그동안 찾아보지 못했던 세월호 출항 전의 방문지를 둘러보았다. 

이곳을 함께 둘러본 아내 김형숙씨와 큰 딸 역시 세월호 참사 직전 남편의 흔적을 함께 둘러보면서 남다른 감정을 느꼈다. 9년 전 늘 화물차를 몰고 다녔을 인천의 길과 장소를 처음 둘러보는 동안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남편만이 기억하고 있던 그날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제주로 향하는 여객터미널 방향 표시가 걸려있다.
ⓒ 변상철
 
"여기가 세월호 타기 전에 승선하려고 선적차량을 대기시켜 놓는 주차장이었어. 그날 안개가 가득해서 출항 못할 줄 알았는데 결국 출발을 해서는... 안개가 너무 심해서 평소 인천대교까지 30분이면 나가던 거리를 1시간이 넘게 걸려 나갔으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리에게 그날 인천항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김동수씨의 말투에 평소와는 다른 작은 떨림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천에 오기 전부터 평소보다 훨씬 예민해진 김동수씨는 인천 연안부두를 돌고 나올 때는 더욱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연안부두에서 차로 40여분 떨어진 북콘서트 장소에 도착한 일행은 행사를 준비해 주신 '바람길카페'의 주인이자 '길 위의 교회'의 담임목사이기도 한 박기완 목사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잠시 담소를 나눴다. 

오후 3시에 약속된 북콘서트가 시작되었다. 9년 전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생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그리고 9년이라는 시간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어 하는 시민들 앞에 선 김동수씨가 인사말을 했다.

"저는 오늘 이곳에 오기 전에 세월호에 타기 전에 들렀던 식당이나 주유소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2014년 4월 15일 세월호를 타기 전까지 아주 평범하게 삶의 희망을 가지고 살던 저는 세월호를 타고 난 이후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나의 인생과 나의 가족 인생은 모두 180도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날 그 배를 타고 나서 겪는 고통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습니다."
 
 '홀:어느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를 펴낸 김홍모 작가
ⓒ 박기완
 
뒤이어 '홀:어느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가 김홍모 작가의 인사도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작가는 세월호 만화를 그린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동수씨는 세월호에서 많은 아이들과 시민을 구한 '파란바지의 의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세월호 참사 이후에 김동수씨는 스스로의 몸을 자해하는 뉴스만 나오더라고요. 저렇게 자해를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아, 적어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의인의 마지막 모습이 불행해서는 안 되겠다. 적어도 의인의 마지막 모습은 행복해야하지 않나'라는 마음으로 만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참사 당일 세월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기 위해 김동수씨는 직접 제작한 세월호 조감도를 천에 인쇄해 북콘서트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김동수씨.
ⓒ 변상철
 
"세월호에서 사람들을 구하다가 마지막에 탈출해 나온 뒤, 진도체육관에 모였을 때 제가 해수부 관계자들과 언론인들에게 '아직도 배안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다. 빨리 구조해야 한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렇게 배 안에 학생들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진도체육관 텔레비전 뉴스에는 속보로 '세월호 탑승자 전원 구조', '300명 구조'라는 자막이 계속 나가고 있었어요. 그 뒤로 진도체육관으로 유족들이 도착하면서 우리는 살아나온 것이 죄인 것마냥 유족들을 피해 체육관을 빠져나왔습니다."

김홍모 작가는 아직도 진실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세월호 문제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여전히 우리사회는 세월호가 왜, 어떻게 침몰했는지조차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9년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세월호와 같은 사회적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지도 못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지도 못했기에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가 일어나도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세월호 참사만이라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의 대형 참사는 어제든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함께 행사에 참석한 김동수씨의 아내 김형숙씨도 세월호 참사를 겪는 가족의 고통에 대해 한마디 했다.

"여기 오는 길에 김포공항 우체국에서 작은 물건을 택배로 부치려고 했어요. 작은 종이 상자에 넣어 보내려고 하니 그곳 책임자가 좀 더 큰 상자에 넣어 보내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상자면 충분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 직원이 '그 상자에다 넣었다가 파손되면 우린 책임 안 질 거예요'하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김동수)이 버럭 화를 내는 겁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 하면서 막 화를 내는 거예요. 처음에는 남편이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나 싶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책임지지 않겠다'는 직원의 그 말에 화가 났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지난 9년 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걸 직접 몸으로 겪었던 남편으로서는 그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이 세월호와 연결되어서 화가 나게 된 거죠." 
 
 김동수씨의 아내 김형숙씨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 박기완
 

세월호 참사라는 매우 무겁고 힘겨운 주제로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북콘서트는, 언제나 세월호 피해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참석자들의 응원과 다짐으로 희망적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홀:어느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 마지막 장면처럼 다시는 세월호 피해자들이 세월호 참사의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알지 못하는 많은 시민들이 피해자들의 손을 잡고 버텨내고 있다. 그리고 세월호 피해자들이 상실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해자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다른 장소에서 안부를 물을 것이다. '안녕?' 
 북콘서트 포스터.
ⓒ 박기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