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아리 에스터 "봉준호는 자유로운 스토리텔러"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5일 개봉
"경험 토대로 만든 보편적 이야기"
"한국영화가 좋아서 우물 파듯이 팠다. 다수의 좋은 작품을 발견하고는 점점 빠져들었다."
영화 '유전'(2018) '미드소마'(2019)로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긴 아리 에스터 감독(37)을 최근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감독은 한국문화에 매료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내한한 그는 봉준호 감독과 GV(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돼 일주일간 부지런히 곳곳을 누볐다. 모자를 눌러쓴 채 배낭 하나 메고 일정을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리 에스터의 한국영화 사랑은 남다르다. 외국인 감독으로는 드물게 '코리안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구별하고, "나는 아무래도 한국인으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농담할 만큼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다.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영화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았다"며 특히 서사 전달 방식에서 그렇다고 밝혀온 터라 더 기대되는 인터뷰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오발탄'(1960)은 시대를 앞서간 영화"라며 "김기영 감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영화를 오래전부터 비디오·DVD 등을 통해 봐 왔다"고 밝혔다.
"봉준호는 나의 영웅" 남다른 韓영화 사랑
아리 에스터 하면 봉준호가 연관 검색어로 떠오를 만큼 둘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그는 "봉준호 감독은 나의 영웅"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앞서 봉 감독은 영화 '유전' 영문판 메이킹북 서문을 통해 "진짜 공포는 가족(혈연) 자체"라며 "가족이 지옥이라 말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인상적인 비평으로 그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 온 바다.
그는 누구보다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봉준호는 많은 사람이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감독이라고 평하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치 있고 굉장히 뛰어나고 재밌는 유머를 구사한다. 장르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스토리텔링을 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애정을 보였다.
인상적인 작품으로 '살인의 추억'(2003)과 '마더'(2009)를 꼽았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스토리텔링을 비롯해 각 요소가 너무나 뛰어나다"고 평했다. 이어 "'기생충'(2019)으로 이를 뛰어넘은 것도 대단하다. 계속해서 전작을 능가하는 영화를 만들어내다니 엄청나다"고 말했다.
다른 한국영화 감독 이름도 줄줄이 읊었다. 박찬욱을 언급하며 "가장 창의적이고 스타일리스트 한 감독"이라고 바라봤다. 또 "이창동은 감독 이전에 소설가다. 작품이 문학적이고 미스터리를 잘 활용한다. 미묘하게 표현하면서도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들어간다. 복잡한 주제를 잘 다루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또 "홍상수 감독도 좋아한다. 창의적인 연출자인데, 에릭 로메르 감독이 연상된다. 특이하다. 어찌 보면 비슷한 내용 같은데도 계속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게 놀랍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도 빼어난 수작 같다"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여기까지 하겠다"며 웃었다. 인터뷰 내내 자신감 있는 말투로 신나게 말한 대목은 한국영화 이야기였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코미디 영화…호아킨도 동의"
다음달 5일 개봉하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하는 보의 기억과 환상, 현실이 뒤섞인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 기이한 여정을 그린 영화로, 배우 호아킨 피닉스, 패티 루폰 등이 출연했다. 감독은 작품마다 집착과 애증을 오가는 가족 관계를 다뤄 공감을 이끌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공포에 가까운 모성애가 인상적이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여행 계획을 세우던 나의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그는 "3시간짜리 영화이고, 수천개의 장면이 있다.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스토리텔링에 기여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구성할지 고민했다. 그러면서도 흥미를 유발하는,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경험이 어느 정도 녹아있냐고 묻자 그는 "답하기 어렵다"면서도 "영화가 그 답변을 품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반영해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극 중 불안과 편집증에 시달리면서 엄마 모나에게 순종적인 아들 보를 맡아 '조커'(2019)를 뛰어넘는 연기를 펼쳤다는 평을 얻었다. '조커'는 그에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2019)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은 "호아킨이 대본을 읽자마자 좋다고 했다. 여러 질문을 건넸는데 흥미로웠다"고 첫 만남을 떠올렸다.
이어 "촬영 전부터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비전을 공유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배우와 제 유머 코드가 일치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대본을 주면서 '이걸 웃긴다고 생각해야 할 텐데' 걱정했다. 결국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코미디이기에 재미를 느끼길 바랐다. 호아킨도 다행히 대본을 보자마자 굉장히 재밌고 웃긴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자유롭게 만들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열린 마음으로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관객들도 자유롭게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봐 달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극장을 향한 관심을 당부했다. 감독은 "영화는 극장에서 관람해야 최고를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서라운드 기법과 믹스 등 음향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어필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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