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조 사생활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무엇이든 내가 발 디딘 현실과 연결된다고 믿습니다. 마침표로 끝나는 OTT 시청 말고, 물음표로 이어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선채경 기자]
디지털 성범죄는 불특정한 익명의 가해자(네티즌)가 집단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인터넷 특성상, 최초 가해자를 처벌하더라도 2차 가해가 확산할 위험이 있다. 인터넷은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 힘이 있다.
▲ 6월 20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엘살바도르의 경기. 1대1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황의조가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지난 6월 25일, 한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황의조의 과거 연인이라 주장하며 그의 여성 관계를 폭로하겠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에는 특정인의 얼굴이 드러난 사생활 영상도 함께 게재되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황의조 사생활 영상'을 2천 원~3천 원에 팔겠다는 '판매자'도 나타났다.
이에 황의조는 6월 29일 법률 대리인을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최초 작성된 글은 사실무근의 내용"이라며 유포자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다음날인 3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황의조 영상'과 관련한 민원은 81건 접수되어 삭제 과정에 있다.
이러한 영상을 당사자 의사에 반해 유포하고 판매하는 행위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성폭력처벌법은 단순 시청·소지하는 것 역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인터넷에서 가장 증오하는 남자>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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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성적 쾌락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더 높은 수위의 영상물로 몰릴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를 조롱하고 학대하는 것에서 쾌락을 얻는다. 축구선수 황의조처럼 사진 속 인물이 유명인일 때, 직업이 의사이거나 명문대 학생일 때, 반듯한 가정을 가진 사람일 때, 사적인 영상이 유출된다면 더욱 큰 타격을 입는다.
2010년 등장한 '이즈 애니원 업' 사이트의 운영자 헌터 무어는 이런 디지털 성범죄 특성을 파악해 광고 수익으로 연결했다.
"나한테 상처 준 여자들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죠. 하루는 방문자가 확 늘길래 내가 이랬어요. '여자 사진 올리고 괴롭혀서 돈 좀 만질 수 있겠어'."
그는 여성의 휴대전화를 해킹해서 훔친 사진을 유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을 '리벤지 포르노'라 불렀다.
'이즈 애니원 업'은 사진과 함께 피해자의 신상, 전화번호, SNS 주소를 함께 공개하는 특징이 있었다. 심지어 유출된 사진 속 인물의 어린 자녀 사진을 나란히 올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피해자의 SNS에 찾아가 성희롱 댓글을 달고, 직접 연락해 협박하기도 했다. '이즈 애니원 업'은 인터넷에서만 가능한 규모로 특정인의 일상까지 침범할 수 있게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터넷에서 가장 증오하는 남자>는 헌터 무어와 '이즈 애니원 업'을 추적한 수사 다큐멘터리다. 주축이 되는 인물은 여성인권 운동가이자 지역 정치인 샬럿 로스다. 샬럿의 딸도 '이즈 애니원 업'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샬럿은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법적 대응을 모색했다. 동시에 헌터 무어가 피해자를 괴롭힌 방법과 같은 방법을 활용했다. 헌터의 집 주소를 SNS에 공개한 것이다. 이후로 그는 살해 협박에 시달리며 두려워했다. 집을 떠나 한동안 할머니 집에서 지냈고, 가족들에게 극심한 불안을 호소했다고 한다.
음지에 있을 때는 익명의 추종자들이 헌터를 '우상'으로 추켜세웠다. 하지만 '이즈 애니원 업'이 양지에 드러나자, 그에게 맹비난이 쏟아졌다. 한 시민에 의해 어깨를 찔리기도 했다. "사진 찍으라고 총 들고 강요한 사람 없어요." 기고만장했던 헌터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자신이 저지른 온라인 학대를 돌려받은 셈이다.
'이즈 애니원 업' 사이트 이용자들과 '황의조 사생활 영상'을 파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누군가를 학대하면서 돈을 벌고자 한 것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를 시작하기 전, 헌터는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는 등 자신만만해 했다. 그는 마치 자신이 법 위에 있다는 듯 자신했다. 그러한 자신감은 그가 초능력자 따위라서가 아니다. 디지털 성범죄 수익구조에 대한 수요, 소비자들이 그 믿음을 만들었다.
▲ FBI 수사 대상이 된 후 헌터 무어는 한 시민으로부터 볼펜으로 어깨를 찔리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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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전후로 성행한 'N번방', '박사방' 등 디지털 성착취물 유포 사건 주범들도 수 만명으로 파악되는 회원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법원은 '박사방' 조주빈이 회원에게 입장료 명목으로 받은 가상화폐 등 법죄수익이 1억 828만 원이 은닉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실제 수익은 그보다 훨씬 큰 규모일 것이라 추정된다.
디지털 성범죄는 헌터 무어나 조주빈, 등 소수의 가해자 혼자 저지를 수 없다. 특정인을 향한 온라인 학대 문화, 즉 수요가 존재하는 한 공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터넷 문화가 수요를 만들었다면, 우리가 그 문화를 뒤집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샬롯 로스가 피해자의 수치심을 가해자에게 돌려준 것처럼 말이다.
"OOO 영상 봤어?"라고 묻는다면, "너 그런 거 보는 사람이야? 불법 촬영물은 보기만 해도 처벌되는 거 알지?"라고 되물어 주자. 인터넷에는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 힘이 있다. 우리는 그 힘이 누구를 향하게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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