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에는 핵으로?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길 바란다
[유종선 기자]
▲ 북한이 지난 5월 31일 오전 6시29분께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시민들이 발사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필자는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강의한다. 지난 학기 수업 중 '한국도 북한처럼 핵무기를 가져야 하나?'라는 질문에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3분의 2 정도가 여기에 찬성한다고 손을 들었다.
토론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한 시간의 열띤 토론과 강의를 마치고 위의 질문을 다시 했는데, 몇몇 학생을 제외하고 학생들의 생각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핵무기는 핵무기로 대응해야 한다'는 단순 명쾌한 논리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대학생들조차 이러니 일반 시민들의 생각은 굳이 여론조사를 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핵무기가 있어야 핵 도발 막을 수 있다?
나는 북한 핵무기에 맞서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국제정치를 전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핵무기를 가지려면 우리도 북한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미국과의 동맹은 파탄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면 아마 다음 날 일본도 재무장과 핵보유를 선언하게 될 것이다. 동북아 전역에서 위험한 핵무기 군비경쟁이 가속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핵 보유가 북한의 핵 도발을 억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부추길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면 과연 북한이 겁을 먹고 핵무기를 포기할까? 오히려 이를 빌미로 핵 무장과 위협을 더 강화하지 않을까?
우리도 핵무기가 있어야 북한의 핵 도발을 억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냉전 시대 강대국들의 핵무장 이론의 유산이다. 핵무기 공격에 대해 이를 보복할 능력만 갖추고 있으면 적은 상대방 뿐 아니라 자신도 결국 파멸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 이를 상호확실파괴(MAD. Mutual Assure Destruction)라 한다 – 섣불리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못할 거라는 논리다.
설령 이 말이 맞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해야 할 절대적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보복 능력으로 따지면 우선 한반도 주변에 전개된 미국의 핵자산이 있고, 만에 하나 미국을 믿을 수 없더라도 우리의 막강한 군사력이 있다. 며칠 전 한국 언론에도 보도된 바 글로벌파이어파워(GFP)라는 권위 있는 세계 군사력 평가기관이 2023년 한국의 군사력을 세계 6위로 평가했다(북한은 43위).
또 한국이 이미 개발 완료했거나 개발 예정인 현무급 미사일과 폭탄은 "북한 핵무기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하기에 충분한 "핵무기급 재래식 무기"라고 한다(동아일보 2023년 5월 13일). 굳이 정치적 부담도 크고 효과도 의문시되는 핵무기를 보복수단으로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사실 위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물어야 할 근본적 질문이 한 가지 있다. 정말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먼저 공격할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핵무장론과 보복억지론은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먼저 공격하면'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묻는 것 자체가 두렵고 금기시되는 질문이지만, 나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모든 논의에서 이 근본적 질문에 대한 논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흔히 핵 능력의 핵심 요소로 네 가지를 꼽는다. 핵무기의 소형화, 대기권 재진입 기술, 미사일의 신뢰도와 정확성, 대량생산체제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요약하자면 북한은 아직 이 모두에서 완전하고 검증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현 정부 국방장관조차 바로 얼마 전 국회에서, 북한이 소형화된 핵무기 제조에 '진전은 있지만' 그들이 보유한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23/3/23). 대기권 재진입기술은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증거들로 볼 때 북한이 이의 완전한 기술을 갖추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동아일보, 2023/2/23).
북한이 최근 야심차게 발사한 인공위성 로켓은 아주 가벼운 탄두를 싣고도 제대로 날지 못하고 서해 바다로 추락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핵무기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다른 건 몰라도 성능이 검증된 '완성된 물건'이 아직 없는데 이를 대량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어불성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제한된 핵능력을 가지고, 자기 확실파괴의 위험을 알면서, 북한이 먼저 우리와 우방에 핵 공격을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발사한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의 잔해가 서해에 추락한지 15일만에 인양돼 지난 6월 1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해군 2함대사령부로 이송,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
ⓒ 사진공동취재단 |
물론 위의 내 판단이 틀릴 수 있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북한이 최소한 위협적 핵무기와 미사일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기에 북한 정권이 그간 보여 온 비이성적 행태를 고려하면 북한이 이 핵무기로 어떤 위험한 불장난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능력은 없어도 의지는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처럼 북한 정권을 '미친' 비이성적 집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체 핵무장 등 북한을 억제하려는 어떤 '합리적' 노력도 결국은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다른 건 다 되지만 핵무기만은 안 된다는 배타적 핵 절반대론자는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억지, 군비통제와 군비축소, 남북 협상,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자 그 중심에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의 핵 능력과 의지에 대해 묻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면,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이 문제들에 대한 이성적 논의를 어떻게 진전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북한 핵무기는 두렵지만, 공포심이 답은 아니다. 무조건 북한의 핵 위협을 이야기하고 자체 핵무장을 말하고 북한 정권 붕괴론을 주장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정치인들과 정권의 입장에서는 지지도도 올라가고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계산에만 몰두해 만에 하나 국가와 국민을 위험으로 몰고 간다면 이는 책임 있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신임 통일부 장관 내정자의 대북관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현실은 많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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