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의 민낯을 알게 되고 배운 것
[이정희 기자]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 곰출판 |
평범한 이들이라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 앞에 무릎 끓고 오열하거나 아니면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망연자실하지 않을까. 그런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런 황망함에 자신을 놓아버리는 대신 나뒹구는 물고기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그와 함께 흩어진 물고기의 이름표를 그 물고기에 실과 바늘로 꿰맸다. 즉 그 물고기를 물고기로 존재하게 했던, 그가 명명했던 그 이름들을 물고기에게 영원히 박제할 수 있도록 그 파멸의 순간에도 최선을 다했다.
아마도 내가 삶의 사다리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느꼈을 때 저런 인물을 만나게 된다면 기꺼이 그의 손을 잡으려 하지 않을까? 이른바 '멘토'로서 말이다. 살기 힘들다고 하는 시절만큼, '멘토'와 '멘토링'이 인기를 끈다.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듯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내는 사람의 모습에 매료되고 탐닉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룰루 밀러도 그랬다.
멘토를 찾아서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런 것들은 사람들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테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개미 한 마리와 전혀 다를 게 없....으니 너 좋을 대로 살아.'
과학자인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의 핵심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그 인식의 그물에 걸리지 말고, 니 뜻대로 살아라'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 말은 아직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대하던 어린 소녀에게 '산타는 없어'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룰루 밀러는 말한다. 깃털을 넣은 만든 커다란 이불을 빼앗긴 느낌이었다고. 그 어디에도 갈 만한 곳이 없다고, 빛을 발하는 건 하나도 없다고 소녀는 자신의 일기에 쓴다.
일찌기 가정과 육친에게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 소녀는 방황한다. 그러다 곱슬머리 소년을 만나 사랑으로 안식을 얻는가 싶었는데, 그만 그 사랑을 본인이 걷어차 버린다.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피폐했던 시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저 이야기를 보고, 그의 손을 잡는다. 그때부터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라는 인물을 파기 시작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룰루 밀러라는 여성의 자아찾기라는 씨실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의 삶이 날줄이 되어 직조된 책이다. 앞서 말했듯이 룰루 밀러는 자기 삶의 늪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데이비드의 삶에 천착했고, 그의 생애를 탐독해 들어간다.
미국의 뉴욕 게인즈빌 농장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농장 주변에서 피어난 야생화에 마음을 빼앗겼던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실제 코넬 대학에서 식물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대학교 중고등학교에서 과학 선생으로 종사하던 그에게 루이스 아가시의 캠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로인해 식물학에서 어류학으로 인생의 물길이 변화되었다.
1885년 약관 34세에 인디애나 대학의 총장으로 입지전적인 삶을 일구어 가던 그는 1891년 스탠포드 대학 설립부터 시작하여 1916년까지 총장을 역임했다. 또한 그곳에서 자신이 연구했던 물고기들을 모아놓은 연구소를 설립했고, 전국교육협회 회장 등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그릿'이란 말로 정의한다. 어려운 가정 환경, 형의 죽음, 쉽지 않은 성공에의 길, 그리고 아내의 죽음, 천재지변으로 인한 연구의 좌절 등등 매번 그를 강타한 삶의 비극 속에서도 그가 무너지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노력과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이른바 긍정적인 자기암시,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건 사람의 의지'라는 믿음이었다.
멘토의 민낯
하지만 그 '그릿'에는 그림자가 있었다. 거침없는 발걸음이 계속될수록 그의 행보는 문제점을 노정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워싱턴포스트>, <시카고 트리뷴>, <스미소니언>이 선정한 2020년 최고의 책이었다. 과학 도서라 분류되었지만, 정작 이 책을 읽다보면 과학책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아마도 이 책이 최고의 책인 이유는 룰루 밀러가 자신의 절대적 멘토라 믿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그림자를 통렬하게 폭로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가 걷어차버린 따뜻한 깃털 이불같던 사람, 더는 살아야 할 이유를 몰라 헤매이던 룰루 밀러에게 손을 내민 멘토, 하지만 그를 알고 싶어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해 탐사를 하던 중 룰루 밀러는 뜻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를 거침없는 성공으로 이끌던 낙천성이 방패가 되어버렸다는 사실, '견제되지 않는 긍정적 착각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그 무엇이든 공격하는 사악한 힘'이 되어 간 것이다.
데이비드는 우생학자였던 스승의 그 사상을 따랐다. 심지어 그런 사상을 자신이 연구하는 어류에까지 적용했다. 나쁜 물고기를 분류했고, 나아가 나쁜 형질을 가진 인간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그를 이끈 것이 우생학이었다면 개인적으로 스탠포드 대학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창립자의 죽음에 관여했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던 그 수많은 물고기를 찾아내기 위해 대포와 독약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작가는 꽃을 좋아해서 연구하던 순수했던 소년이 자신의 명망을 위해 살인에 가담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탐구한다. 그건 데이비드라는 위인의 그림자이지만, 또 한편에서는 오랜 시간 룰루가 의지했던 멘토를 잃어야 하는 아픔의 시간이기도 하다.
'왜 그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헤매이는 시간은 위대하고 명망있는 사람을 통해 자신을 의지하려 했던 생각이 변화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데비이드가 평생을 걸쳐 천착했던 어류라는 분류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수용하는 것, 또한 그건 데이비드처럼 그럴듯한 '그릿'으로 입신양명에 자신을 던지는 세상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약초 채집가에게는 민들레는 약재이고..... 화가에게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게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점이 된다.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교육감 4년, 100억 챙기면 양반입니다"
- 잔반 없는 급식, 이 학교에선 무슨 음식을 먹길래
- 어른도 못 피한 부산 스쿨존 사고... 사서·교사들이 분노한 까닭
- 낙동강유역환경청장 발언에 "누가 그런 무식한 소리 하나"
- "엎질러진 오염수 못 주워 담아"... 쓰레기통 처박힌 학교급식판
- 사체 수거 물량만 7톤... 제주서 또 정어리 집단 폐사
- "곧 수시인데 발만 동동... '나이스' 오류 이주호 물러나야"
- 오세훈 서울시장님, '자존심' 걸고 분발하십시오
- 기자회견 도중 의원-기자 고성... 일 오염수 방류 갈등 일파만파
- 4대종단 단체들 "윤 대통령, 후쿠시마 오염수 못 막으면 자격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