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창의 과거 폭로한 유튜버의 비참한 최후
[조영준 기자]
▲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개그맨>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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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허지원 분)은 의료기기 회사 영업사원이다. 공채 출신도 아니면서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도 없다. 제 몫은 다하기는커녕 자신의 일을 후배들에게 넘기기 일쑤. 그저 어떻게든 한 방을 크게 터뜨려 성공한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헛된 꿈만 갖고 있다. 인터넷 방송이 그중 하나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때때로 방송을 켜가며 남들 다하는 개인 방송으로 한몫 단단히 챙겨보려 하지만 현실은 아무도 찾지 않는 인기 없는 채널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오랜만에 나간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종만(남연우 분)을 만나게 된 것. 최근 인터넷 방송에서 분홍색 가발을 쓴 우스꽝스러운 콘셉트로 인기를 얻으며 큰돈을 벌고 있다는 그와의 만남은 근성에게 한줄기 빛처럼 여겨진다. 오래전 학창 시절의 가느다란 인연이지만 종만의 유명세를 통해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자신의 방송 역시 많은 시청자를 가진 채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전승표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인 <개그맨>에는 지금 사회에 만연한 온라인 스트리밍 방송, 개인 인터넷 방송과 같은 매체의 어두운 면모와 불편한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시청자의 이목과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송출하고자 하는 그릇된 욕망. 어떤 방식으로든 인기를 얻고 돈을 벌어 개인의 성공을 이뤄내겠다는 맹목적인 의지가 근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진다. 누군가의 인생을 담보해서라도 돈을 벌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인가? 영화는 처음의 비겁한 목적조차 잃어버리고 점차 몰락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비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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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돈을 꿔달라고 그러지. 내 주변에도 그런 거 하는 애들 많은데 다들 금방 관두더라고. 돈 필요하면 그냥 배달이나 대리 같은 걸 해. 그런 게 훨씬 나아."
애초에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심만 드러내며 접근하는 근성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도 않았을 종만의 말 한마디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합방을 통해 도움을 구했던 자신의 요청이 거절되고 무시당하자 술에 취한 근성이 학창 시절에 있었던 종만의 폭력을 방송을 통해 고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최근 유명해지기 시작한 인기 개그맨의 과거 폭로에 아무도 보지 않던 근성의 채널은 시청자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다음 날 아침에는 그의 폭로가 기사화되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사건으로 덩치를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취해있었던 한 사람의 주정과 폭로 사실에 대한 판단을 위한 사실적 근거는 전무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그저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의 말 한마디에만 더 몰두할 뿐이다.
▲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개그맨>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바로 이전의 문장에서 '타인을 소비한다'는 표현을 썼다. 이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스트리밍 방송의 폐해이자 작품 속 인물들이 현재를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터넷 채널의 다양한 속성과 여러 문제 가운데 전승표 감독이 왜 이 지점에 주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인터넷 방송 중에는 무엇을 소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잘 확립해 나가는 채널도 분명히 존재하고, 소비하는 양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 대상이 타인이 아닌 본인으로 국한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극 중 근성이 처음 종만에게 바랐던 합방을 통한 인지도의 수혜나 동창 모임에 종만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신에서의 주변 인물을 통한 환기의 수준이 아니라 타인의 약점이나 비밀을 직접적인 콘텐츠로 하는 지점을 이 영화는 굳이 자신의 정가운데에 두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 이후, 자신 역시 종만으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며 근성에게 접근하는 미정(고원희 분)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들 모두는 타인을 소비하는 형식을 통해 자신이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자 하며, 여기에는 그 어떤 종류의 규칙이나 가치, 도덕성도 놓이지 못한다. 그나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더러운 짓에 속하며, 현재 자신이 놓여 있는 위치 또한 똥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미정 정도를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위치에 둘 수 있겠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니 문제가 뭔지 알아? 넌 네가 똥물에 있는 줄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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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도움을 바라는 지점에서 타인의 약점을 콘텐츠로 삼아 일시적인 성공을 누리기까지, 일련의 상승 곡선을 타고 치솟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일면 하강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에는 근성이 쥐고 있는 종만의 약점이 있다. 실제로 종만은 학창 시절 당시 약한 동급생을 괴롭힌 전적이 있다는 것이 영화의 초반부 한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다만 이 폭력의 행위가 근성에게까지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상태로 이야기 위를 부유하고, 근성은 이를 손에 쥐고 마치 자신이 직접 폭력을 당한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거짓 정도라고 해야 할까.
▲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개그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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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강도가 높아지고 자극적이기만 한 근성의 행동과 콘텐츠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수순과도 같다. 애초에 콘텐츠의 핵심 자체가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타인을 소비하며 성장한 자리는 그 대상이 사라지는 순간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단물이 모두 빠지고 나면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게 없다며 언젠가 그를 회유하던 종만이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시청자들의 조롱과 멸시뿐이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제의 자신이나마 밟고 일어서기 위한 몸부림 정도다.
영화의 마지막 영상에 담긴 그의 벌거벗은 모습은 직설적이면서도 은유적이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켤 수밖에 없는, 작은 렌즈 하나를 제외하고는 기댈 곳 하나 없는 차갑고 냉혹한 현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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