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출신 부사관, 사망한 아내를 교통사고로 위장했나

이준목 2023. 7. 3. 11: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싶다>

[이준목 기자]

2023년 3월 8일 새벽 4시 52분, 강원도 동해시의 어느 사거리, 인적없는 텅빈 도로를 빠른 속도로 돌진하던 한 대의 차량이 갑자기 시멘트 옹벽을 들이받고 멈췄다. CCTV에 녹화된 영상에서는 차량 앞부분이 반파되고 뒷부분이 붕 떠오를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당시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던 것은 부부였다. 남편은 부상을 입었지만 목숨을 건진 반면, 아내는 안타깝게 사망했다. 그런데 경찰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아내가 이미 차량에 탑승하기 전에 숨진 상태였고, 남편은 아내의 시신을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대체 부부에게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7월 1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옹벽과 삭흔 - 동해 교통사고 사망 사건'편을 통하여 의문의 교통사고 뒤에 숨은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의문의 교통사고 그리고 미스터리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싶다> 한 장면.
ⓒ SBS
 
육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던 남편 박성수(47세, 가명)와 아내 김민혜(41세, 가명) 부부는 2023년 기준 결혼 20년차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으며, 주변에서는 단란한 '잉꼬부부'로 소문난 커플이었다고 한다.

사고 당일, 박씨는 처음에 사고의 원인이 '졸음운전'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날 경찰과 구조대원들, 아내의 유족은 모두 박씨의 태도에서 뭔가 수상함을 느꼈다. 조수석에서는 사망한 아내 김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하지만 구조대원들은 정작 남편인 박씨가 아내의 상태를 묻거나 걱정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김씨는 사고로 인하여 뼈가 탈구될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정작 차량에서는 혈흔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박씨가 군인 신분이었기에 육군과 경찰이 공조하에 함께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사고 당일 박씨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CCTV영상을 통하여 사고 발생 몇시간전에 자택에서 김씨를 캐리어에 실어 조수석에 태우는 장면을 확보했다. 졸음운전을 주장하던 박씨는 사고 현장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갑자기 급가속하며 옹벽을 들이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찰은 박씨가 아내 김씨를 살해한 후 이를 은폐하고자 교통사고로 위장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박씨는 입장을 바꿔 그날의 상황에 대하여 전혀 다른 진술을 늘어놓았다. 사고 전날 우울증을 앓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 박씨는 종교인이었던 아내의 명예를 지켜주고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아내의 시신을 차에 옮겼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아내를 잃은 슬픔과 고민속에서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김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교통사로 다발성 손상을 입기전 이미 사망에 이를 정도로 목이 눌리는 일이 있었던 상태였음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스스로 목을 조른 자살이냐,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타살이냐를 밝히는 게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이 된다.

문제는 '무엇으로, 어떻게' 목을 조른 것인지 분명히 알수가 없다는 것. 김씨의 시신에서는 누군가 사람의 손으로 목을 누른 자국도, 끈같은 도구로 목을 조를 때 나타나는 삭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김씨에게서는 타살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수 있는 저항의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법의학 전문가들조차 "정말 이상한 사건"이라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씨는 변호인을 통하여 아내를 죽일 이유가 없다며 무고함을 주장하고 있다. 아내가 사망했을 때 119에 바로 신고했다면 오해를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후회하고 있었고, 현재 아내를 살해했다는 여론 재판에 고통받고 있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씨와 김씨 부부의 실제 관계는 어떠했을까. 부부의 자녀들은 부부가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전 남편의 TV 충동 구매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부부는 최근 전세대출금 상환을 앞두고 돈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다만 자녀들은 부부가 싸움을 해도 금세 화해하곤 했기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박씨 측이 주장한 사건 당시의 상황은 이렇다. 사고 전날, 김씨는 인터넷 뱅킹으로 남편의 계좌 잔고를 확인한 뒤 생각보다 심각한 경제상태에 큰 충격을 받았다. 박씨는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한 뒤 전셋집을 정리하고 군인 관사로 들어갈 것을 설득했고, 아내도 이에 수긍하는 듯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밤 박씨는 아내가 화장실에 돌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발견했다는 것.

알고보니 김씨는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으면서 약을 복용해왔던 것으로 드러났고, 박씨와 아들의 증언도 모두 일치했다. 실제로 김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우울증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이 검출됐다. 부부를 가까이서 지켜본 박씨의 군 동료는 김 씨가 돈이 드는 외부활동와 취미생활에 적극적이었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격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랬던 김씨에게 갑자기 알게된 남편의 경제상태는 우울증과 겹쳐서 큰 충격으로 다가오며 결국 극단적 선택까지 이어졌을 것이라는게 박씨측의 주장이다. 또한 아내의 사망으로 본인도 패닉에 빠진 박씨는 집안을 정리한뒤 무작정 아내의 시신을 차에 실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우발적으로 사고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박씨의 주장에 반대되는 정황과 증언들도 적지 않다. 영상분석 전문가는 사고당일 차량의 이동패턴을 분석하며 박씨가 무언가를 점검하듯 비슷한 구역을 계속 배회한 것, 사고 당시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미리 충돌하는 옹벽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 사고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아서 운전자인 본인을 보호하려는 듯한 정황을 지적하며 애초에 의도적으로 사고를 냈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김씨의 아들과 지인들은 그녀가 독실한 종교인으로 평소에도 자살을 터부시하는 언급을 한 일이 있는데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아졌도 행복해했다면서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또한 김씨가 앓고 있던 증상은 우울증이 아니라 '공황장애'와 '메니에르 증후군'이었다. 그녀가 복용한 플루옥세턴도 항우울제지만 공황장애 치료에도 널리 쓰이는 약물이었다.

김태경 상담심리전문가는 김씨의 아들이 촬영한 동영상을 분석하며 "김씨는 감정을 숨기고 억제하기보다 털털하게 털어놓고 자신의 욕구를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영상에서 김씨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면서도 스스로 감정의 완급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이며 결코 충동적이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를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법의학자들의 엇갈린 해석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싶다> 한 장면.
ⓒ SBS
 
법의학자들의 해석도 엇갈린다. 김씨의 사망당시 최초 목격자인 박씨의 진술대로라면 다리가 땅에 닿아 비스듬한 자세에서 안면 울혈과 일혈점을 동반하는 목맴은 자살의 증거로 볼 수 있다. 반면 이에 반론하는 측은, 목에 양쪽에 국소적으로 꾹 누른 듯한 출혈이 있다는 데 주목했다. 다만 이 정도로 살해의 근거로 단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도 덧붙였다.

김씨의 몸에 남아있는 다수의 상흔들은 교통사고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손상들이다. 작은 그림자는 큰 그림자가 나타나면 없어져 버린다. 작은 손상은 후행하는 강력한 외력이 작용하면 그전 손상을 해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타살과 자살을 구분하기 더욱 어려워진 이유다.

만일 김씨가 목을 맸다면 왜 삭흔이 남지 않았을까. 경찰은 현장에서 목을 매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커다란 수건이나 스카프를 끈으로 삼아 목을 매어 천천히 죽어갔을때는 삭흔이 남지않는 경우도 있다고.

남편 박씨는 벨벳이나 실크로 보이는 두툼하고 부드러운 끈으로 아내가 목을 매단 상태였다고 진술했지만, 그 도구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박씨는 현장을 정리할 당시 끈 역시 쓰레기 봉투에 넘어 버렸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군사경찰이 쓰레기봉투를 수거했을 때 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남편의 행동이 수상스럽기는 하지만, 살인이나 거짓말임을 입증할 분명한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도진기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이 사람 살인을 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최대 증거는, 사망한 아내를 교통사고로 위장했다는 해괴망측한 행동에 있다"고 지적했다. 아내의 몸에 있는 상흔들이 교통사고 이전에 났던 것이라면 타살의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었겠지만, 사고로 인하여 전부 불확실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전문가들과 사고 당시의 상황을 분석한 결과, 차량이 정면으로 충돌했음에도 정작 김씨는 시신 뒷부분에 더 큰 손상을 입었다는데 주목했다. 알고보니 김씨는 사고 당시 조수석에 엎드린 채로 차량 앞유리를 등진 상태에서 쓰러져 있었다. 제작진은 사고재현 시뮬레이션 '피시 크래시'를 통해 사고 전후 차량의 행적을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이를 통하여 교통사고 감정사는 "김씨의 목 내부 출혈과 신체 앞면의 상해는, 교통사고 때문에 생긴 손상이라고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박씨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는 특수부대인 육군 특수전 사령부 출신이었고 평소에 고도의 살상기술을 수련한 것을 자랑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근접전 전문가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상흔같은 증거를 거의 남기지않고도 상대를 살상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부대 내에서는 엘리트 간부이자 존경받는 동료로서 평판이 좋았다. 아내 김씨와는 박씨의 열렬한 구애로 교제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씨는 친한 지인들에게 종종 아내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의 지인들은 김씨가 남편의 동의도 없이 거액의 돈을 써대거나, 살림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심지어 남편을 무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아내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던 상황에서 아내가 오히려 경제권을 가져가겠다고 주장했다면, 박씨가 순간적으로 폭발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그러나 김씨의 동생은 누나가 항상 근검절약을 강조했고, 오히려 박씨가 처남인 자신에게 아내에게는 알리지 않고 거액의 돈을 빌렸다며 반박했다. 박씨는 처남 외에도 주변 지인들과 동료들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여기저기서 많은 돈을 빌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놀랍게도 박 씨는 군인 생활안정자금 4천여만원 대출을 포함하여 제2금융권까지 지난 8년간 무려 3억 7천여만 원을 대출받았다. 또한 최근에는 7천만 원대의 신차를 구매하기도 했다. 대체 박씨가 왜 이렇게 많은 돈을 필요로 했는지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정작 아내 김씨는 얼마전 까지도 남편의 부채에 대한 여부를 정확히 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의 가계부를 분석한 가게경제 전문가는 "박씨는 대출이 대출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신용대출로 금액을 다썼고 뒤로 갈수록 아예 목돈을 대출받아버렸다"며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늘어나는 카드빚을 수상하게 여겼던 김씨는 결국 아이들의 학원비까지 밀리는 상황이 되자 그날 박씨에게 계좌를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그제야 모든 진실을 알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갈등의 원인은 될 수 있어도 살해의 원인이 될수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불확실하다.

다만 표창원 범죄심리분석 전문가는 "피의자인 박씨는 '남편, 아버지, 모범적 군인'으로서 평상시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았던 흔적이 많이 보인다. 그런 그가 자신의 채무 문제에 대한 압박, 그리고 그 실체를 공개하라는 요구, 그런 것들이 억눌려있던 분노와 스트레스를 폭발시키는 촉발 요인이 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라고 분석했다.

김태경 교수 역시 "박씨가 궁지에 몰렸다는게 객관적으로 드러나면 그것이 살인의 동기가 될 수도 있다. 아내가 아닌 남편이 절망에 빠진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아내가 그 절망감을 더 고조시킨다면 둘 간의 갈등이 굉징히 고조됐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박씨의 절망감을 고조시킬만한 결정적인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박씨는 채무 문제로 이미 군에서 징계를 2번이나 받았고, 부대에서도 대출 상환을 재촉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만일 상환을 못하면 박씨가 군복을 벗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린 것. 부채를 뒤늦게 알고 이를 추궁하는 처남과의 통화에서 박씨는 "나는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알 수 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박씨는 막대한 빚과 아내의 죽음 사이에서 남겨진 의문에 대하여 제작진의 접견 요청을 거부했다.

표창원은 "이 사건의 가장 핵심은 자살이냐 타살이냐다. 객관적 정황과 증거를 비교 분석해서 주장의 당위성, 사실성, 진실성을 검증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고 가족에게는 의심만 남을 것이다. 서로가 같은 방향, 진실이라는 방향을 향해 함께 움직였으면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박씨는 현재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육군 검찰단은 박씨에게 살인 및 사체손괴에 더불어, 아내를 고의로 살해하고 보험금을 노린 보험사기 정황을 추가 포착하여 재판에 넘겼다고 한다. 제작진은 박씨가 지난해 신차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부부의 운전자보험을 증액하며 갱신한 사실을 확인했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인한 단순 변사로 발견되었다면 남편은 최대 4억 5천에 이르는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도 있었다.

박씨는 여전히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현재 확실한 범행 동기나 도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는 전문가들도 평가가 엇갈린다. 아내 김씨에게 과연 자살 의도가 있었는지, 박씨에게는 범행 동기가 있었는지를 조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이다. 특히 박씨로서는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려면 자신의 엄청난 의문의 채무가 어디에 쓰였는지, 그것이 아내의 죽음과는 관련이 없는지 명명백백 밝힘으로써 스스로 무죄를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21살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군인 남편을 따라 각지를 전전하며 오직 단란한 가정을 꿈꿨던 아내의 소원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녀가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그 꿈을 빼앗긴 것인지, 그날의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은 오로지 남편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