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통장에 쌓인 회비, 간만에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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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기자]
불경기라는 뉴스가 무색하리만큼 토요일 이른 아침 김포공항은 여행객들로 붐볐다. 나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 친구들을 찾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해온 나의 절친들.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언 30년이 되어가니 최소 30년 지기들이다.
결혼 후 여러 우여곡절 끝에 서울을 지키고 있는 나를 중심으로 한 명은 서쪽 송도로, 한 명은 북쪽 동두천으로 그리고 한 명은 남쪽 끝 제주도로 흩어졌다. 우리가 휴일 새벽부터 서둘러 김포공항에서 모인 이유. 제주도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 제주도 우도 하수고동 해변에서 우리는 오로라를 꿈꿨다. |
ⓒ 오세연 |
불경기에 여유 꽤나 있나 보다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는 이날을 위해 2년 반 동안 돈을 모았다. 한동안 일하랴, 아이 낳아 키우랴 만남은 고사하고 연락조차 쉽지 않던 때가 있었다. 어쩌다 볼라치면 집에 두고 온 아이 걱정에 서둘러 만남을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만남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이 걸리곤 했다. 그렇게 10년을 훌쩍 넘긴 어느 날, 친구의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단다.
"지금부터 매달 한 번씩만 만나도 1년이면 12번밖에 더 봐? 볼 수 있을 때 열심히 만나."
역시 숫자로 보여주니 보다 명확하게 와닿았다. 그 말이 기폭제가 됐다. 한 달에 한 번이 어렵다면 두 달에 한 번, 그것도 어렵다면 분기에 한 번씩이라도 보자며 결의를 다졌다. 그래봐야 1년이면 네 번밖에 더 보겠어? 그리고 몇 년 뒤 공동 통장도 만들었다. 만날 때마다 회비로 맛있는 거, 비싼 거 마음껏 사 먹자는 매우 단순한 취지로 2021년 1월부터 일 인당 3만 원씩 넷이서 매달 12만 원씩 모았다.
탕진잼을 꿈꾸다
그렇게 모아온 회비가 제법 커졌다. 정작 회비를 쓸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소 분기별로 한 번은 보자던 약속은 잘 지켜왔지만 그때마다 제주도 친구가 서울로 올 수도, 우리가 제주도로 갈 수도 없었다. 완전체 넷이 모인 적이 손에 꼽히다 보니 공동 통장에는 회비가, 단톡방에는 완전체 모임에 대한 아쉬움만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까짓것 보면 되지. 우리에겐 두둑한 회비가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그 말이 또 기폭제가 됐다. 돈도 있겠다, 애들도 제법 키웠겠다. 문제는 없었다. 역시 사람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더니 그러기로 하자 상상이 현실이 됐다. 작년 연말, 제주도 친구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서울 시내 5성급 유명 호텔에서 하룻밤 진탕 수다나 떨며 놀자 싶었다. 고급 한우집에서 고기도 실컷 먹고, 호텔 와인바에서 와인도 한 잔씩 기울이며 다음날 호텔 조식까지 풀코스로 탕진 잼을 꿈꿨다.
그런데 막상 성인 넷이 투숙할 수 있는 룸은 비싸도 너무 비쌌다. 돈이 아까웠다. 어쩔 수 없는 아줌마들이었다. 결국 가성비를 따져 비즈니스호텔을 잡았다. 그래도 그 호텔에서 제일 크고 제일 좋은 룸으로 플렉스 했다. 모처럼 완전체 사인방이 서울에서 뭉쳤다.
최고급 한우 대신 서서 갈빗집에서 마음껏 추가를 외치며 먹었다. 와인바 대신 카페에서 밤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호텔까지 걸어가는 길. 서울 번화가의 밤거리를 거닐어 본 게 언제였더라? 감회가 새로웠다.
늘 1+3처럼 붙어있던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떨어져 오롯이 내가 된 기분이었다. 남편보다 나를 더 오래 봐온 친구들이 곁에 있어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소녀 시절을 기억하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나는 언제나 소녀니까.
▲ 제주도 바다 제주의 한 카페 뒷뜰엔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
ⓒ 오세연 |
작년에 아낀 덕분에 이번 제주도 행을 감행할 수 있었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이번엔 조금 더 과감하게 돈을 썼다. SNS에서나 봄직한 감성 숙소를 질렀다. 1박으론 어림없지 싶어 2박 3일 야무지게 놀기 위해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른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만의 습도와 온도, 바람과 햇살이 우릴 반겼다. 제주도 친구가 차를 가지고 마중 나와 있었다. 반년 만에 사인방 완전체가 제주도에서 다시 뭉쳤다. 딱히 계획 따위는 없었다.
그냥 누군가가 여기 어때? 그러면 그래, 좋아! 그리고 움직이면 그뿐이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 뭣이 중하겠는가. 가는 곳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고 초록이 반짝이는 제주도인 것을. 서로를 너무나 잘 알기에 맞추고 말 것도 없이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나이가 들면서 대체로 취향이 비슷해진 점도 한몫했다. 아이들과 가면 핫플레이스 위주로 다니다 보니 사람에 치여 금세 지쳤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많던 관광객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한적하고 여유로워 신기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두둑한 회비 덕분에 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경제적 자유란 이런 걸까? 잠시 생각했다.
▲ 20세기 원조 김나박이 우연히 틀어놓은 TV에서 마침 20세기 원조 김나박이 출연해 그 시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 오세연 |
걷고 먹고 마시고 또 걷고를 반복하던 우리는 체크인 시간에 맞춰 숙소로 향했다. 잘 가꿔진 정원에서부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숙소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진에서 본 그대로 감성 그 자체였다.
협소주택으로 지어진 숙소는 1층 화장실과 주방, 2층 거실, 3층 침실로 구분되어 있는 독특한구조였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던 집이었다. 그런데 계단을 몇 번 오르내리는 사이 내 입에서는 감탄사 대신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윽! 내 관절!"
친구들의 감탄사도 걱정으로 바뀌었다. 밤에 자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침실이 있는 3층에서 화장실이 있는 1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1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 나이엔 관절 조심해야 하는데."
"그러게. 예쁘긴 한데..."
뒷말은 말 줄임표로 대신했다. 관절을 걱정하며 그새 가성비를 따지고 있는 우리는 역시나 아줌마들이었다. 그래도 감성은 포기할 수 없지. 이렇게 예쁜 데서 언제 또 자보겠어! 이런 불편함도 여행의 묘미 아니겠냐며 다치지만 말자 했다. 때론 가성비보다 가심비가 먼저일 때도 있는 법. 어릴 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제주도 산책길 어느덧 핫플보다는 자연이 좋은 나이가 됐다. 덕분에 제주도 산책길을 여유롭게 누렸다. |
ⓒ 오세연 |
비슷한 또래의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우리의 수다는 여전히 육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켜놓은 TV에서 마침 '20세기 원조 '김.나.박.이' (K2 김성면, 일기예보 나들, 유리상자 박승화, 이정봉) 나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노래였는데 나도 모르게 자동 재생됐다. 각자의 흥얼거림은 곧 떼창으로 이어졌다. 그 노래들은 우리를 그 시절로 데려갔다. 마치 타임머신 같았다.
보수적인 천주교 재단의 고등학교를 다녔던 우리는 불만도 참 많았다. 세상 촌스러운 교복에 엄격한 규율까지 흑역사뿐이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다 추억이었다. 이미 수없이 곱씹은 추억이건만, 새로운 얘기인 양 웃고 또 웃었다. 굴러가는 낙엽에도 까르르 웃던 그 시절 소녀들처럼 하하 호호. 21세기 아줌마에서 20세기 소녀가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가수 듀스가 '여름 안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는 우도의 하수고동 해변을 찾았다. 노래 '여름 안에서'를 흥얼거리며 탁 트인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어쩌다 보니 추억 여행이 된 기분이었다. 이 역시 추억이 되어 앞으로 두고두고 곱씹겠지? 잠시 감상에 젖어 있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다음엔 오로라 보러 가자."
"오로라? 우와 좋다! 그럼 어디로 가야 되지?"
"전에 꽃보다 청춘 보니까 아이슬란드로 가던데."
"어디서 봤는데 뉴질랜드 남섬에서도 볼 수 있대."
우리는 언젠가 TV에서 봤던 오로라에 대한 정보를 두서없이 주고받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오로라가 거대한 커튼처럼 드리워진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우리 네 명의 뒷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때의 우리는 몇 살일까? 거기가 어디든 돈을 많이 모아야 할 텐데 한참 걸리겠지? 그래도 좋았다. 결국 우리는 갈 테니까, 그게 언제든.
오로라를 가슴에 품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졌다. 사흘 만에 보는 남편과 두 딸이 반가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다음에도 부탁해요. 그땐 좀 길지도 몰라요. 오로라 보러 갈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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