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0년 만의 한류박람회, 유럽이 들썩였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전 8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도심에 자리한 초대형 전시장 ‘메세 프랑크푸르트’ 1홀 앞으로 100여명의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1박2일로 열리는 ‘2023 프랑크푸르트 한류박람회’ 홍보대사인 스테이시(STAYC)와 카드(KARD)의 개막공연 티켓을 얻으려고 모인 인파였다. 2500여개 좌석의 사전 응모에 3만5000여명이 몰려 추첨 경쟁을 벌였다. 탈락자도 박람회 행사에 참여하면 티켓을 준다는 소식에 독일은 물론 유럽 각지에서 팬들이 모였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왔다는 대학생 레아(21)는 “새벽 4시에 일어나 2시간 가까이 열차를 타고 왔다. 2019년 이후 케이팝(K-POP) 공연은 처음인데, 꿈만 같다”고 들뜬 표정을 지었다. 직장인 타냐(22)는 “회사엔 휴가를 냈다. 보이그룹 에이티즈(ATEEZ)의 팬이지만 모든 케이팝 가수를 사랑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주최한 이번 행사는 한류 열풍을 활용해 한국 중소기업의 수출 마케팅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0년 첫발을 디뎠다. 2년 전부터 국토교통부·중소벤처기업부·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 등이 함께 하는 관계부처 합동 박람회로 규모를 키웠다. 특히 올해는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독일을 개최지로 선정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유럽에서 한류박람회가 열린 건 2013년 런던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른 시간부터 관람객들이 몰려들면서 전시관은 예정 시간(오전 9시)보다 30분 일찍 문을 열었다. 8857㎡ 크기의 행사장은 ‘K-메이크업쇼’ ‘한식 푸드쇼’ ‘한복 체험관’ 등에 참여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구운 만두와 불고기, 유자차를 손에 든 관람객들은 케이팝 가수처럼 메이크업을 받은 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웃음을 지었다. 중국계 독일인 코니(19)는 “이번 여름에 한국을 방문해 직접 떡볶이를 먹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한류박람회에는 화장품·생활용품 등의 소비재부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까지 117곳이 참가했다. 화장품 제조 중소기업인 아이유닉의 한 관계자는 “유럽의 한류 팬들과 소통하며 제품을 알리고 유럽 바이어를 발굴하려고 왔다”면서 “오늘 하루에만 바이어 10여명과 미팅이 있어 정신없다”고 했다. 필터 샤워기 등을 판매하는 중소기업 이온폴리스 관계자는 “해외 다른 행사에선 중장년층이 많았는데, 이번 행사엔 젊은 층이 많아 놀랐다. 독일에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의 ‘한국산’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화장품·패션·식품의 독일 수출은 2021년 6475만 달러에서 지난해 8187만 달러로 26.4% 증가했다. 올해엔 독일을 포함해 유럽 바이어 200여곳이 행사장을 찾았다.
케이팝 가수의 앨범, 굿즈(팬 상품) 등을 독일에서 유통하는 바이어 헨닝 크롤씨는 “일본 만화를 수입하다가 5년 전부터 케이팝으로 주력상품을 바꿨다”며 “이제는 한국 음악, 드라마 뿐 아니라 한국식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인기”라고 강조했다. 한류 열풍은 독일 영국 프랑스에 이어 네덜란드 등으로 확산 중이다. 한국의 한 바이어는 “코로나19 엔데믹으로 해외 공연을 재개하면서 한류 인기가 유럽 전체에 퍼지고 있다. 유럽은 성장 가능성이 많이 남아있는 시장”이라고 했다.
전시장 한 켠에 들어선 무대의 주변은 공연 1시간 전인 오후 5시부터 케이팝 스타를 보려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광판에 스테이시와 카드의 멤버들이 등장할 때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환호성이 울렸다. 카드의 남성 멤버 제이셉이 “‘메이드 인 코리아’를 믿고 한국 제품을 사랑해 달라”고 외치자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한류 팬들은 첫날 행사가 끝난 밤 8시 이후에도 전시장 근처를 떠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여운을 즐겼다.
코트라는 이번 한류박람회에서 900여건의 상담을 진행하고 3200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 및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3일 밝혔다. 유정열 코트라 사장은 “독일의 한류 파급효과를 소비재 뿐 아니라 서비스나 그린 등 첨단 산업 분야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차기 개최지는 한류와 연계한 수출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프랑크푸르트=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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