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모든 범죄가 허용될 때 생기는 비극

김성호 2023. 7. 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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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03] <더 퍼지>

[김성호 기자]

 
▲ 더 퍼지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300만 달러(약 39억 원) 저예산으로 제작돼 2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영화가 있다. 속편도 벌써 다섯 편이 쏟아지며 규모 또한 커져간다. 늘 따라붙는 완성도에 대한 비평에도, 시간 죽이기용 영화를 넘어 인간 본연의 무엇을 자극하는 설정 만큼은 매력적이란 평가다. <더 퍼지> 이야기다.

설정은 단순하다. 미국이 일 년에 단 하룻밤, 살인을 포함해 모든 범죄를 허용하는 날을 두었다는 것이다. 금지되는 건 대량학살이 가능한 4등급 이상의 중무기를 사용하는 것과 고위공직자를 해하는 일 뿐이다.

3월 21일 일몰 뒤 알람이 울리면 다시 알람이 울리기까지 12시간 동안 경찰도, 군대도, 응급의료시스템도 멈추는 퍼지데이가 벌어진다.
 
▲ 더 퍼지 스틸컷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폭력의 사유화, 그 위험을 경고한다

영화 속 미디어는 말한다. 사람들은 결국 육신을 가진 동물이며 내재된 폭력성을 갖고 있다고, 그리하여 이 같은 본성을 해소하는 퍼지데이를 통해 사회가 더욱 강해진다고 말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통계에선 경제호황과 각종 범죄율 저하 등 긍정적인 결과로 가득하다.

반대자들도 없지 않다. 퍼지데이에 분노하는 이들은 이를 기득권자가 사회적 약자를 처단하는 수단이라 비난한다. 부양부담이 커진 정부가 빈민과 장애인, 스스로를 보호할 여력이 없는 이들을 남의 손을 빌려 제거하는 수단으로, 좋아진 지표는 조작됐을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이 정책에 환호하고 미국은 일 년 중 단 하루, 공포와 비명에 휩싸인다.

위험이 닥치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단순한 구성의 영화이지만 보고 나면 여러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폭력을 독점한 오늘의 정부가 인류 역사상 언제나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심지어는 정부가 사적 단체며 일반에 폭력을 허용하고 심지어는 은근히 장려하기까지 한 사례를 우리는 역사 가운데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 더 퍼지 스틸컷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퍼지 데이'로 떠올리는 역사 속 비극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인 제주 4.3사건이 어떠했나. 서북청년단이며 대한청년단이라 이름 붙은 이들이 민중을 상대로 무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학살을 자행했다. 공권력은 부당하거나 무력했고 그곳의 민중에겐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법 뿐 다른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도망갈 곳이 막힌 섬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확인된 사망자만 1만이 넘고 추정되는 피해자는 그 십 수 배에 달하는 이 참혹한 학살극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나 말이다.

한국이 피해를 보았던 사건은 또한 있다. 일본은 관동대지진이라 부르는 비극을 한국인은 관동대학살이라 칭하는데, 그건 지진이 가져온 피해보다 그에 뒤따른 학살극이 더욱 잔혹했던 탓이다.

지진 직후 조선인이 사회주의자와 결탁해 테러행위를 획책한다는 내무성 보고를 언론이 무책임하게 인용하고, 이에 선동된 이들이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에 나선 게 사건의 골자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느니, 독이 든 만두를 나눠준다느니 하는 낭설은 본래의 경고보다도 훨씬 더 빨리 퍼져나갔다. 자경단이 앞장서고 폭도들이 합류한 폭력행위는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수백의 죽음으로 마무리됐다.
 
▲ 더 퍼지 스틸컷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제 안의 폭력성과 마주하는 일

일제강점기라고는 하지만 1931년 발생한 인천 등지의 화교학살 사건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 길림성에서 벌어진 중국과 조선인 농민 간 소규모 충돌 이후 <조선일보>가 조선인 여럿이 숨졌다고 오보를 내며 가뜩이나 울분에 차 있던 민중에게 분노를 일으킨 게 이 사건의 출발이다.

분노한 민중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조선에 거주하는 화교들을 사냥하듯 잡아 때리고 심한 경우 죽이기까지 하니 화교들이 도망쳐 산으로 도망가기까지 했다. 박경리 등 여러 작가가 이 문제를 다루었으나 한국은 오랫동안 이 사건을 역사 가운데 받아들이는 걸 저어했다. 조선인이 제노사이드의 가해자가 된 대표적 사건 중 하나이지만 한국 교육과정에선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더 퍼지> 시리즈는 여러모로 이 같은 폭력을 떠올리게 한다. 자유를 빙자하여 일반에 허용된 폭력이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지, 또 분노는 얼마나 쉽게 사람을 어리석게 하는지, 인간이란 얼마나 저와 다른 이를 알지 못하고도 미워할 수 있는지를 일깨우는 것이다. 그로부터 잠재된 한국사회의 수많은 갈등의 지점들을 돌아볼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영화가 던지는 생각의 지점이라 하겠다.

어떤 인간도 제게 주어진 최상의 가능성 이상으로 올라갈 수는 없고, 또 제게 허락된 최저의 지점 이하로는 떨어질 수 없다. <더 퍼지>를 인간이 그렸다면 그건 우리에게 이 같이 끔찍한 세상을 도래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돼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역사 가운데 수차례나,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폭력을 자행해왔던 것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건 바로 이와 같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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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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