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선관위원 되다]②법 위에 선 선거는 없다… 규정이 모든 절차의 기반

김형민 2023. 7. 3.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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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축구협회장 보궐선거 관리위원회 첫 회의가 열린 지난 5월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 회의실. 위원회가 구성된 후 위원 8명은 이날 자리에서 처음으로 대면했다. 모두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았지만, 얼굴 한편에선 긴장과 압박도 느껴졌다. 절차상 문제로 다시 치르게 된 보궐선거를 총괄해야 하는 임무라는 건 어느 선거 때보다도 막중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위원들의 자리에 명패와 함께 가지런히 정리돼 있던 서류 묶음도 그만큼 무겁고 두꺼웠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 숙지해야 할 각종 규정과 2021년 1월 치러졌다가 당선무효 판결이 나온 제14대 서울시축구협회장 선거와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기자는 그중에서도 서울시축구협회 회장선거규정과 서울시체육회 회원종목단체규정을 따로 정리해서 보관하고 선거기간 내내 유심히 읽어봤다. 선거규정은 제1조부터 제34조까지 모두 34개의 조항을 갖고 있었다. 규정을 만든 목적과 적용 범위, 선거관리위원회를 만들고 투표, 당선까지 일련의 절차에 필요한 내용을 정해놨다. 34개 조항에 담지 못했거나 선거 때 예기치 못한 사항을 발견했을 때는 상위기관인 서울시체육회의 회원종목단체규정 또는 유권해석에 따르도록 해놨다.

서울시축구협회 보궐선거 기간 수시로 찾아봤던 선거규정, 선거안건 등 관련 문서들 [사진=김형민 기자]

행여나 빈틈이 생길까 봐 조마조마…규정 보고 또 보고

선거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기에 규정은 큰 빈틈이 없어 보였다. 선거를 운영하는 '사람'만 규정을 잘 살펴보고 적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선거 기간에 행여나 규정에 있는 조항을 미처 확인하지 못해 선거 운영에 차질을 빚을까 걱정돼 규정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었다. 다만 실제 선거를 관리하는 과정에선 이보다 더 세밀해져야 했다. 논쟁은 늘 규정 조항의 사소한 부분에서 발생했다. '법 위에 선 선거는 없다'는 구절이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였다.

첫 회의부터 그랬다. 선관위는 간접선거 방식에 따라 구성해야 할 선거인단의 인원 배분, 선거인 명부 작성 및 통보 시점, 투표하는 날짜와 시간 등을 논의해서 결정해야 했다.

투표일시 하나를 결정하는 데도 많은 의견이 오갔다.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투표일을 지정했을 때 그에 대한 타당한 근거가 없다면 선거인들과 후보들 사이에서 논란이 생길 수 있어서였다. 선거규정 제14조 등에 따르면 보궐선거의 경우, 사유가 확정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실시해야 하고 투표는 60일 이내에 해야 했다. 이번 선거는 최재익 전 회장이 대법원에서 당선무효 판결이 확정되면서 실시하게 됐다. 최 전 회장의 판결이 사유인 건데, 사유가 확정된 시점을 대법원 판결이 나온 4월27일로 볼 것인지, 판결문이 협회에 송달된 5월3일로 봐야 할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여러 이야기를 나눈 끝에 결국 판결문이 송달된 5월3일을 기준으로 삼기로 하면서 투표는 6월27일에 하기로 했다. 6월27일은 4월27일을 기준으로 60일 이내였고 5월3일을 기준으로 해도 60일 이내여서 문제의 소지가 없는 날짜였다. 또 선거를 7월까지 끌고 가기엔 회장의 공석이 너무 길어져 협회 운영에도 지장이 있을 것이란 우려도 반영됐다. 투표시간은 이전 선거를 참고해 선거인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오전 10시~오후 5시로 정했다.

투표 모습. 기사 내용과는 무관 [사진=아시아경제DB]

선거도 사람이 하는 일, 실수 나왔을 땐 인정하고 모두 공개

선거인 수 배정도 특별히 신중하게 처리해야 했다. 선관위는 실제 투표를 할 선거인단을 100명으로 맞추기로 하고 직군별로 인원을 배정할 방식 등을 논의했다. 서울시 자치구 축구협회장 등 규약에 따라 이미 지정된 대의원 51명은 그대로 유지하고, 선관위는 지도자, 심판, 선수, 동호인 등 4개 직군에 선거인을 각 몇 명씩 배당해야 할지를 정할 수 있었다. 한쪽에 더 많은 인원을 배당했을 경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여지가 있었다.

선거인단은 전체가 100명. 이 중 이미 지정된 대의원 51명을 빼면 지도자, 심판, 선수, 동호인은 각각 12명씩을 배정받고 한 곳이 한 명을 더 가져가야 했다. 어디에 한 명을 더 줘야 공정할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동호인에 13명을 배정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지도자, 심판, 선수와 비교해 동호인 전체의 인원이 많기 때문에, 이에 비례해서 선거인도 더 배당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후 협회 사무국은 선거규정 제4~5조에 따라 직군별로 선거인을 뽑았다. 직군 규모에 따라 현장에서 직접 공을 뽑아서 추첨하거나 PC에서 자동으로 추첨하는 프로그램을 구비해 선거인이 공정하게 지정되도록 절차를 진행했다. 기자는 지난 5월30일 효창운동장 회의실에서 열린 '등록단체군 대의원 선출회의'에 참석해 오른손으로 직접 단체명이 적힌 종이가 들어있는 공을 추첨함에서 뽑았다. 내 손에 의해 선거가 좌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공 하나를 뽑을 때도 추첨함에 들어있는 공들을 두세 번씩 더 섞었다. 추첨이 끝난 뒤에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뽑지 않은 공들을 따로 꺼내 열어봐 이상이 없었음을 확인했고, 따로 작성된 명단과 함께 공의 개수와 추첨을 통해 선발된 대의원 숫자 등을 비교해 투명하게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거도 사람이 하는 일인 까닭에 행정상 실수가 나왔다. 선거인단 중 심판 12명 가운데 나이가 15세인 선거인이 1명 나왔다. 만 18세부터 선거권을 부여하는 우리 법의 대원칙에 따라 해당 인원은 제외해야 했다. 또한 선거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뽑혔을 경우 공석을 메우기 위한 재추첨을 하지 않고 배제하기로 한 선거규정 제6조에 따라 당초 정한 100명에서 1명 빠진 99명으로 선거인단 구성을 확정했다. 또한 이 같은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판단해 협회 홈페이지에 선거인단 명부를 공고하면서 '행정상 실수로 인해 인원수에 변경이 있었다'고 별도로 공지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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