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럽여행에 300만원 건강검진…남양주 황당 '세금잔치'
3기신도시 중 하나인 왕숙신도시가 조성될 예정인 경기도 남양주시 양정동 일대. 지난달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승용차로 10여분 정도 걸려 도착한 그곳은 수도권 여느 농지와 마찬가지로 인적이 드물었다. 다만 ‘제주도 선진지 견학 신청받습니다’, ‘신도시 한복판에 폐기물 소각장 설치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길에서 만난 주민에게 플래카드 내용에 대해 물어보니 “소각장 건립에 찬성하는 사람에게 시에서 보내주는 국내외 여행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작년에 부부동반으로 유럽 크루즈 여행도 가고 올해에는 호주, 일본도 갔다고 들었다”며 “1인당 300만 원짜리 건강검진도 받았다는데 ‘세금잔치’를 벌여도 유분수지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가 찰 노릇”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농촌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발단은 남양주시가 소각장 건립 예정지 주민을 위한다며 2021년 말 관련 조례를 만든 후 세금으로 조성한 주민지원기금 100억원이다. 2025년까지 소각장 등 폐기물 처리 시설 주변 주민들(소각장 예정지 반경 700m 이내 주민 1079가구, 1693명)의 복지를 위해 1년에 약 20억원씩 쓰게 돼 있다.
문제는 세금으로 조성한 기금이 불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100억 세금, ‘깜깜이’로 구성된 주민지원협의체가 집행
남양주시는 2021년 ‘주민지원협의체’를 구성해 협의체에 지원프로그램 구성 및 지원 대상 선정 등을 맡겼다. 협의체가 정해서 쓰는대로 돈을 대주는 방식이다. 기금을 관리하는 남양주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법적으로 기금관리는 시에서 하게 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돈을 사용하는 주체는 주민들이기 때문에 주민들을 대표하는 협의체에 지원 대상자 선정 등을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정동 일부 주민들은 협의체가 전혀 주민들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주민 A씨는 “시와 지역주민사이에 공식적인 메신저 역할을 해당 지역 통장들도 시에서 주민들을 대표하는 협의체 위원을 뽑는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협의체가 구성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각 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협의체가 생긴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협의체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주민 B씨는 “현 협의체 위원장은 소각장반대대책위 위원장을 하던 사람”이라며 “2021년 4월 당시 조광한 시장(더불어민주당)과 소각장반대대책위 사람들이 만나 회의를 한 후 주민 협의체라는게 생겼고 소각장 반대대책위에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협의체 위원으로 변신했다”고 주장했다. 전임 시장과 극히 일부의 시민들이 ‘깜깜이’로 협의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남양주시 홈페이지에 모집 공고를 냈고 신청자 10명을 전원 협의체 위원으로 위촉했다”고 말했다. 별도의 자격심사 없이 시청 홈페이지를 보고 신청한 사람 모두에게 위원 자리를 준 것이다. 양정동의 한 통장은 “시청 홈페이지에 작게 나는 공고를 쳐다보고 있는 시민이 몇이나 있겠느냐”고 했다.
특히 시 조례에서 정한 협의체 위원의 기본 자격요건조차 못 갖춘 사람이 위원이 됐다는 지적도 주민들 사이에서 나온다. 조례에 따르면 협의체 위원 첫번째 자격이 ‘지역주민 대표로 선출된 사람(주민 15명 이상의 추천 서명·날인을 받아 선출된 사람)’인데 이런 자격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전임자가 한 일이어서 협의체 위원 전원이 15명 이상의 주민 추천을 받았는지 현재로서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협의체 위원 C씨는 “15명 이상의 추천을 받았는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남양주시의 이런 선정 절차는 타 지자체가 아주 까다롭게 주민대표를 선정하는 것과 대조된다. 전주시의 경우 각 지역 주민대표를 마을별 공식 선거를 통해 뽑은 후 시의회 추천을 거쳐 시장이 위촉한다.
지원대상 아닌 사람도 1인당 740만원 유럽 크루즈
‘깜깜이’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원 프로그램을 주민들에게 홍보하지 않았고, 지원 대상 선정 과정도 불투명하다. 양정동 주민 D씨는 “지난해 누구누구가 해외여행을 갔다왔다는 소문이 올해 퍼지면서 이런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주민이 대부분”이라며 “공짜로 700만원이 넘는 유럽여행을 보내 준다는데 신청 안 할 주민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남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740만원의 경비로 18명이 해외 ‘선진지 견학’을 갔다 왔다. 크루즈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3개국을 10박 11일 일정으로 돌았고, ‘선진 소각장’을 본 나라는 이탈리아뿐이다. 견학자 18명 중에는 협의체 위원 부부 등이 포함돼 있고, 심지어 지원대상 주민이 아닌 경우까지 있다. 지원대상 주민이 아닌데도 세금으로 해외여행을 갔다온 것이다. 또 해외여행을 갔다온 주민이 제주도 여행도 가고 건강검진까지 받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겹혜택을 받은 경우를 고려할 때 시의 지원대상 시민 1693명이 골고루 누려야 할 혜택을 50명 안팎의 시민만 누린셈이다.
남양주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첫 행사이다 보니 주민들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고 외부인이 낀 것도 체크하지 못했고,중복 수혜도 말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원프로그램의 내용이 너무 호화롭고 비용이 부풀려졌다는 의혹도 있다. 양정동 주민 E씨는 “협의체가 선정한 사람들이 갔다온 호주 ‘견학’의 경우 1인당 경비가 300만원인데 똑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해당 여행사에 문의하니 120만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유럽 3개국 크루즈도 광고를 찾아보면 500만원대 상품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70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협의체 프로그램을 독점 진행한 여행사는 남양주시 관내에 있는 여행사가 아니고 수원시에 있는 여행사다. 한양대 구리병원과 협의체가 독점 계약한 1인당 300만원짜리 건강검진 비용 역시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정동 주민 F씨는 “전임시장이 소각장 사업을 빨리 진행하기 위해 소각장건립에 반대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주민들을 ‘협의체’라는 꿀단지로 포섭했다는 게 많은 주민들의 생각”이라며 “전 시장과 소각장 반대 대책위(현 협의체)간에 맺은 합의서와 소각장 위치 결정시 의사결정 내용(배점표) 등에 대해 시에 수없이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시는 ‘개인정보’라는 이유 등을 대면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G씨는 “소각장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이 많았는데도 얼렁뚱땅 소각장이 지어지는 것으로 됐다”며 “주민찬성률이 법에 정한 기준 이상이었는지 등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대학의 행정대학원 교수는 “행정기관의 무능과 안이함, 또는 공무원과 일부 세력의 결탁으로 세금이 줄줄 세는 극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 여러분의 세금을 1원도 낭비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건 53년만에 처음이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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