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하' 끝난 러 바그너 반란, 아프리카 닥친 뜻밖 파장 [세계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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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
지난 3월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 수도 방기에 있는 양조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프랑스의 주류 기업 카스텔이 소유·운영하는 곳이었다. 카스텔은 이 불로 맥주 5만여 병이 소실되는 등의 큰 손실을 입었다.
양조장 안팎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서방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 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 소속 용병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정부군 지원을 위해 이 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은 화재가 발생하기 얼마 전 이 양조장에서 불과 19㎞ 떨어진 곳에 자신들의 맥주 양조장을 세웠다.
즉, 바그너가 주류 영업 확대를 위해 경쟁업체에 불을 질렀다는 게 서방 측의 설명이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양조장 방화 사건은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정부 또는 반군과 결탁해 이권을 추구해온 바그너 그룹의 행태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일으킨 무장 반란이 일단락되자 아프리카 각국엔 또 다른 고민이 등장했다. '바그너 지우기' 작업에 돌입한 러시아 정부가 바그너 용병을 일시에 철수시킬 경우 갑자기 발생한 '힘의 공백' 탓에 아프라카 여러 나라에서 정국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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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을 종합하면 바그너그룹은 지난 10년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리비아, 말리, 수단 등 아프리카 국가 13곳에서 현지 정권, 반군 등 핵심 세력과 결탁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바그너그룹과 연관된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은 권위주의 독재 정권으로, 미국 등 서방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나라들이다.
내전 아프리카서 독재 정권 지원
바그너그룹은 주로 내전이 잦고 치안이 불안한 나라에 무기와 병력을 지원해왔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소 8개국에 바그너그룹 용병 5000여 명이 주둔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선 바그너 전투원 1890명이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고, 리비아에선 용병 1299명이 동부를 지배하는 반군 군벌 수장인 칼리파 하프타르 편에서 싸우고 있다.
친러·반서방 성향인 말리의 군사정권도 바그너 용병을 수백 명 데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두 달 넘게 군벌 간 무력 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수단에선 바그너그룹이 현지 반군인 '신속지원군(RSF)'에 무기를 지원해 왔다.
바그너그룹은 치안 유지를 대가로 내정에 간섭하거나 천연자원·광물 채굴권 등 각종 경제적 이권을 챙겼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바그너그룹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연간 2억 9000만 달러(약 3816억 원)어치의 금을 채굴할 수 있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내 최대 금광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뉴욕시 면적의 두 배에 달하는 영토의 목재 채굴권도 관리하고 있다. 바그너그룹이 이같은 해외 용병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살인과 고문 등 잔혹 행위도 서슴치 않아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엔 바그너 용병들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도로에서 비무장 민간인 12명을 사살한 후 구덩이에 파묻는 사건도 발생했다.
러시아 정부는 그런 바그너그룹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아프리카 대륙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서방에선 바그너그룹의 아프리카 자금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바그너그룹의 활동을 감시해온 '올 아이즈 온 바그너' 대표는 도이치벨레(DW)에 "러시아 정부는 바그너그룹을 아프리카 외교의 도구로 사용해 왔다"며 "민간 군사기업(PMC)은 러시아 내에선 금지돼 있지만, 국외에선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다. 바그너그룹의 아프리카 활동 배후엔 크렘린궁의 승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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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철수로 반란 사태 우려
이런 가운데 아프리카에서 바그너그룹이 철수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 지역 정국이 또 다른 혼란에 빠질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러시아 정부가 아프리카에서 바그너그룹이 벌이던 용병 사업 네트워크 장악에 나서는 등 사실상 바그너와 손절하는 수순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지난달 2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외무부 고위 관계자가 시리아를 방문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바그너그룹의 용병 사업 관리 주체가 바뀔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바그너그룹의 주요 활동 국가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말리 정부에도 각각 전달됐다고 한다. 하루 앞선 27일엔 러시아 헌병대가 시리아 남부에서 있는 바그너그룹 용병 기지를 급습해 이곳에서 활동 중인 지휘관 3명을 체포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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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서 美 영향력 되찾을 기회"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러시아 정부가 바그너그룹과 상호 의존적 특수 관계로 얽혀 있기에, 정확한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다"면서 "하룻밤 사이에 바그너그룹을 대체할 수 있는 민간군사기업(PMC)을 찾는 것도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바그너그룹이 아프리카에서 발을 빼면 단기적으로는 상황이 악화할 수 있으나, 장기적인 지역 안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바그너그룹의 철수로 힘의 공백이 생긴다면 미국이 과거의 영향력을 되찾을 기회를 얻게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폴리티코는 "특히 아프리카 국가에선 미국이 안보 협력을 제공하거나 파트너 관계를 맺는 대신 민주화 약속을 받아내는 등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며 "중국 역시 아프리카 진출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이는 미국 입장에서 놓쳐선 안 되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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