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과 전쟁 진 역대 정부...전문가가 尹정부에 귀띔한 '핵심'
사교육비 경감 대책 발표 이틀 뒤인 지난달 28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EBS 본사를 찾았다. 수능 강의 영상 제작 현장을 둘러본 이 부총리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파트너는 EBS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사교육비 대책에는 “EBS 강의의 질을 높여 사교육 없이도 수능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정부의 대책은 기시감이 있다. EBS 강의는 역대 정부 사교육 대책마다 들어간 단골 소재이기 때문이다. 2009년 사교육 대책에도 “EBS 수능 강의를 최상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5년 뒤 2014년 사교육 경감 대책에서도 “EBS로 수능 부담을 완화한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그러나, 2009년 21만7000원이었던 고교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지난해 46만원까지 치솟았다.
19개 중 16개, 과거 사교육 대책과 같거나 유사
역대 정부가 내놓는 사교육 대책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교육부가 이번에 발표한 19개 대책을 살펴보면 ‘공정한 수능 평가의 실현’ 항목으로 제시된 킬러 문항 제거나 유아 공교육 강화 등을 뺀 16개가 과거와 같거나 유사하다. 일례로 이번에 제시한 ‘학교교육 본질에 부합하는 수능 출제’는 2014년에 나온 ‘수능 준비 부담 완화’와 비슷한 내용이다. 당시 교육부는 “수능 개선 위원회 등 전문가 의견 수렴을 통해 수능 난이도를 안정화하고 학교 수업을 통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수능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했다. 이번 대책도 ‘공정수능평가 자문위원회’등을 만들고 학교 교육 만으로 풀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사교육 근본 원인 학벌주의 해결 부족”
역대 정부 대책은 대부분 공급 조절과 대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수요 해소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많다. 김재철 한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교육의 가장 큰 원인은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와 그래야 실제로도 취업이 잘 되고 높은 월급이 보장되는 구조에 있다”며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교육 수요는 여전하고 그 어떤 대책이 나오더라도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2010년과 2012년 이명박 정부 때는 방과후학교 강화와 MB 물가지수 관리로 학원비를 규제하며 초등 사교육비가 감소했다. 당시 대체와 공급 조절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봤지만 학벌사회나 대학 서열, 입시제도 개편 등 경쟁을 낮출 수 있는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사교육비 증가를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킬러 문항 잡는다는데…내신 사교육 대책은 빠져
킬러 문항 등 수능과 관련한 대책에 주목하다보니 사교육 비중이 더 큰 ‘내신 사교육’ 문제는 소홀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선회 중부대 사범학부 교수는 “킬러 문항이나 의대 준비반 등은 주로 고소득층과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국한된 문제다”라며 “전체 사교육비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다수 중산층과 중하위권마저 학원으로 내몰고 있는 내신 사교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 평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이 높았지만, 월 소득 300만원 미만인 가구도 사교육 참여율이 57.2%에 달했다. 초·중·고 전체의 사교육 수강 목적도 진학 준비(14.2%)나 선행학습(24.1%)보다 학교수업 보충(50%)의 이유가 더 컸다. 박은희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대표는 “차라리 수능은 EBS나 인터넷 강의로 준비가 가능해 금액 부담이 크지 않다”며 “특목고 진학이나 대학 수시를 준비하기 위해 학교 기출 문제 분석에 특화돼있고 주변 학교 정보가 모이는 동네 보습학원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대학 서열과 입시 경쟁에 대해 교육부는 지방대 육성을 해법으로 내놓고 있다. 이 부총리는 “지방대 30곳에 1000억원씩 지원하는 파격적인 글로컬대학 사업을 통해 이들 대학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면 소수의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한 과잉 사교육 열풍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손주은 “천하의 손사탐도 수능문제 다 못 풀어…尹 방향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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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을 담은 사교육 대책을 발표한 지난달 26일 오후, 손주은 메가스터디그룹 회장을 만났다. 손 회장은 1990년대 대표적 ‘일타(1등 스타) 강사’로 활약하다 2000년 온라인 강의 기업인 메가스터디를 설립했다. 37년 간 사교육계를 지켜 온 그는 정부의 킬러 문항 배제 정책에 대해서도 “고심 끝에 나온 정책”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음은 손 회장과의 일문일답.
Q : 이번 사교육 대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A : 제대로 시행된다면 사교육이 약화할 것이다. 특히 킬러 문항에 대비한 대치동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다. 특정 사교육을 받지 않아 손해볼 수 있다는 위화감을 줄일 수 있다. 킬러 문항은 사교육 시장을 왜곡시키고 ‘대치동 현상’을 강화했다. 대치동에서 공부하려고 지방 학생들이 주말에 KTX를 타게 만들었다.
Q : 윤석열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 내에서 수능을 출제하라”고 했다.
A : 나는 대통령이 수능 문제를 풀어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나름대로 킬러 문항이 어떤 유형인지 파악했다는 느낌이다. 나도 3년 전 사회·문화 과목 20문제를 풀어봤다. 제한시간 30분이 지났는데 15번까지밖에 못 풀어서 펜을 놨다. 명색이 내가 천하의 ‘손사탐(손주은 사회탐구의 줄임말)’인데…. 수능이 단편적인 문제풀이 기술 싸움으로 변질됐다는 걸 느꼈다.
Q : 수험생 혼란이 예상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A : 수능까지 5개월 밖에 남지 않아 시간이 없다는 건 진영 논리의 비판이다. 올해 수능을 계기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번 9월 평가원 모의평가 이전에라도 두세 차례 공정 수능의 모형을 내놓고 올해 수능의 방향성을 보여주면 된다.
Q : 정치권에선 좌파가 사교육을 장악했다고도 한다.
A : 나는 노동운동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대학 졸업 전에 결혼하고, 돈이 없어 커피 장사도 했던 사람이다. 바로 잡으란 조언도 있었다. 하지만 부정하는 순간, 지금의 정치 지형에서 나는 우파가 돼버린다. 일각에선 나를 포함한 ‘좌파들이 사교육을 장악했다’라고 매도하는데, 결단코 아니다. 내가 27살부터 지금까지 쭉 사교육에 몸담았지만, 내가 아는 한 사교육 기업 오너나 운영자 중에도 그런 분은 없다. 진영 대립이 극단에 치달았다는 걸 느꼈다.
Q : 학생이 줄어드는데 학원은 늘었다. 사교육 대책은 왜 실패하나.
A :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정책을 내놨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교육 대책도 그렇다. 어차피 고도압축 성장의 부산물인 한국식 사교육은 학령 인구 감소로 약화할 것이다. 출생아 수가 40만명 이하로 떨어진 2017년생들이 대학을 가는 2036년에는 인서울 대학에서도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7,8등급이 입학할 것이다. 대학이 그렇게 될 정도면 학원은 더 하다고 봐야한다. 아무 대학 골라가도 되는데, 왜 학원에 돈 쓰겠나.
Q : 이번 사교육 대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A : 사교육 종사자들과도 깊이 논의를 했어야 한다. 사교육 업자는 악인이 아니다. 직업군 통계에서 상위 5위에 들 정도로 그 수가 많다. 이런 산업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Q : 정말 필요한 사교육 대책을 꼽는다면.
A : 학원비를 손 봐야 한다. 1분당 학원비가 너무 비싸게 정해져 있다. 일부 학원은 교묘한 끼워팔기로 돈을 더 받는다. 예를 들어 보조 강사만 들어가는 자습 시간을 편성해놓고 다 같은 강의료를 받는다. 다른 소비에 있어서는 끼워팔기를 용서하지 않는 소비자들도 유독 사교육에서는 알면서도 속아준다. 자녀가 손해볼까 봐서다. 사교육이 편법을 쓸 욕망이 생기지 않도록 디테일하게 관리 감독하고, 사교육자도 건전한 교육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정직하게 상품을 공급하게 해야 한다. 」
이가람·최민지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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