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아시아 역차별 없앤다' 美 판결…'부유한 인도계'만 수혜?
미국 대학 입학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인 이른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AA)’이 폐지 수순에 들어가자, 그간 미국 사회의 ‘모범 소수자’로 불려온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선 ‘실리콘밸리에 일하러 온 부유한 인도인’을 제외한 대다수 아시아인들은 오히려 더 차별받는 상황이 됐다고 우려했다.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달 29일 AA를 위헌이라 판결한 것은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의 심각한 균열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은 미국내 어떤 커뮤니티보다 부유층과 빈곤층 간 격차가 극심하며, ‘가난한 아시아인’에 속하는 동남아 난민 출신, 몽족(베트남·중국·라오스 등지에 사는 소수 민족), 캄보디아·베트남 후손 등은 AA 폐지에 분노와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SFA 학생들 "AA 폐지는 달콤한 승리"
앞서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란 단체는 2014년 AA가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하고 있다며 사립인 하버드대와 공립인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상대로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1·2심은 “인종만을 근거로 정원의 틀을 정하는 것은 위헌이지만 이를 고려하는 적극적 차별시정조처는 합헌”이라는 대학의 손을 들어줬는데, 대법원에서 ‘위헌’으로 뒤집혔다.
SFA 회원인 캘빈 양(21)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며 반겼다. 아시아계 미국인 교육연맹의 마이크 자오 역시 “오랜 싸움 끝에 아시안 커뮤니티를 위한 달콤한 승리를 거뒀다”며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2등 시민’으로 취급되지 않을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인도·중국계만 수혜, 가난한 아시아계는 배제될 것"
하지만 동남아시아자원관리센터(SERAC)의 꾸옌 딘 전무이사는 “(AA 폐지로) 동남아인은 미국 사회에서 전략적으로 제외됐다”면서 “전쟁, 대량학살, 빈곤, 인종차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고등교육을 받고자 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여전히 많은 장벽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컨커디어대학의 몽족 연구센터 소장인 리파오싱 역시 “모든 아시아계 미국인이 영어에 능통하고 부유한 고학력의 인도·중국계라고 착각해선 안된다”면서 “AA 폐지가 그들(인도·중국계)의 성장에 도움을 줄진 모르겠지만, 또 다른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인은 배제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USA투데이는 “아시아계 미국인은 50개가 넘는 다양한 그룹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매체에 따르면 현재 아시아계 미국인은 2300만 명이다. 이중 중국인과 인도인이 각각 500만 명으로 가장 많고 필리핀인(420만 명), 베트남인(220만 명), 한국인(190만 명), 일본인(150만 명) 정도다. 이밖에 태평양 섬 주민 등 작은 그룹도 산재했다.
퓨리서치 센터의 2019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몽족은 5가구 중 1곳이, 몽골 가구는 4가구 중 1곳이 극빈층이었다. 반면, 주로 실리콘밸리에 취업하는 인도계 미국인 중에서는 6%만이 빈곤했다.
외신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영어 능력도 천차만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베트남·미얀마·몽골·한국 커뮤니티는 영어 사용 능력이 매우 제한적이라면서, 이들이 AA 폐지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는 힘들 것이라 내다봤다.
"아시아계, 미국 인종정책에 쐐기로 이용"
WP는 “AA 폐지를 이끌어낸 SFA의 주요 원고는 부유한 중국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 최고의 사립학교에서 우수한 내신 성적을 거뒀고 ACT(대학입학자격시험)에서 만점을 받았으며 테니스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면서, 이런 이들이 아닌 대다수의 ‘가난한 아시안’들은 AA가 폐지되면 오히려 미국 주류 사회 진입로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AA 폐지로 실제 수혜는 백인이 보면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인종 정책의 ‘쐐기’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영리단체 ‘아시아계 미국인 옹호 기금’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결정은 백인 우월주의와 기득권 유지를 위한 것으로, AA 폐지를 원하는 일부 아시아계 미국인을 볼모로 삼은 것”이라며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유색 인종 커뮤니티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전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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