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부터 학자금까지… 메가톤급 보수적 판결에 USA ‘들썩’

전웅빈 2023. 7. 3.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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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법 우편향… 내년 대선 변수로
‘소수인종 우대 입학제도’ 위헌
바이든 핵심 정책 잇달아 제동
민주당 지지층 결집에 역이용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29일(현지시간) 소수인종 우대 입학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가운데 이 제도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1일 매사추세츠주 하버드대에서 ‘평등 기회 연대’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6월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대법원에 의해 폐기된 뒤 워싱턴DC 대법원 앞에서 이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 AFP·AP연합뉴스


미국 대법원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정책에 잇달아 제동을 걸면서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보수 우위의 대법원은 소수인종 우대 입학제도가 위헌이라고 판단했고,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은 의회의 권한을 침범했다고 결정했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동성 커플 서비스 거부는 표현의 자유로 인정했다. 지난해 낙태권 폐지 판결 이후 연이은 보수적 결정이 내년 미 대선의 핵심 의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일(현지시간) “대법원은 가장 분열적인 3가지 사건에서 6대 3으로 보수적 판결을 내렸다”며 “보수파는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블록버스터급’ 보수적 판결 잇따라

대법원은 전날인 30일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8월 연간 소득 12만5000달러(약 1억6000만원, 부부 합산 25만 달러) 미만 가구를 대상으로 최대 2만 달러까지 학자금 채무를 면제해주도록 한 정책에 대한 2건의 소송에서 각각 6대3 의견으로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교육부는 법에 따라 4300억 달러 규모의 학자금 대출 원금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해당 법은 기존 법령 또는 규제 조항을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지, 법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작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같은 날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결도 내렸다. 콜로라도주에서 웹 디자인을 하는 기독교 신자 로리 스미스는 종교적 이유로 동성 커플의 작업 요청을 수락할 수 없는데, 이를 거부하면 주(州)법에 따라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며 헌법 소원을 냈다. 콜로라도주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장에서 성적 지향성이나 인종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처를 하는 미국 22개 주 중 한 곳이다. 이런 주법이 수정헌법 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수정 헌법 1조는 모든 사람이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그런 풍요로운 미국을 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성소수자 보호를 희생하며 종교적 이익에 대한 광범위한 관점을 다시 수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지난 29일에도 흑인 및 히스패닉계 등을 대학 입학에서 배려하는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3건의 연이은 판결은 보수성향의 대법관 6명과 진보 성향의 대법관 3명으로 구성된 대법원 이념 지형을 그대로 반영했다. 지난해 낙태권 폐지 결정 때부터 시작됐던 ‘6대 3’ 판결이 재연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당파적 노선에 따라 의견이 갈린 세 문제에서 블록버스터급 보수적 판결이 내려졌고, 민주당이 지명한 대법관 3명은 이에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지지층 결집 동력으로 삼나

‘대법원 보수화’는 대선을 관통하는 이슈로 부상할 조짐을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별도 성명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법원은 헌법을 잘못 해석했다”며 “학자금 대출 탕감 계획을 중단하려는 대법원의 결정은 잘못됐으며 실수”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소수인종 대입 우대 정책 위헌 결정 때는 “법원이 정상이 아니다”는 말까지 했다. 공화당을 향해서도 “노동 계층과 중산층 미국인을 구제하려는 생각을 견딜 수 없는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공화당 주도로 보수화된 대법원의 결정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법원 편향 문제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의 강력한 어조는 대법원에 대한 더욱 직접적인 정치 참여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핵심 정책에 잇달아 제동이 걸리며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선 민주당이 지지층 결집을 이뤄낼 수 있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에 대한 일반 대중 의견은 양분돼 있지만 젊은 층이나 흑인, 라틴계 유권자 등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 내부에서는 찬성 의견이 높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 출신인 코넬 벨처 여론조사 분석가는 “지난 이틀 동안 대법원은 민주당이 젊은 층과 유색인종을 동원하기 위해 의회에서 추진한 어떤 정책보다 더 큰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도 “지난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낙태 권리를 박탈한 대법원 결정은 민주당에 큰 자극이 됐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학자금 대출 탕감 중단, 소수인종 대입 우대정책 폐지 등 법원의 판결에 따른 유권자 분노를 재선 싸움에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이번 판결로 지난해 중간선거 때처럼 표심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을 지낸 마이클 스틸은 “흑인들에게 사실상 기회를 빼앗은 판결 이후 공화당이 흑인 커뮤니티에 다가가는 것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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