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출생신고, 아동정책의 출발점이다
실질적 국가 지원 이뤄지려면 촘촘하고 세밀한 설계 필요해
양육 위한 위기임신지원제와 신원 노출 없는 보호출산제도
종합 패키지로 함께 시행돼야
예산 확보와 법제화를 통해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는 신속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산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 되지 않은 영유아의 수가 2236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23명을 표본조사한 결과 3명이 숨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친모가 영아 두 명을 살해 후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하다 붙잡힌 엽기적 사건이 있었다. 또 출산 이후 온라인을 통해 익명의 제3자에게 아이를 넘긴 20대 부모가 입건되는 등 상상하기 힘든 소식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태어나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아동의 비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부모가 출생신고를 방기해도 제재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1개월 내에 신고하지 않은 부모에게 과태료 5만원만 부과될 뿐이다. 아이가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온전히 부모에게만 맡겨진 셈이다. 미신고 아동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이게 돼 필수 예방접종과 같은 적절한 의료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취학연령이 돼도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다. 국가등록 서류상 존재하지 않으니 영아 유기, 매매 등 각종 범죄와 학대에 노출될 위험이 매우 크다. 최악의 경우 이번처럼 영아 살해에 이를 수도 있다.
부모가 보호와 양육 책임을 제대로 못한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부모가 출생신고라는 첫 번째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국가가 아동을 지킬 방법이 딱히 없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지난 15년간 관련 법안이 20건 발의됐음에도 국회에 묻혔던 출생통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에서 영아 출생 사실을 정부 기관에 통보하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발견되면 부모에게 신고를 요구하고, 그 후에도 신고가 안되면 지방자치단체장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출생신고 실무를 담당하는 지자체, 이를 관리·감독하는 행정안전부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출생통보제는 사각지대를 막는 최소한의 출발점일 뿐, 실질적 지원이 이뤄지려면 촘촘하고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현재 출생등록된 아동의 99.8%는 병원에서 태어났다. 출생통보제가 실행된다면 아마도 이 비율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산전 진료를 받지 않고 원룸, 화장실, 모텔 등에서 병원 밖 출산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산모와 아기의 생명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고 출산 후에도 영아 유기나 살해로 이어질 수 있어 출생통보제와 더불어 위기임신지원제도 시행도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임산부에게 임신·출산 관련 의료서비스 제공, 상담·지원, 산후조리 등 탄탄한 모성보호 정책을 우선 시행해야 한다. 또한 예기치 않은 임신, 준비되지 못한 출산으로 어려움에 처한 위기 임산부가 경제적 걱정 없이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양육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시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끝내 아이 출생을 알릴 수 없는 임산부를 위해 최후의 보루로서 보호출산제 도입도 필요하다. 보호출산제는 혼외 관계나 강간으로 인한 임신, 청소년기 임신 등으로 경제적·사회적 곤경에 처한 산모가 신원 노출 없이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불안한 산모에게 출산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줘 병원에서 건강하게 출산하도록 도와 산모 비밀과 아동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출산 전후 상담을 통해 가족 지원과 여러 대안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안내하고 양육 포기 없이 원가정에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 그럼에도 직접 양육이 어려울 경우 일련의 공적 절차를 통해 아이를 입양시킬 수 있다. 이때 아동의 알 권리를 위해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출생정보 열람도 보장해야 한다. 출생통보, 위기임신지원, 보호출산, 입양 등은 분절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아동보호체계 내의 종합 패키지다.
이번 사건에 대한 분노를 예산 확보와 법제화 노력으로 바꿔야 한다. 저출생 대책에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면서 이미 태어난 아이를 ‘국민’으로 챙기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의미를 의심하게 한다.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도록 신속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복지부는 2236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예고했다. 이것으로 판도라의 상자나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정책 개선의 창이 열리길 바란다. 조사가 남아 있는 2213명의 아이도 제발 무사하길 바란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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