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상택 (5) 의대 목표로 공부… 건달 들끓는 통학열차 완전히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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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장남으로서 집안 살림의 일부를 떠맡아야 했다.
집에서 학교가 멀어 아침저녁으로 기차 통학을 해야 했는데, 열차 안에 도사리고 있는 깡패들의 폭력이 심했다.
6·25전쟁 와중 허술한 치안 상황에서 같이 통학하는 학교 선배들 가운데 건달들도 있었고 심지어 열차를 거점으로 선량한 승객을 괴롭히는 직업적 폭력배들이 있었다.
열차 통학 자체가 폭력으로 점철된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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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치안 때문에 깡패들 폭력 난무
살기 위해 권투와 씨름으로 체력 단련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장남으로서 집안 살림의 일부를 떠맡아야 했다. 광복과 전쟁으로 이어지던 격변기에 아버지는 피난민들을 돕다가 공직에서 물러나셨고 이에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졌다. 위로 누님과 남동생 셋에 여동생 넷까지 이렇게 아홉 남매였다. 거기다가 나이 어린 막내 삼촌까지 함께 살았으니 우리 집은 언제나 유치원처럼 왁자지껄했다. 누나가 있었지만 몸이 불편해 사실상 내가 어머니를 도와 맏이 노릇을 해야 했다. 비록 어렸지만 나는 집안일을 돕는 것이 즐거웠다.
1953년 나는 경남 물금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경남중학교에 진학했다. 어려서부터 품어 온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가며 ‘살아남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생존 의식이 생겼다. 이후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는 경쟁의식으로, ‘가정을 돕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으로 발전해 갔다.
중학교 생활은 처음부터 만만하지 않았다. 집에서 학교가 멀어 아침저녁으로 기차 통학을 해야 했는데, 열차 안에 도사리고 있는 깡패들의 폭력이 심했다. 6·25전쟁 와중 허술한 치안 상황에서 같이 통학하는 학교 선배들 가운데 건달들도 있었고 심지어 열차를 거점으로 선량한 승객을 괴롭히는 직업적 폭력배들이 있었다.
이들의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 바로 내 또래의 애송이 중학생이었다. 열차 통학 자체가 폭력으로 점철된 공포였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이따위 폭력배가 겁이 나 학교를 포기하거나 물러선단 말인가. 방법은 한 가지였다. 강해지자 담대하자 그리고 힘을 기르자. 그날부터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아령을 구입해 아침저녁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가까운 친척 형들에게 권투와 씨름을 배우며 담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동생은 유도를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기차 통학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인생의 값진 교훈을 배웠다. 독자들은 믿거나 말거나 이후 중·고교 나의 통학 열차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경남 물금에서 부산역을 오가는 통학 열차를 완전히 평정하게 되자, 전에는 불량배 눈치를 보느라 안절부절못하던 친구들이 편안하게 책을 보거나 재잘재잘 담소를 나누며 학교에 가게 됐다.
한편 당시 통학 열차는 연착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각이 잦았는데 문제는 중고교 시절 중요한 영어 수학 국어 과목이 주로 오전에 배치돼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영·수·국에서 뒤질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쉬는 시간에 쉬지 않는’ 학습법을 개발했다. 한 시간 수업이 끝나면 10분 쉬는 시간에 친구들로부터 영·수·국 교과서와 노트를 빌려서 집중 공부하는 방법이었다. 인간의 뇌는 집중해서 잠깐 본 사물이나 단어를 평생 기억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은 빌린 것이야. 돌려주면 다시 볼 수 없어. 그러니 단단히 기억하자’고 비상한 마음으로 한 공부는 가난 속에서 교과서도 갖추지 못하고 공부하던 고교 시절은 물론 의과대학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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