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그림자가 된 아기들
뉴스 보기가 겁날 정도다. 며칠 새 몇 명의 소식이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경남 거제시에서 체포된 한 사실혼 부부는 지난해 생후 5일 된 아기를 야산에 암매장했다. 30대인 엄마가 다른 남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또 다른 아이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 과천의 50대 여성은 2015년 다운증후군 남자 아기를 출산하고 며칠 후 숨지자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수원의 20대 여성은 2019년 출산한 남자 아기를 집에서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모두 병원에서 태어났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그림자’ 아기들로, 친부모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앞서 충격을 던진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2구 사건’의 30대 친모는 살인 및 사체은닉 혐의로 지난달 30일 검찰에 송치됐다. 2018년,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2명의 신생아를 출산 다음 날 목 졸라 죽이고 시신을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형량이 낮은 영아살해죄(10년 이하 징역) 적용을 검토했다가 살인죄로 변경했다. 이참에 70년 전 제정돼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영아살해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영아와 영아 아닌 자의 생명 보호를 달리 보는 것이 아동 인권을 강조하는 사회적 인식에 맞지 않는 데다 아동학대 등 다른 범죄에 비해 형량도 낮아서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영아살해죄를 폐지했거나 영아살해에 대한 감경 규정을 인정하지 않거나 아동 유기를 가중 처벌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폐지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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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신고 영아 대상 범죄 엄벌하되
만시지탄 출산통보제 도입 이어
보호출산제로 산모ㆍ아기 지켜야
」
2015~2022년 미신고 영아가 2236명에 달한다는 감사원 발표 이후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인 관련 사건은 79건이다. 이 중 사망 영아가 8명, 소재 미확인 영아가 74명이다. 여기에는 병원 밖에서 출산한 영·유아는 포함되지 않아 실체적 진실은 훨씬 더 충격적일 수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병원 밖 출산은 연간 100~200건. 특히 성범죄 피해자, 10대 미혼모, 난민을 포함한 불법체류자 등 임신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위기 산모’일수록 산모의 신분이 드러나는 병원 출산을 꺼리고, 고시원·화장실·모텔 등 위험한 환경에서 자가 분만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경찰청에 의하면 이번 감사원 발표와 별개로 2013~2022년 영아살해는 85건, 영아유기는 1185건이었다. 저출생 문제 해결에 수백조원 예산을 퍼부으면서 태어난 생명도 지키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의료기관의 아동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출생통보제’ 법안(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드디어 국회를 통과했다. 미신고 영아 살해나 불법 입양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법안이 처음 발의된 것이 2008년이라 만시지탄이 있고, 당정이 병행도입 의지를 밝혔던 ‘보호출산제’가 야당 반대로 통과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보호출산제는 위기 산모가 병원에서 익명으로 낳은 아기를 국가가 보호하는 제도다. 야당은 이 제도가 산모의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다며 반대하지만, 현장의 절박함을 외면한 처사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는데 익명 출산이 보장되지 않으면 병원 밖 출산이 더 늘어나고 산모와 아기가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보호출산제 없는 출생통보제란 반쪽짜리 대책일 뿐이다.
잔인한 영아살해는 더욱 엄정하게 처벌하되 위기 산모의 임신·출산은 국가·사회적으로 지원하는 투 트랙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아살해죄 폐지 목소리에 대해서도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산후우울증이라는 것이 실존하고, 특히 10대 미혼 산모의 경우 불안정한 정신상태에서 범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중론을 폈다. 악질적 범죄는 엄벌해야 하지만 미성숙한 위기 산모가 누구의 도움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범죄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많은 만큼 단순 폐지보다는 성립 요건을 엄격히 따져 법을 적용하자는 얘기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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