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의 미래를 묻다] 인류의 조상도 앓았다는 암, 극복까진 여전히 먼 길
이집트 피라미드 속 미라의 몸을 CT로 스캔하던 과학자들은 그의 몸에서 종양의 흔적을 발견한다. 아마도 수천 년 전 그는 40대의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마감했으리라. 인류의 조상 호미닌의 화석을 연구하던 고인류학자는 오래전 살던 그의 발뼈에서 골육종의 흔적을 발견한다. 신체의 나머지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발에 생긴 골육종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암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품은 질병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1년 사망 원인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는 단연코 암이었다. 2021년 사망자 31만7680명 중 26%인 8만2699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네 명 중 한 명꼴로 암이 직접적 사인이 된 셈이다. 198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후 1위 자리는 늘 암이 차지했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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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넷 중 하나는 암으로 사망
표적항암제 있지만 한계 뚜렷
면역항암제 특정 암에만 적용
운동 등 생활 속 작은 노력 중요
」
21세기의 마법 탄환, 항암제
암세포가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혀 왔던 만큼 대응법도 다양하게 발달했다. 항암제도 그중 하나다. 항암제로써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반드시 ‘마법의 은탄환(magic silver bullet)’처럼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과 야수의 중간 형태인 늑대인간은 반드시 ‘은으로 만든 탄환’으로만 죽일 수 있는데, 이 탄환에는 마법이 걸려 있어 사람을 피해 늑대인간에게만 날아간다는 전설이 있다. 암세포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이후에도 개체의 건강한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마법의 탄환처럼 항암제도 정상적인 세포를 피해 암세포만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어야만 가치가 있다.
암세포의 가장 큰 특징은 끊임없는 분열과 성장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개발된 1세대 항암제들은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에 더 큰 독성을 보이는 약물들이다. 이들은 암 종류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데다 오랫동안 사용해 왔기에 접근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체내에는 암세포 외에도 빠른 분열과 증식을 하는 정상 세포들도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다. 항암제를 투여받는 환자들은 머리카락과 체모가 빠지고, 구토 증상에 시달리며, 심각한 빈혈이 오는 등의 부작용을 견뎌야 했다.
이런 화학적 항암제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표적 항암제다. 말 그대로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항암제다. 가장 대표적인 표적 항암제는 2001년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로 개발된 글리벡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에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필라델피아 염색체를 인식해 공격하는 약물이다. 선별이 정확해지면 불필요한 고통과 손상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처음 글리벡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이 환호했던 이유다.
하지만 환호에 부응하는 ‘기적의 치료제’는 등장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글리벡처럼 ‘표적으로 삼을 만큼 뚜렷한 특징’이 모든 암세포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 기준 미 식품의약처(FDA)의 승인을 받은 표적항암제는 50건이 넘지만, 폐암 중에서도 비소세포폐암만, 그중에서도 특정 돌연변이가 있는 폐암의 경우에만 효과를 보이는 등 그 타격 범위가 지나치게 특수하고 한정됐다. 다소 비싼 가격도 걸림돌이다.
암세포만을 선별적으로 골라낼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던 학자들은 시선을 인체 자체로 돌리는 방법을 생각했다. 면역세포의 기능 중에는 세균·바이러스·곰팡이·기생충 등 외부에서 들어온 침입자들을 제거하는 역할도 있지만, 죽은 세포의 장례를 치르고(세포 사멸 잔여물 제거), 열심히 일하는 세포들 틈에 낀 변절자(암세포)를 찾아내 제거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
NK세포가 이런 일을 하는 대표적인 세포다. 그래서 암세포는 NK세포의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특수한 물질을 분비한다. 마치 아군의 군복을 덧입어 위장한 적군처럼 말이다. 면역항암제는 암세포의 위장막을 벗기고, 면역세포에 위치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는 인체의 자연적 면역 기능을 이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을 지닌다. 물론 암세포마다 특성이 달라 현재까지는 특정한 암세포에만 적용이 가능하며, 가격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은 여전한 문제로 남는다.
정상과 암세포의 모호한 경계
국제암연구기관(IARC)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암으로 사망한 이는 960만 명이다. 이는 2010년 암 사망자 829만 명보다 약 20% 늘어난 수치다.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로 암 환자로 진단되기에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세계 각국에서는 엄청난 자원과 인력,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양한 암 치료 방법이 강구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암 정복은 요원하다.
암 치료제 개발에 있어 가장 큰 난관은 ‘경계 설정의 어려움’이다. 암은 애초에 우리 몸의 세포에서 기원한다. 어디까지는 정상 세포이며, 어디부터가 암세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태생적 난제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인류는 늘 그래왔듯이 이 경계선을 분명하게 긋고, 경계 너머 암세포들을 퇴치할 방법을 찾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쾌거를 함께 누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각자 지니고 태어난 발암 스위치를 무심코 켜지 않도록 세심히 살피는 것이다. 신선한 음식을 적당히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며, 충분한 잠과 휴식을 취하고, 술과 담배를 끊거나 줄이며, 불필요한 자외선과 방사선 노출을 막고, 주기적인 검진을 하는 것 같은 ‘사소한’ 노력 말이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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