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엄청난 기회” 들뜬 워싱턴, 이면에선 “부메랑 된다” [김필규의 아하, 아메리카]
지난달 23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의 아이젠하워 행정동 앞 출입구에는 기자들이 파파라치처럼 진을 치고 있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미국을 국빈방문 중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백악관에서 만난 뒤 이곳으로 나올 예정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나온 쿡은 차량을 세워 놓은 곳까지 걸어가며 기자들과 대화했다. 질문이 쏟아지자 "인도에는 엄청난 기회가 있다"고 답했다.
각국 정상, 정치인들의 등장에 익숙한 워싱턴에서 이런 유력 경제인의 방문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이날 모디 총리를 보기 위해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도 총출동했다.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샘 앨트만,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산제이 메흐로트라는 인도와 구체적인 협력 방안까지 논의했다.
군사 분야에서도 움직임이 분주했다.
미국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도 지원을 거부했던 최신 개량형 무인기 30여 대를 인도에 팔기로 했다. 또 제트 엔진이나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제품을 공동생산하는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인도에 미군 함정 수리 시설도 짓기로 했다. 모두 인구 14억2500만명의 거대 인도 시장을 염두에 둔 결정이다. 지난 4월 인도는 18세기 중반부터 줄곧 1위였던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다 인구 국가가 됐다.
그러나 모두가 들뜬 국빈방문 기간, 이런 '묻지마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미국 내에선 적지 않았다. 하워드 프렌치 컬럼비아대 교수는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중국에 대한 불안감으로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한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한 채 인도와의 관계를 성급하게 정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급한 군사 투자는 나중에 미국을 향해 돌아올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인도가 국방비 늘리면 역내 안보 위험”
냉전 시대부터 인도의 주 무기 공급처는 러시아였다. 2000년대 중반이 돼서야 미국산을 수입했는데, 그 규모가 2013년 80억 달러 수준이던 게 2020년에는 200억 달러(약 26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이제 세계 최대의 무기 수입국 반열에 오른 인도 총리의 방미에 미국 방산업체들은 흥분했다. 이번 국빈방문에 맞춰 미-인도 방어생태계(INDUS-X)를 출범키로 했다. 양국이 군사 기술을 공동 개발, 공동 생산하며 관련 규제도 없애겠다는 협력체다. 관련 행사의 기조연설자로 나온 프랭크 켄달 공군 장관은 "양국의 국방 파트너십이 모든 기업인이 꿈꾸는 '하키 스틱 곡선(급격한 성장)'을 그릴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이런 인도의 군사적 확장을 경고한 바 있다. 현재 바이든 정부의 외교, 특히 대중국 정책의 틀인 된 2016년 저서『피벗(Pivot·중심축)』을 통해서다.
당시 캠벨은 인도와의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중국 못지않게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는 인도가 지역을 전략적으로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현재는 국방비 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미만에 그치고 있지만, 미국 수준(4.4%)까지 늘린다면 이 지역은 더 빠르게 위험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인도의 국방비 지출을 미국이 부추기는 모습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렇게 커진 인도의 군사력이 정치적 라이벌이나 언론, 소수민족, 분쟁 중인 이웃 나라 등으로 향할 가능성도 우려한다.
랜드(RAND) 연구소의 국방 분석가 데릭 그로스먼은 "냉전 시대에도 겪었듯 미국이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지원했던 독재자나 권위주의 정권은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우리의 친구가 아니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과거 중국 향한 환상 연상”
지금 워싱턴의 모습을 1980년대 중국이 막 개방했을 때 미국이 환상을 품던 상황과 비교하기도 한다. 마치 '중국인들에게 셔츠 한 장씩만 팔아도 엄청난 이익을 낼 것'이라 했던 식의 막연한 기대가 퍼져있다는 것이다. 프렌치 교수는 서구 기업의 기술만 베낀 채 결국은 이들의 활동을 차단해 자국 이익만 극대화했던 중국의 사례를 답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도의 발전 속도 역시 기대했던 바에 못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성장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2021년 기준 인도의 GDP는 3조2000억 달러(4216조원)로 중국(17조7000억 달러)의 5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을 따져봐도, 중국은 GDP의 2%를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반면, 인도는 0.7%에 불과하다.
인구만큼 중요한 '인력의 질'도 인도 발전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현재 인도 인구의 10% 이상이 여전히 하루 2.15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층이며, 인구의 4분의 1이 문맹이고, 세계에서 아동 영양실조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평소 인도인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했던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는 인도가 장차 중국을 견제할 세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사망하기 전해인 2014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입장을 바꿨다.
여전히 뿌리 깊은 카스트 제도, 거대한 관료주의, 여러 민족·종교 간 갈등,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엘리트층 등을 문제로 들면서 인도가 '미래의 나라'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매번 인도를 두고 이번엔 다를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지만, 리 총리가 살아 있어도 지금 인도에 그런 희망을 걸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 영부인 최초 '아오자이' 입은 김건희 여사..."반했다" | 중앙일보
- 목에 닭뼈 걸리자 "콜라 드세요"…환자 놀래킨 이 처방의 결과 | 중앙일보
- ‘전지현 아파트’ 줍줍 신화…분양가보다 60억 올랐다 | 중앙일보
- "북한산 정상 초토화"…까맣게 덮은 러브버그 방제 않는 이유 | 중앙일보
- '잠든 전여친에 강제 성관계' 기소 안한 檢…法이 뒤집었다 | 중앙일보
- 최강욱 그 건은 빙산의 일각이다…檢 당황시키는 '법원 행보' | 중앙일보
- '하루천하'로 끝난 러 바그너 반란…아프리카에 닥친 뜻밖 파장 [세계 한잔] | 중앙일보
- 위급환자 '뺑뺑이' 헤맬 때…"퇴원 못해" 응급실 1년살이 꼼수 | 중앙일보
- "바지 속 비친다" 논란 이겨냈다…요가에 진심이면 생기는 일 [비크닉] | 중앙일보
- "난 도연법사"...자숙한다던 도연스님 '25만원 유료강좌' 개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