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K바가지
바가지요금(Overcharge)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요금보다 비싼 요금을 뜻한다. ‘무언가를 퍼내는’ 그릇인 바가지에 ‘요금을 비싸게 내 손해를 본다’는 의미가 담긴 것은 조선 시대 말부터다.
바가지 같은 그릇 여러 개를 엎어놓고 이리저리 섞은 후 속에 넣어둔 숫자를 맞추는 도박이 유행했다. 숫자가 틀리면 걸었던 판돈을 잃었는데 이때부터 ‘바가지 썼다’는 관용구가 생겼다.
바가지요금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시기는 산업화가 본격화한 1960년대부터다. 다른 지역에서 온 고객이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부러 택시비를 비싸게 받았는데, ‘조폭 택시’까지 등장했다. 택시회사 직원들이 조직폭력배처럼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삼고 자사 택시만 운용하도록 다른 택시회사 기사나 고객을 위협했다.
이들은 요금이 더 많이 나오도록 미터기를 조작하거나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갔다. 공항이나 역에 터를 잡고 이런 택시로 영업하던 이들이 폭력·협박 등으로 줄줄이 구속되는 일까지 빚어졌다.
버스 요금 바가지 논란도 있었다. 수도권 특정 노선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한 버스회사가 통상 요금의 두 배나 받아 시민의 불만을 사던 때도 있었다. 자전거·컴퓨터·자동차같이 전문지식이 필요한 업종은 바가지 쓰기 좋은 업종으로 꼽힌다.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 바가지 요금을 받으며 장사하는 상인을 일컫는 ‘용팔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코로나19 규제가 풀린 후 사실상 3년 만에 맞은 휴가철을 앞두고 바가지요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역 축제나 유명 관광지를 찾은 후 ‘바가지를 썼다’는 글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작은 접시에 담긴 4만원짜리 통돼지 바비큐, 1만원짜리 어묵, 지름 10㎝에 2만500원짜리 감자전(3장) 등. 골프장 바가지에 지친 골퍼들은 코로나가 풀리면서 해외로 나가고 있다.
그간 힘들었던 상인들의 초조함도 알겠다. 그런데 그들이 텅 빈 가게에서 한숨 쉬는 3년간 소상공인 지원사업에 64조원이 투입됐다. 국민이 낸 세금이다. 코로나19로 모두 힘든 시기였지만, 사실상 개점휴업해야 했던 상인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가능했던 지원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내뱉었던 탄성이 바가지요금 때문에 탄식으로 바뀌어서야 되겠나. 외국인 관광객 커뮤니티에서 ‘K바가지’라는 조롱 어린 신조어가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한다.
최현주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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