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음악을 중심에 두다, 베를린 필하모닉 홀
클래식 음악이 대중화하기 시작한 19세기부터 음악당은 장방형 공간 한쪽 끝에 무대를 두고 나머지에 객석을 배열한 ‘구두상자형’이었다. 귀족의 좌석을 홀 중심에 놓고 연주자는 한쪽 벽에서 공연하던 살롱의 대중적 버전이었다. 2차 대전으로 전용 공연장을 잃은 베를린 교향악단은 혁신적인 새 공연장을 원했다. 1963년에 완공된 베를린 필하모닉 홀은 가운데 위치한 무대를 객석이 방사형으로 에워싸는 파격적인 공간을 선보였다. 객석들은 20여 개의 테라스로 나뉘어 블록을 형성했다. 마치 경사면에 조성한 계단식 포도 과수원 같아 ‘포도밭형’이라는 새로운 이름마저 붙었다.
건축가는 당시 베를린 공대 교수였던 한스 샤룬이었다. 그의 계획안은 한마디로 음악이 중심이 되는 콘서트홀이었다. 관객과 연주자가 하나가 되어 같이 호흡하고 음악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일방향식 공연장에 익숙했던 전문가들은 음향을 문제로 이 방사형 계획안을 비판했지만, 당시 베를린필의 상임 지휘자 카라얀의 강력한 지지로 채택될 수 있었다. 그는 샤룬의 안이 실현되지 않으면 베를린필을 떠나겠다는 엄포(?)까지 놨다. 개관 이후 카라얀의 팬들은 지휘자와 눈을 맞추기 위해 무대 뒤편 좌석을 가장 선호했다고 전한다.
높고 낮게 배열된 좌석 테라스, 구름같이 떠 있는 천장의 음향판, 부정형의 벽면으로 가득한 내부는 음악의 선율과 화음으로 충만한 유기적 공간이다. 경사진 객석은 자연스럽게 아래층 로비로 연결되고, V자형 기둥과 역동적인 계단의 로비 역시 공간적 율동이 가득하다. 건물 외형을 이루는 연속된 오목 곡선들은 마치 서커스의 천막과 같아 ‘카라얀의 서커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 뾰족뾰족한 형상은 베를린필의 최애 연주곡인 베토벤 교향곡 5번의 강렬한 도입부를 연상케 한다. 음악을 건물로 형상화한 듯한 이 건물은 전 세계 음악당의 새로운 원천이 되었다. 서울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도 그 한 줄기 세례를 받았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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