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은 딱 보면 안다? 환자도 모르고 넘어가는 '뇌전증 신호' [건강한 가족]
뇌전증 발작 바로 알기
뇌전증(간질)은 사회적 편견이 많은 질병이다. 비정상적인 뇌파로 뇌 신경세포에 과도하게 전류가 흐르면서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거나 전신이 뻣뻣해지면서 떠는 경련 등 증상이 나타난다. 뇌전증 발작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한 곳을 멍하게 보거나 손발을 규칙적으로 떨거나,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주변 사물을 만지작거리는 등 의미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증상이 경미하다고 숨기면 위험하다. 지속적 발작으로 뇌에 충격을 줘 뇌 손상 위험이 커진다.
예측 불가의 병인 뇌전증은 생각보다 흔한 병이다. 역사적으로도 뇌전증을 앓은 위인은 많다. 미국에서 4선 대통령을 역임한 루스벨트도, 네덜란드의 인상파 화가인 반 고흐도, 러시아 혁명가 레닌도 뇌전증 발작을 겪었다는 기록이 있다. 뇌전증은 뇌 신경계 질환 중 치매·뇌졸중 다음으로 환자가 많은 신경계 3대 뇌 질환이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손영민 교수는 “뇌전증 발작을 인지하기도 어렵지만 알더라도 뇌전증이라는 질환 자체에 대한 편견으로 증상을 숨기거나 제때 발견하지 못해 병을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뇌전증 발작 반복되면 인지 기능도 떨어져
뇌전증의 주요 증상은 발작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전신이 뻣뻣해지고 떨거나 침을 흘리는 등의 대발작 외에도 갑자기 멍해지면서 잘 대답하지 못하는 증상, 손을 휘젓는 등 의미 없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자동증), 아주 짧게 움찔하는 증상, 한쪽 팔다리 등에 이상 감각이 나타나는 증상, 낯선 물건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증상(데자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으면서 전신 근육에서 힘이 빠져 넘어지기도 한다. 뇌전증 발작이 지속하는 시간은 길어봤자 2분 이내다. 부분 발작은 5~10초 남짓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대발작처럼 주변에서 인지할 정도로 명확한 경우가 아니면 발작 후 곧바로 정상으로 돌아와 환자 스스로 뇌전증 발작을 건강상 문제로 자각하기 어렵다.
단, 1회의 짧은 단발성 발작은 뇌 손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의식이 돌아왔다면 특별한 조치도 필요 없다. 그런데 처음이라도 의식 없는 상태로 5분 이상 쉬지 않고 발작했다면 뇌전증 지속 상태다. 발작 지속시간이 길어지면 그에 비례해 뇌 손상 위험이 커진다. 위급한 상황으로 발작이 멈춘 후 응급실로 이송해야 한다.
뇌전증은 발작이 간헐적으로 반복하는 질환이다. 문제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발작을 겪을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2회 이상 발작을 경험하면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본다. 특히 현재의 발작 증상이 경미하다고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 뇌전증으로 발작을 반복하면 뇌에 충격을 줘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 발작의 강도도 점점 높아지면서 일상적인 활동이 어려워진다. 더 자주, 더 심하게 발작이 나타난다는 의미다. 특히 발작 지속시간이 길어지면 그와 비례해 뇌 손상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뇌전증은 발작을 조절하는 약으로 치료한다.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박광우 교수는 “뇌전증 환자의 50~70%는 약물치료로 발작 조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때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뇌전증 발작을 억제하는 항경련제를 2~3년 정도 복용하고 추가적인 발작이 없을 땐 약물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발작이 완전히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이라면 뇌전증 발작을 유발하는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적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생활습관 개선도 도움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적인 수면 습관이다. 경희대병원 신경과 황경진 교수는 “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불규칙하면 비정상적인 뇌파가 만들어지는 대뇌피질 세포의 흥분성이 증가해 뇌전증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알코올도 주의한다. 항경련제와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그 자체로도 발작 유발 요인이다. 간헐적 의식장애 증상이 자주 발생한다면 안전을 위해 운전은 하지 않는다.
발작 땐 호흡 확인하고 손발 따지 말아야
주변의 도움도 필요하다. 대개 환자 본인은 반복적으로 발작을 겪어도 기억하기 어렵다. 발작 증상이 있을 때 동영상 등을 촬영해 두면 진단 등에 도움이 된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 고아라 교수는 “뇌전증 발작으로 의식을 잃었다면 호흡을 확인하고 발작을 멈출 때까지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발작으로 기절했다면 침이 기도를 막지 않도록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발작이 얼마나 지속하는지 시간을 재야 한다. 손발을 따거나 주무르는 행위는 금물이다. 신체적 자극이 뇌를 더 자극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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