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인종 대입 우대’ 제동 건 미국 대법, 학비 빚탕감도 태클
보수 성향이 다수인 미국 연방 대법원이 조 바이든(사진) 대통령의 역점 정책이나 민주당의 이념 지향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미 정치권은 대법원 발 변수가 내년 11월 대선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의 보수 성향 판결이 민주당과 진보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 연방 대법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에 대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6대 3 의견으로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해당 제도는 연간 소득 12만5000달러(부부 합산은 25만 달러) 미만의 가구를 대상으로 한 사람당 최대 2만 달러까지 학자금 채무를 면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6명의 대법관은 행정부가 총 4300억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 앞서 의회 승인이 필요하며 독자적 권한이 없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 연설을 통해 “대법원 결정은 잘못됐으며 실수”라고 공격했다.
연방 대법원은 이날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 서비스 제공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결도 내렸다. 한 웹 디자이너가 종교적 이유로 동성 커플의 작업 요청에 응할 의사가 없는데 주(州) 법에 따라 벌금을 부과받는 건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원고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또 1960년대부터 이어진 미 대입 정책의 근간 중 하나로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을 우대해 온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지난달 29일 위헌 결정을 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비정상적 법원”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에서도 격앙된 반응이 나온다.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구호)가 장악한 대법원”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보수 성향 대 진보 성향 대법관이 6대 3으로 보수 우위 구도가 된 대법원이 민주당의 2024년 대선 전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달 초 흑인에게 불리하게 선거구를 조정하려는 앨라배마주 공화당 의원들의 시도가 투표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하는 등 진보 진영에 유리한 결정도 내놓고 있다.
앞서 지난해 6월 대법원이 낙태권을 인정한 기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하자 여성 유권자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지지층이 뭉치며 5개월 뒤 치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선방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에 최근 굵직하고 이념적 색채가 강한 사안에서 잇따라 나온 보수적 판결이 ‘어게인 2022’를 만들지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 일각에선 기대 섞인 분위기가 없지 않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하원 내 아시아태평양 코커스 의장을 맡은 주디 추 민주당 의원은 대법원의 학자금 대출 탕감 무효화 판결과 관련해 “이 결정은 지역 사회를 위한 고등교육의 꿈이 가로막힐까 우려하는 유권자들을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맞불 입법도 검토하고 있다. 대학이 동문 자녀를 우대하는 ‘레거시 입학’을 중단시키는 방식의 대안 입법을 고려 중이다.
공화당도 최근 대법원의 보수 성향 판결이 유권자 민심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을 지낸 마이클 스틸은 “흑인들에게 사실상 기회를 빼앗은 판결 이후 공화당이 흑인 사회에 다가가는 것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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