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35년 중 13년 슬럼프…심해에도 바닥은 있더라
가수 김현철(54)의 신곡 ‘투둑투둑’은 천둥소리와 빗소리로 시작한다. 비를 피해 찾아간 레코드 가게 처마 밑 설레는 만남이 노래를 듣는 내내 그려진다. 지난달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현철은 신곡에 대해 “요즘 친구들 얘기가 아니다. 제 학생 때 얘기, 그러니까 저희 세대를 위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비를 맞는 것도, 내리는 걸 보는 것도 좋아해요. 계절적인 것들을 제가 꽤 좋아하나 봐요.” 이번 미니 앨범 소재로 비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어 “일할 때 특별한 이유를 갖고 하기보단 즉흥적인 편인데, 이번 앨범도 그렇다”며 “제 노래 중 비 노래만 네댓 곡이라 콘서트 때마다 비 노래를 하게 된다. 편곡한 버전이 아깝다는 생각에 앨범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4일 발매한 김현철의 미니앨범 ‘투둑투둑’에는 비를 소재로 한 노래 4곡이 담겼다. 앨범과 동명인 신곡을 필두로, 1집(1989)의 ‘비가 와’, 6집(1998)의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를 새롭게 편곡해 넣었다. 1994년 가수 장혜진을 위해 작업했던 숨은 명곡 ‘우(雨)’도 직접 불렀다. 김현철은 이번 미니앨범을 ‘12-1집’이라고 했다. 겨울에 눈을 소재로 한 노래를 ‘12-2집’으로 묶어 내년 초쯤 정규 12집을 완성하고 싶다고 했다.
음악적 공백기가 한동안 있었다. 9집(2006) ‘토크 어바웃 러브’ 이후 10집(2019) ‘돛’으로 돌아오기까지 13년 걸렸다. 짧게는 1년, 길어도 3년 주기로 앨범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긴 시간이다. 그는 “옛날엔 음악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며 “사실 그 슬럼프 시기에 ‘내가 왜 이러지’ 괴로워했다기보다는 덤덤하게 ‘이대로 가면 음악을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다시 곡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도 없다. 그는 “문득 음악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 ‘신곡을 썼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나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사고든 무엇 때문이든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라며 “젊을 땐 마냥 오래 살 줄 알고, 이런 생각을 못 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신곡 가사(“젊은 줄도 모르는 우리 지난 젊은 날”)에도 그런 단상을 녹였다.
시티팝의 원조로 불리는 그지만, 정작 수식어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젊은 날부터 나이가 들기까지,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음악을 차곡차곡 끝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늙어감을 할 수 없이 받아들이기보다 환영하는 편”이라며 “제 노래도 저와 같이 나이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빠르게 바뀌는 젊은 감각을 허겁지겁 담아내기보다 살아온 인생이 깃든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음악이 곧 삶을 보여주는 만큼 협업은 늘 의미 있는 사람들과 한다. 백지영, 정인, 박효신, 마마무 화사·휘인, 새소년황소윤 등 다양한 장르와 연령대의 후배들과 함께했다. 이번 앨범에 함께한 애슐리 박은 그의 조카다. 그는 “소속사나 매니저를 통해서 함께하는 음악 작업은 제게 큰 의미가 없다”며 “인간적 관계를 쌓아 친해진 사람을 위해 쓰는 곡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35년간의 음악 활동을 통해 김현철은 “진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진짜 음악을 좋아한다면 몇 년 못한다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한다”며 “‘이제 음반을 못 내는 건가’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13년 만에 다시 음악을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해나간다. 어떤 심해라도 바닥은 있다. 바닥없는 심해는 없다”고 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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