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문화의 중심지는 이곳! 라이프치히의 마이스터 침머 #호텔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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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ister Zimmer Leipzig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그들의 창의적이고 전복적인 기질과 겨룰 만큼 거칠고 생경한 기운을 품고 있는 장소일 것이다. 슈피너라이처럼 말이다. 독일 라이프치히 서쪽에 자리 잡은 슈피너라이는 면화 수요가 극적으로 증가한 19세기 말에 건설된 유럽 최대 규모의 방직 공장 단지였다. 거대한 단지에 생산시설은 물론이고 노동자를 위한 주택과 상점, 유치원, 체육관 등이 조성돼 있었다.
최대량의 면화를 생산해 온 산업의 성지도 1990년대 말, 시대의 변화와 함께 마지막 생산 라인을 중단하게 된다. 텅 빈 공장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라이프치히의 아티스트들이 하나둘 이곳에 들어와 작업실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갤러리와 아트 숍, 화방 등이 생겨나면서 동독 컬처 신의 중심지가 됐다. 세계적인 작가가 된 뉴 라이프스쿨의 대표주자 네오 라우흐를 필두로 마티아스 바이셔, 로자 로이 등 일군의 화가들이 이곳을 지킨다. 100년 넘은 벽돌 건물과 규모의 압도감, 곳곳에서 발견되는 그래피티들, 폐허와 점유지 사이의 터프한 무드. 먼 과거를 호명하는 듯한 예술 작품에는 이곳의 변형된 풍경이 아스라히 드러난다.
이곳에 올 때마다 묵어갈 숙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얼마 전 ‘마이스터 침머’라는 새로운 스테이가 생겼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찾아간 봄, 어디에도 산뜻한 리셉션이나 환대하는 직원은 없었다. 더듬더듬 차가운 철문을 열고 을씨년스러운 복도와 계단을 지나, 전달받은 비밀번호를 눌러 방까지 당도해야 한다. 예약한 1번 룸은 마이스터 침머 중 가장 큰 규모로, 100평은 족히 돼보인다. 혼자 묵는 방이건만 침대는 6개가 놓여 있고 높은 천고와 창은 개방감을 더한다. 빨강, 파랑, 흰색으로 나뉜 벽면은 바우하우스 모티프로 보이지만 빈티지 소파와 철제 캐비닛, 둥근 펜던트에는 인더스트리얼 무드가 가미돼 있었다. 안테나가 달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80년대 팝, 오두막처럼 지어놓은 2층 침실, 야전병원에 놓였을 법한 간이침대…. 기묘한 광경 속에 있으니 묘한 흥미와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일렬로 놓인 여러 개의 세면대를 보니 과거 노동자들의 공동 숙소였나 싶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쳐야만 하는 커튼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유일무이한 공간적 경험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큰 미덕 아닌가. 다음 번엔 2번 룸을 기약해 볼 것이다. 다른 침대 어딘가에 유령이 누워 있을 것 같아 등골이 서늘했지만 은근히 한밤의 객쩍은 공상을 뒤척이며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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