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콩쿠르, 국가 선전에 이용”

김호정 2023. 7. 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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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임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사무총장. WFIMC는 지난해 4월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연맹에서 퇴출했다. [중앙포토]

플로리안 리임(55)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사무총장은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빠르게 대응한 인물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두 달 만인 지난해 4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를 연맹에서 퇴출 시켰다. 120여 개 회원이 모인 총회에서 90%의 찬성이 나왔다. WFIMC는 “우크라이나에서 야만적 전쟁과 잔혹 행위를 저지르는 러시아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대회를 지지하거나 회원으로 둘 수 없다”고 밝혔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958년 시작해 WFIMC의 맏형격이었던 대회다.

지난 1일 폐막한 17회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타격을 입었다. 심사위원 구성에 어려움을 겪어 본선 1주일 전까지도 명단을 발표하지 못했다. 참가자도 20%쯤 줄었다. 그중 절반이 러시아인이었다. 한국인은 총 16명이 본선에 올라 그중 바이올린 김계희, 첼로 이영은, 성악 손지훈이 우승하는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러시아 콩쿠르라는 이유로 수상자들은 복잡한 상황에 놓였다. 대회의 평판이 예전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4년마다 열리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다시 예전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을까. 플로리안 리임 사무총장은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다시 세계 공동체의 일부가 되고 WFIMC에 다시 가입하려 한다면 회원 자격을 다시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제명 결정은 콩쿠르 자체가 아니라 콩쿠르의 정치적 입장에 반대하는 뜻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전쟁의 종식, 러시아의 공동체 유입, 또 연맹 재가입 신청이 이뤄진다면 연맹 총회의 표결을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콩쿠르 개최에 맞춰 러시아 문화계는 “정치와 문화를 연결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리임 사무총장은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콩쿠르와 참가자는 러시아의 선전에 이용된다”고 했다. 또 “콩쿠르는 러시아가 위대한 문화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들지만, 옆집(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에는 사람들이 외면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콩쿠르에 참가한 음악가들에 대해서 우회적으로 의문을 표했다. 리임 사무총장은 “전쟁 중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정부가 후원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각 예술가 양심의 문제다. 올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수상이 이전처럼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다만 음악가 개인을 비난해선 안 된다고 봤다. “참가자들은 모두 자신의 경력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예술가들이다. 국가 대표가 아닌 개인으로 참가한 이들이다.”

한국 음악가들은 이번 차이콥스키 콩쿠르뿐 아니라 다수의 대회에서 우승·입상하고 있다. 지난 한 달만 해도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영국 BBC 카디프 대회, 미국 반 클라이번 주니어 대회에서 한국인 우승자가 나왔다. 첼리스트로 출발해 일본·독일 등에서 음악 행정 경력을 쌓은 리임 사무총장은 2014~20년 통영국제음악재단의 대표를 지내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한국 연주자들이 입상 이후 더 많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에겐 네트워크 구축, 대중 노출, 다양한 공연 기회 창출 등이 필요하다. 연맹은 모든 면에서 도움을 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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