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증 아들과 그를 지배한 어머니의 애증…“한국 가족과 닮았다”

나원정 2023. 7. 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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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미드소마’로 공포영화 거장으로 주목받는 아리 에스터 감독이 지난달 말 신작 ‘보 이즈 어 프레이드’를 들고 첫 내한했다. [사진 싸이더스]

“한국의 부모·자식 관계에 대해 들을수록 유대인 가족과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보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신격화된 어머니와 그 아들에 관한 방대한 유대계식 농담이죠.”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지난달 29일 개막) 개막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5일 개봉)로 처음 내한한 미국 감독 아리 에스터(37)의 말이다. 그는 데뷔작인 ‘유전’(2018)과 ‘미드소마’(2019), 두 편으로 세계적인 공포영화 거장으로 부상했다. 지난달 25일 입국해 지난 1일까지 방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를 이을 차세대 유대계 감독으로 꼽힌다. 매 작품 속 집착에 가까운 가족 간 애증 관계는 우리에게도 공감 가는 구석이 적지 않다.

에스터 감독은 소문난 한국영화 마니아다. 지난달 27일 영화 시사 후 간담회에서, 좋아하는 감독을 묻자 ‘박하사탕’(1999)의 이창동 감독부터 봉준호·박찬욱·나홍진·홍상수·장준환 등을 나열했다. 29일 부천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선 “전 세계 좋은 영화 중 한국영화가 많다. 김기영 감독 작품들과 ‘오발탄’(1960)은 시대를 앞서간 영화”라며 한국영화 사랑을 과시했다. 1일 관객과의 대화를 함께 진행한 봉준호 감독을 자신의 “영웅”이라 불렀다.

봉 감독도 에스터 감독의 팬을 자처했고, 그가 한국에 알려지는 데에도 역할을 했다. ‘유전’의 영문판 메이킹북 서문을 쓴 봉 감독은 “오컬트적 요소가 영리하고 빈틈없이 짜인 흠잡을 데 없는 장르 영화지만, 진짜 공포는 가족 그 자체다. 가족이 (또는 혈연으로 정의되는 그 유대 관계가) 지옥이라 말하는 작품”이라며 좋아하는 영화로 꼽았다.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12년 전 에스터 감독이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공부하던 시절 친구들과 찍은 단편영화가 토대다. 도심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짤막한 소동극에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한 한 중년 남자의 죄책감”(에스터 감독) 이야기를 더했다.

영화는 편집증을 앓는 중년 남자 보(호아킨 피닉스)의 좀 기괴한 ‘엄마 찾아 삼만리’다. 따로 사는 홀어머니 모나(패티 루폰)를 보러 가기로 한 날, 비행기를 놓친 보는 범죄자가 득실대는 동네에서 물을 마시려다 차에 치이고 부랑자로부터 칼부림을 당한다. 고향 집에 가려는 그의 여정은 광기 어린 살육과 탈주극으로 얼룩진다. 마지막에 만나는 가장 큰 공포는 아들을 평생 지배해온 모성애 그 자체다.

영화 ‘조커’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2019)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가 보의 중·노년기를 연기했다. 낯선 이야기에 과몰입한 감정이 지배적이다 보니, 영화 전체가 배우의 감정에 휩쓸려 휘청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에스터 감독은 “시나리오 쓰면서 자기 검열을 했던 전작보다 좀 더 본능적으로 썼다”고 고백했다.

숲속에 버려진 고아들이 올리는 연극, 유년기 악몽이 서린 다락방의 거대한 남성 성기 등 기상천외한 이미지를 극적인 삶으로 엮어내는 솜씨는 독보적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아리 에스터는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특별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가진 감독이자 파워풀한 도전자”라고 칭찬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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