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맑은 강말금

전혜진 2023. 7. 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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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연기한 여자들과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의 찬실이부터 <나쁜엄마> 의 정 씨까지, 티 없이 맑고 유쾌하게 펼쳐지는 강말금표 로맨스.
재킷은 Kusikohc. 팬츠는 Kimhekim. 슈즈는 Dr. Martens. 네크리스는 Soorium.

Q : 오늘만큼은 ‘소년’으로 변신했어요. 어릴 때 강말금은 어떤 아이였나요

A : 중학교 때 늘 쇼트커트를 하고 다녔어요. 심지어 남자아이냐고 오해하는 분도 있었죠. 교복까지 입고 있으면 친구들이 꽤 좋아했던 것 같아요. 살다 보니 그런 보이시함도 꽤 옅어진 것 같네요.

Q : 배우 이름 ‘말금’은 친구에게 500원을 주고 샀다지요. 돌이켜보면 좋은 구매였나요

A : 어떤 이름이든 누군가 불러주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고를 땐 신중하게 골랐지만, 다른 이름이어도 괜찮았을 것 같긴 해요. 일단 제 본명 강수혜와 구분돼 좋습니다. 요즘 거의 모든 사람이 저를 말금이라 불러서 이 이름에 더 익숙해요. 본명은 식구들만 부르죠(웃음).

셔츠는 Varzar. 링은 Portrait Report. 팬츠와 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잘 지었어요. 그 이름으로 늘 굴곡진 삶에도 맑고 아름다운 여성들을 그려왔으니까요. 아무래도 최근 기억에 남는 여자는 〈나쁜엄마〉의 정 씨겠지요

A : 정씨가 참 좋은 역할이거든요. 대본에서 그녀의 희로애락이 춤추는데, 써주신 만큼 표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날이 꽤 있었어요. 맘고생을 많이 해서 마지막 촬영 때는 후련했지만, 또 마지막 방영을 앞두고는 좋은 작별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식구들과 선배님들, 극중 딸래미와도 너무 애틋했으니, 힘듦마저 추억으로 바뀐 거죠. 바로 애정의 문자 날렸습니다.

Q : 고민이 깊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만

A : 정말 잘하고 싶었고, 욕심이 커서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눈물을 쏟다가 정작 나에게 카메라가 왔을때 울지 못한다던지, 그런 부분이 참 속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어쩌면 편집을 잘해주신 걸까요?

Q : 60대 분장에도 어색함이 없었어요

A : 짧은 뽀글이 머리는 일 많이 하는 시골 아주머니들의 상징이잖아요. 분장 테스트를 할 때 가발을 더 잘랐고, 흰머리를 풍성히 심었고, 심지어 가슴 보형물까지 착용했어요. 가슴이 처진 느낌을 내려고요. 첫 촬영을 하고 좀 과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요즘 60대면 참 젊은데 말이죠. 조금씩 덜어내니 현실감이 살더군요.

Q : 배우 라미란, 서이숙과의 케미스트리가 ‘끝장’났어요. 딸 역의 안은진을 포함해 극중 조우리 마을의 여자들을 자랑해 본다면

A : 미란 언니는 현장에서 사람들을 끊임없이 웃겼어요. 오늘은 어디서 밥을 먹을지 계속 검색하다가도 카메라가 돌면 바로 눈물을 쏟아내죠. 팀의 화합에 에너지를 쏟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그 과정에서 라미란이란 배우의 멋을 느꼈습니다. 이숙 언니는 거의 선생님에 가까운 선배인데, 언니처럼 대해주셨고요. 마지막 회 재판 촬영에서는 케미의 ‘정수’를 느꼈어요. 은진이는 정말 독보적 귀여움을 자랑하는데, 현장에서 ‘리틀 라미란’으로 불려요. 말랑말랑하고, 늘 열려 있달까요.

팬츠는 Minjukim. 워치는 Ferragamo Watch by Gallery O’clock. 이어 커프는 Soorium. 톱과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정 씨와 닮은 점이 있나요

A : 눈치를 많이 본다는 점? 사실 저보다 돌아가신 이모를 떠올렸어요. 어린시절 없는 살림에 뻔질나게 가서 밥을 얻어먹었는데도 제가 먹는 걸로 눈치 본 기억이 없어요. 이모는 그 동네 아주머니들과 종일 수다 떨다가, 갑자기 화를 내다가, 갑자기 웃는 이해할 수 없는 여자였어요. 하지만 언제나 거기 계셔서 힘든 사람이 찾아갈 수 있는.

Q : 마지막 회에 트롯백 역의 백현진과 로맨스가 있었죠? 전작 〈신성한 이혼〉에서 김성균과의 로맨스도 대단했고요. 로맨스에 열망이 있나요

A : 〈신성한 이혼〉에 로맨스가 있다고 해서 너무 기뻤고, 상대가 김성균이라 다시금 감사합니다(웃음). 지금 저도 사귀는 사람이 있어요. 좀 됐는데, 마흔이 넘으니까 그 사람이 정말 귀한 거예요. 매일 ‘아이고 예뻐라’ 그래요. 그런 감정을 작품에서도 표현하고 싶었어요. 더 젊었을 때 만났다면 상대의 단점만 낱낱이 꿰겠지만, 이대로 나이가 저물 줄 알았다가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니 귀하디귀하고, 마냥 아끼고 싶은 느낌 말이죠.

Q :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은 ‘진짜 같은 얼굴’ 때문에 당신을 찬실이로 캐스팅했다던데 ‘진짜 얼굴’은 어떤 걸까요

A : 고생한 얼굴이라는 건지(웃음)…. 답은 모르겠지만, 만약 제게 그런 얼굴이 있다면 그걸 계속 간직하고 싶다, 나답게 계속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요.

베스트와 팬츠는 모두 COS. 캡은 Vetements. 볼드한 링은 Soorium. 얇은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그간 연기한 여성 중 가장 비슷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인물은

A : 아무래도 찬실이. 당시 나이도, 처지도 비슷했고요. 저는 힘들 때 오히려 밝아져요. 찬실이도 황무지에서 죽지 않고 웃으면서 딱, 힘을 내잖아요.

Q : 실제 강말금은 어떤 여자인가요

A : 제 MBTI를 잘 까먹는데요. ‘I’라는 건 기억해요. 핑곗거리로 좋아요. 주변에 잘 못하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I라서 그래!’라고 할 수 있거든요(웃음). 제가 흠도 참 많은데, 내가 나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내 편인 것 같아요.

Q : 음주가무는 어떤가요. 작년 여름 천용성의 ‘보리차’라는 곡에 피처링했는데,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를 수상했죠

A : 다소 쇠퇴했습니다. 20대 때는 노래방 가수였고, 30대에는 가무보다는 ‘음주’에 집중했어요. 가무는 수줍다 보니 음주 후 시도하죠.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면 신나요. 김초희 감독도 제가 소주를 마시고 나서 좀 풀어지는 걸 보고 “말금이는 소주다”라고 했어요.

Q : 서른에 회사를 그만두고 극단에 들어갔습니다. 다시 돌아가면 서른의 강말금을 부추길 것인지 혹은 말려볼 것인지

선글라스는 Gentle Monster.

A : 스무 살에 꿈이 생기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는 새로운 것과 인연을 맺고, 누군가는 그 꿈을 쥐고 다른 세계를 차단해요. 저는 후자였어요. 공교롭게도 다른 인연이 닿을 기회도, 다른 세계로 초대될 일도, 정말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죠. 새로운 걸 열심히 배우지도 않았고요. 그러다 서른이 되니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렇게 그대로 살면 안 됐던 것 같아서 부추기겠습니다.

Q : 영화를 향한 애정은 얼마큼 크나요

A : 20대 때 더 열렬히 좋아했어요. 정말 아름다운 시기가 있었죠. 왕가위의 영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봉준호와 박찬욱의 재능이 터져나오던 시절…. 그때는 눈이 멀었었어요. 우울증 걸린 환자처럼 직장에 앉아 있다가 해운대 시네마테크에서 영화 한 편 보면 또 눈이 멀어서 돌아와요. 색채보다 더 강렬한 감정들 때문에요. 지금은 영화가 업이자 삶이 돼 제 취향만 고집할 수 없고, 감동도 잘 잊네요(웃음).

Q : 이제는 삶이 된 영화가 지닌 마법 같은 힘은 뭘까요

A : 〈천하장사 마돈나〉를 다섯 번 보고 회사를 그만둔 게 한두 달에 걸쳐 일어난 일인데, 그 자체가 마법이죠. 좋아하던 극단에 메일을 썼어요. 당시 정말 연약했던 제게는 너무 큰 한 걸음이었어요. 그런 용기를 줬기에 〈천하장사 마돈나〉가 인생 영화예요.

팬츠는 Marni. 슈즈는 Vans. 선글라스는 Gentle Monster.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좋아하는 또 다른 한국 독립영화가 있나요

A : 최근 본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와 재작년쯤에 본 〈남매의 여름밤〉이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모녀가 분리되는 과정을 그리는데, 인간관계에서 거리감이란 무엇인지 다뤄요. ‘모녀’라는 주제라도 영화가 구체성을 띠지 않거나 관념적이라면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수작이죠. 또 〈기생충〉의 박명훈 선배님이 발굴된 〈재꽃〉이라는 영화도 좋았어요. 말은 아낄 테니 꼭 보세요.

Q : 어떤 이야기가 세상에 많아지길 바라나요

A : 어쩌면 찬실이 같은 영화. 사실 독립영화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자전적인 얘기가 많다보니 다소 나이든 사람이 주인공인 얘기가 적어 아쉬워요. 더 다양한 연령대의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물론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요.

Q : 6월 말 드라마 〈기적의 형제〉로 다시 시청자들과 만납니다. 이번엔 첫사랑의 얼굴이라죠

A : 정 씨와는 전혀 다른 여자예요. 27년 만에 실종됐던 남친을 만납니다.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한, 마치 아들 같은 남친을 만나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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