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맞고 팔려 가고... 고려 주전자의 기구한 사연

임영열 2023. 7. 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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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물유적] 일본 도굴꾼 손을 거쳐 미국에 간 '고려 은제 금도금 주전자'

[임영열 기자]

 고려 은제 금도금 주전자와 승반. 고려 12세기 높이 34.3cm. 은으로 만든 다음 황금을 입혀 화려하고 정교하게 완성했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장
ⓒ 이정수
서기 1122년 4월. 고려 제16대 왕 예종(睿宗)이 향년 44세로 승하했다. 중국 송나라 황제 휘종은 재위 중에 친송정책을 펼쳤던 예종을 조문하고 새로 즉위한 예종의 맏아들 인종(仁宗)에게 교서를 전하고자 이듬해 6월 2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절단을 고려에 파견했다.

사신들 중에서 서예와 그림에 능했던 서긍(徐兢 1091~ 1153)은 한 달여 동안 고려의 수도 개경에 머무르며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비롯하여 직접 보고 들은 문물들을 상세히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서긍은 이를 바탕으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라는 책을 만들어 휘종에게 바쳤다.

그로부터 4년 후 송나라는 급격히 세력을 넓히던 금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전란의 와중에 서긍이 그렸던 그림은 사라지고 문장만 남아 전 40권의 책으로 전하게 된다. 이 책이 우리가 고려의 문화·예술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하는 '고려도경(高麗圖經)'이다.
 
 고려 은제 금도금 주전자와 승반(받침대)일체
ⓒ 국립문화재연구원
   
고려도경은 다른 고려사 자료들에서는 볼 수 없는 귀중한 기사를 많이 수록하고 있다. 고려 사회가 이방인의 눈에 어떻게 비쳤으며 또 고려의 문화·예술이 중국과는 어떻게 비교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서긍은 청자문화가 꽃을 피운 당대 개경의 모습을 보고 "고려인의 집은 꿩이 나는 듯이 화려하고 용마루를 붉고 푸른빛이 나는 청기와로 장식했다"라고 감탄했다. 비색의 청자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의 '나전칠기'를 두고서는 '세밀가귀(細密可貴)'라 상찬 했다. "세밀함이 뛰어나 가히 귀하다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봤던 고려의 나전칠기는 세밀함의 극치였다.

금과 은으로 만든 '고려 금속공예의 끝판왕'

오늘날 우리나라의 영문 표기 '코리아(KOREA)'는 '고려인이 사는 나라' 또는 '고려인의 땅'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고려(高麗)는 지금도 우리가 늘 마주하고 있는 가까운 나라라 할 수 있다. 가깝고도 때로는 먼 나라 고려 문화·예술의 핵심은 송나라 서긍이 봤던 것처럼 '세밀함'과 '섬세함', 거기에 '정교함'이 가미된 '화려함'이 아닐까 싶다.
 
 은제 금도금 주전자는 대통 모양의 몸통과 연꽃 모양의 뚜껑 그리고 맨 윗 부부분의 봉황과 승반(받침대)으로 구성 됐다
ⓒ 국립문화재연구원
   
한 이방인의 눈에 비친 세밀하고도 정교한 고려의 아름다움은 나전칠기에 그치지 않고 금속공예품을 비롯한 예술품 전반으로 이어졌다. 그 정점에 고려의 르네상스 시기라 할 수 있는 12세기에 은으로 만든 다음 황금을 입혀 화려하고 정교하게 완성한 주전자가 하나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동시대 금속공예의 '끝판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고려 은제 금도금 주전자와 받침'이다. 청자로 만든 이런 형태의 주전자는 박물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주전자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존재하는 단 하나뿐인 매우 희귀한 고려의 명품 유물이다.

사진으로 보는 주전자의 정교함과 화려함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대나무 조각으로 에워 싸여 있는 몸통. 긴 댓가지를 휘어놓은 듯한 가느다란 손잡이. 이제 막 자라나고 있는 죽순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주둥이. 주둥이 끝에는 연꽃 모양의 덮개를 달아 좌우로 돌려가며 개폐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디자인했다.
 
 주전자 뚜껑 위에서 봉황 한 마리가 두 날개를 접은 채 지그시 아래 세상을 관조하듯 내려다보고 있다
ⓒ 이정수
         
주전자 뚜껑은 반쯤 벌어진 연꽃들이 두 층을 이루고 있다. 그 위에서 봉황 한 마리가 두 날개를 접은 채 지그시 아래 세상을 관조하듯 내려다보고 있다. 백제 위덕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목숨을 잃은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었다는 '백제 금동대향로' 위에 앉아있는 봉황과 유사하다.
봉황에는 긴 첨자를 달아 연꽃 뚜껑에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음각으로 새긴 문양에는 금을 입혔다. 번쩍이는 금색과 은색이 휘황찬란하게 서로 교차한다. 만일 송나라 사신 서긍이 이주전자를 보았다면 '세밀가귀(細密可貴)'라는 말보다 더한 말을 했을 성싶다.
      
12세기 고려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이 주전자는 높이가 34.3cm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사이즈다. 대통 모양의 몸통과 연꽃 모양의 뚜껑 그리고 맨 윗 부부분의 봉황 등 세 부분으로 구성 됐다. 각 부분별로 분리가 가능하도록 실용적이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또한 주전자를 담아 놓기 위한 용도로 만든 받침대(승반)가 따로 있어 주전자와 승반이 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고려 은제 주전자의 봉황(좌)과 백제 금동대향로의 봉황(우). 고려 은제 주전자의 봉황은 두 날개를 접고 있지만 백제 금동대향로의 봉황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 이정수. 국립부여박물관
             
승반의 몸체는 주전자의 몸통처럼 대나무 조각이 에워싸고 있으며 윗부분은 연꽃 문양을 물결치게 만들어 우아함을 더했다. 대나무 조각의 몸통에는 눈을 크게 뜨고 봐야만 보이는 수많은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가느다란 선으로 음각된 꽃이나 식물 모양의 장식 문양을 어떻게 새겨 넣었는지 감탄할 따름이다.
또한 겨울에는 승반에 따뜻한 물을 담아 주전자의 술이 식지 않도록 보온했으며 여름에는 찬물을 담아 보냉 하는 실용적 기능까지 갖추었다니 참으로 놀랍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두드리고 펴고 쪼아서 이렇게 정교한 주전자를 만들었을, 이름 모를 고려 장인의 미적 감각에 경의를 표한다.
            
이 주전자가 만들어진 12세기 고려는 아름다운 비색의 청자기와로 집이나 정자를 지을 정도로 화려함을 추구했다. 이 시기는 문벌 귀족들에게 천대받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무신정권'의 시기였다. 무신들은 정권의 정통성을 보여 주려 예술 분야에 많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주전자 승반. 겨울에 따뜻한 물을 담아 주전자의 술이 식지 않도록 보온했으며 여름에는 찬물을 담아 보냉 하는 실용적 기능을 갖추었다
ⓒ 국립문화재연구원
   
 주전자 받침대(승반)의 몸통에는 눈을 크게 뜨고 봐야만 보이는 수많은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 이정수
             
고려청자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상감기법의 청자가 탄생한 것도 이 시기로, 국보 중의 국보 '상감청자 운학문 매병' 등과 같은 걸작들이 나온다. 이러한 명품들은 소문을 타고 이란, 베트남, 필리핀까지 퍼져 나갔으며 '코리아(Korea)'란 이름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아마 이때 탄생한 고려의 문화·예술이 'K-컬처'의 원조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려의 르네상스는 정권을 찬탈한 무신들이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예술로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고려 금속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은제 주전자 또한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고려 주전자가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있는 사연
 

우리 땅 고려에서 900여 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21세기 최첨단 기술과 디자인으로 만든 유럽의 어느 주전자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은제 주전자를 우리는 쉽게 만날 수없다. 국내에 없기 때문이다.
  
 주전자 뚜껑은 반쯤 벌어진 연꽃들이 두 층을 이루고 있다
ⓒ 이정수
 
국내에 있었다면 이미 국보로 지정되고도 남았을 이 주전자는 현재 미국 보스턴 미술관(The MFB, Museum of Fine Arts, Boston)이 소장하고 있다.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고려의 명품 은제 주전자가 어떻게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미국의 보스턴 미술관에 놓이게 되었을까.

해외에 소재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 문화재는 구한말을 거쳐 일제 강점기 때 유출된 것들이다. 이 주전자의 사연도 일제 강점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935년이다. 일본 최대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상회 뉴욕지점에서 동양 미술품 경매시장이 열린다.

야마나카 상회(山中商會)는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두고 아시아뿐만 아니라 뉴욕과 보스턴, 런던, 파리, 베이징 등에 진출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양 미술상이다. 여러 차례 전람회를 열어서 우리 문화재를 서구와 일본에 반출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이날 경매에서 보스턴 미술관은 7점의 한국 유물을 구입했다. 그중의 한 점이 고려 은제 주전자다.
 
 막 자라나고 있는 죽순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주둥이. 주둥이 끝에는 연꽃 모양의 덮개를 달아 좌우로 돌려가며 개폐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디자인했다
ⓒ 이정수
 
야마나카 상회가 이 주전자를 누구를 통해 어떤 경로로 손에 넣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도굴꾼들이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모든 고려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을 파헤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 주전자 또한 개성 인근의 훼손된 무덤에서 도굴꾼의 손을 피해 가지 못했다.

보스턴 미술관은 야마나카 상회로부터 "개성 부근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다"라는 단 하나의 정보와 함께 1만 달러를 주고 이 주전자를 구입했다. 구입 당시 주전자는 흙을 잔뜩 뒤집어쓰고 녹이 슬어 있어 청동으로 만들어진 줄 알았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고 보존처리를 진행하던 과정에서 평범하게 생각했던 청동 주전자가 휘황찬란한 황금빛으로 바뀌는 순간 미술관 관계자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얇은 은판을 안에서 밖으로 두들겨 입체 문양을 새기는 '타출문(打出文)' 기법으로 세밀하게 연꽃과 봉황을 새겼고 그 위에 금을 입혀 화려하고 정교하게 완성한 금속공예 기술의 극치를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고려 은제 주전자(좌측)와 같은 시기에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청자 청자 퇴화 연꽃 넝쿨무늬 주전자’(우측)
ⓒ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보존처리를 끝낸 보스턴 미술관은 1982년에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미술관에 '한국실(Arts of Korea Gallery)'을 마련하였고 고려 은제 주전자를 비롯하여 다른 한국 유물들과 함께 전시했다. 우리 땅에서 우리 손으로 만들었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망국의 한을 품은 채 도굴꾼의 손을 거쳐 미국으로 팔려간 고려 은제 주전자는 몇 번의 고향 나들이를 한다.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 주관으로 열린 '한국박물관 100주년 기념전'과 2013년 삼성미술관 리움 전시회 '금은보화: 한국 전통공예의 미'에서 전시된 바 있다. 2013년 리움 전시회 때는 보스턴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직접 내한하여 작품을 설치했다. 국내 관계자들조차 근처에 얼씬도 못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으며 그때 이 주전자의 보험 가액이 무려 400만 불(환화 52억 원)이었다고 하니, 그 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에도 한차례 고국을 방문했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최하는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이 열렸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450여 점의 고려 유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때도 은제 주전자는 고려의 대표 유물로 포스터에 실릴 만큼 큰 관심과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전시회가 끝난 뒤 은제 주전자는 아쉬움과 긴 여운을 남겨둔 채 다시 고향을 떠나 쓸쓸히 머나먼 타향으로 향해야 했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주전자를 고향땅으로 영원히 데려 올 수는 없을까. 안타깝지만, 미 보스턴 미술관에서 선의로 돌려주지 않는 이상에는 환수하는 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1935년 이전에 불법적으로 반출됐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보스턴 미술관의 내부 보고서에는 이 주전자를 포함한 한국 문화재의 소장 경위가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22만 9천여점'의 사연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있는 ‘한국실(Arts of Korea Gallery)’ 한가운데에 고려 은제 금도금 주전자가 놓여 있는 모습. 홈페이지(https://www.mfa.org)에는 '2012년 11월 16일 개관한 한국 미술 갤러리'라는 소개가 붙어있었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미 보스턴 미술관
 
고국을 떠나 해외에 떠돌고 있는 문화유산이 그러나 어디 이 주전자뿐이겠는가. 2023년 1월 기준 약 22만 9천 여 점의 우리 문화재가 해외에 나가 있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하여 미국·캐나다·유럽·호주 등 27개국에 흩어져 있다.

국가 간 상호 문화교류 차원의 교환이나 구매·기증 등 합법적 경로를 통해 나간 것들도 있지만 조선 말기 서구 열강들의 침략,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약탈당한 문화재들이 훨씬 많다.

어렵고 힘든 일이겠지만, 도난이나 약탈 등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적극적으로 되찾아 와야 한다. 합법적 환수가 불가능한 유물들은 현지에서 잘 활용하여 'K-컬처'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노력하는 것도 환수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알리고 지키는 것은 곧 한국 역사를 지키는 일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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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잡지 <대동문화>137호(2023년 7,8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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