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집배원에게는 할일이 하나 더 있다
우체국은 여전히 충북 옥천 곳곳 주민들의 발 빠른 소식통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우체국의 얼굴은 다름 아닌, 직접 현장을 달리는 집배원들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지면에 담아봅니다. <기자말>
[월간 옥이네]
▲ 23년간 집배원으로 일해왔다는 충북 옥천우체국 이윤식씨 |
ⓒ 월간 옥이네 |
[관련기사]
평범해 보이죠? 근데 여기, 보통 우체국이 아니랍니다 https://omn.kr/24jyi
녹음이 푸르른 도로변을 빨간 오토바이 한 대가 힘차게 달린다. 그러다 어느새 좁은 마을 길로 쑥, 방향을 틀어 시야에서 사라지는데 자동차로는 따라갈 수 없는 신속함이다. 이쪽저쪽 민가에 멈추어 설 때마다 앞쪽 우편 바구니와 뒤쪽 택배 칸에 가득하던 우편물과 소포가 하나씩 줄어들고 오토바이의 움직임도 가벼워지는데...
23년간 집배원으로 일해왔다는 옥천우체국 이윤식(48)씨. 군북면 국원리에서 한창 배송 업무 중인 그의 모습이다.
농촌 집배원의 하루
이윤식씨를 비롯한 우체국 집배원의 주된 업무는 우편물 분류 작업과 집배 작업이다. 정규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출근과 동시에 우편물을 읍·면, 마을 단위로 분류하고 오전 8시 30분 즈음이면 하루 집배할 우편물과 소포를 챙겨 탈 것에 몸을 싣는다.
29명의 옥천우체국 집배원은 구역에 따라 성왕(군서~군북 일대), 향수(향수 100리길을 끼고 있는 안내~안남 일대), 금강(동이~이원 일대)팀으로 나뉘는데 이윤식 집배원은 성왕팀이다. 그가 옥천우체국에 입사한 2000년부터 지금껏 대부분의 시간을 해당 구역을 다니는 데 쏟았으니, 머릿속에 지도가 훤히 펼쳐질 테다. 오토바이에 부릉,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그는 '움직이는 우체국'이 된다.
"하루 평균 10개 마을, 700여 개 우편물을 전해주죠. 우체국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내가 곧 옥천우체국이자 국장과도 같아요. 매일 익숙한 길과 마을, 주민들을 만나러 가는 거죠."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자연 풍경은 농촌 집배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봄이면 벚꽃 터널을 달리고, 탁 트인 대청호 바람을 느끼기도 한다. 추소리 병풍바위(부소담악)가 바라다보이는 구간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다.
▲ 25살 젊은 나이에 집배원이 되어 48세, 중년이 되기까지 그는 수많은 이들을 만났다. |
ⓒ 월간 옥이네 |
대체로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어둔 뒤 빠르게 다음 배송지로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면 배달이 원칙인 등기 우편물·소포를 전달할 때는 자연스레 주민들과 교류할 일도 생긴다.
"자주 마을에 다니다 보니 제 얼굴을 아는 분들이 많죠. 농촌에서 좋은 집배원이 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인사를 잘하는 거예요."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는 이윤식 집배원. 특별한 말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서로 건네는 인사 한마디가 하루를 풍요롭게 한다. 그가 집배원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 역시 주민들과 교류할 때다.
이윤식 집배원이 만난 사람들
25살 젊은 나이에 집배원이 되어 48세, 중년이 되기까지 그는 수많은 이들을 만났다. 지금은 옥천 지리에 빠삭한 집배원이라지만, 충북 보은군이 고향인 그이기에 처음엔 옥천 지리를 잘 알지 못했다. 배송지를 찾아다니느라 한동안 진땀을 흘리던 시절도 있다고. 집배원으로서 주어진 일 이상을 하게 될 때도 종종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잘 없지만, 초창기에는 마을 심부름을 해드릴 때도 많았죠. 마을 보건지소장님이 가는 길에 어디 어머님께 약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시기도 하고, 반대로 어머님들이 누구한테 전해달라고 부탁하실 때도 있고... 어머님들이 직접 가시기 어려우니까요. 저 주시라면서 받아들고 나왔죠. 어머님들은 그럴 때면 고맙다면서 꼭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챙겨주시곤 했어요."
그렇게 건네받은 먹을거리 때문에 오히려 곤욕스러울 때도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이어진다.
"어머님들 냉장고 속엔 생각보다 오래된 음식이 많으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요구르트 같은 것... 그냥 건네주시면 이따가 마시겠다며 나오면 되지만, 뚜껑을 따서 주시면 이것 참 곤란하죠(웃음)."
마을에 큰 행사가 있거나 모내기 시기처럼 주민들이 모이는 날이면 "새참을 먹고 가라"며 지나는 그를 불러세우기도 했다. 눈이 어두워 글자 읽기가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고지서 내용을 읽어드리거나 배달 온 물건을 대신 설치해드리는 날도 있었다. 번거롭지만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보람이 됐다.
▲ 공동선박 막지 1호와 손용화 선장과 이윤식 집배원 |
ⓒ 월간 옥이네 |
이윤식씨는 특별히 '배를 타는 집배원'이기도 하다. 그의 담당 구역인 군북면에는 막지리, 용호리, 석호리와 같이 배를 이용해 물을 건너 들어가는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육로를 이용하면 너무 먼 길을 돌아가야 하기에 마을 선장에게 부탁해 배를 타곤 한다.
"거의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꼴로 배를 타죠. 처음 집배원이 됐을 때부터 이 구역은 제가 전담하다시피 해왔습니다. 막지리 주민인 이수길, 손용화 선생님이 선장으로 배를 건너 주시죠. 두 분과 거의 매일 만나는 사이인 거예요(웃음)."
국원리 우편배달을 마치고 소정리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공동선박 막지 1호와 손용화 선장이 늠름한 자태로 기다리고 서 있다. 이윤식 집배원은 익숙한 듯 인사하며 우편물을 건넨다. 우편물 성격에 따라 직접 마을로 들어가기도, 이렇게 선장을 통해 전달하기도 한다. 마을에 직접 들어갈 때면 배를 타고 들어가, 막지리 선착장에 놓인 오토바이로 갈아탄 뒤 우편물을 배송한다고.
"저쪽 선착장에도 우체국 오토바이가 놓여있죠. 여기(소정리 선착장)서 배 타고 들어가면 막지리 장고개에서 내리는데, 거기서부터 맥계마을까지 오토바이 타고 들어갑니다."
이전에는 마을 주민의 오토바이를 빌려 타기도 했지만, 안전이나 관리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우체국 오토바이를 한 대 비치해놓았다. 평상시에는 막지리 선장이 관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막지리에서 선장과 집배원은 실과 바늘 같은 사이인 셈이다.
"젊은 시절부터 자주 보면서 지내왔어요. 이윤식 집배원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막지리에 소식을 전해주러 오지요. 없으면 절대 안 될 존재입니다." (손용화 선장)
▲ 우체국으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우편물 분류 작업을 하면서 다음날 일정을 준비하면 일과가 마무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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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순간, 달라진 것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많지만 물론 괴로운 순간도 있다. 대부분 육체적인 어려움과 관련된 것이다.
"제가 아직 젊을 때 일이에요. 성탄절 전날인데 비가 부슬부슬 내렸죠. 평소처럼 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한 집에 들어섰는데 개 한 마리가 튀어나와서 다리를 문 거예요. 하필이면 목줄이 끊어져 있었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다리에 피가 흐르더라고."
이후 집 주인에게 연락해 병원비는 받았지만, 다치는 바람에 성탄절 전날 홀로 집에 머물러야 했던 상황이 지금껏 기억에 남는다고. 사실 직업 특성상 '안전'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오토바이로 하루에도 수십, 많게는 100km 이상을 운행하는 집배원에게는 안전이 제일 중요해요. 한번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 자체로 큰 사고니까요. 저도 눈길,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를 겪은 적이 있지요."
오랜 세월 집배원으로 지내는 동안 달라진 농촌 풍경에서 쓸쓸함을 느낄 때도 있다. 익숙한 존재가 사라졌을 때 몰려오는 상실감이 특히 크다.
"마을에 가면 둥구나무 정자 아래에 어르신들이 앉아계시곤 하죠. 늘 인사 나누던 어르신이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요. 돌아가셨다는 말씀 들으면 마음이 참 허전해요."
아직까지 면 지역은 옛 마을 형태가 남아있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옥천읍 곳곳에 아파트가 여럿 생기면서 집배원들에게도 커다란 변화가 왔다.
"마을 주택을 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과 아파트로 다니는 것은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아파트는 '닫혀 있는 집' 같은 느낌이죠. 마을로 배달할 때는 이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댁에 안 계시면 보통 어디 계시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아파트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인사 나눌 일도 거의 없고... 아무래도 정을 느끼기에는 마을에 가는 편이 훨씬 좋지요."
20여 년간 집배원으로 일해온 이윤식씨가 농촌 집배원으로서 경험한 낭만과 어려움이다. 많은 것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세상이지만,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이윤식 집배원은 그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산 넘고 물 건너 오토바이를 달린다.
월간옥이네 통권 72호(2023년 6월호)
글 한수진 사진 한수진·이혜빈
▲ 23년간 집배원으로 일해왔다는 충북 옥천우체국 이윤식씨 |
ⓒ 월간 옥이네 |
▲ 많은 것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세상이지만,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이윤식 집배원은 그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산 넘고 물 건너 오토바이를 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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