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남자배구 보여드릴게요”
한국 남자배구는 이달부터 중요한 국제대회를 연달아 치른다. 오는 8일 대만에서 열리는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저컵을 시작으로, 8월 이란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있다. 경우에 따라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 챌린저컵에 나설 수도 있다.
임도헌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굵직한 대회들을 앞두고 세대교체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대표팀을 이끌어왔던 현역 최고 세터 한선수(38), 통산 블로킹 1위 신영석(37) 등 핵심 베테랑 선수들이 빠진 자리를 코로나19로 장기간 국제대회 경험이 없었던 젊은 선수들이 대신했다.
30대는 미들블로커(MB) 조재영(32), 리베로 오재성(31)뿐이다. 김민재와 정한용는 각각 2003년 2001년생이고, 박경민 임동혁 임성진 등 1999년생도 대거 포함됐다. 미래세대들에게 국제대회 경험을 통한 성장 기회를 줌으로써 장기적으로는 2028년 LA올림픽까지도 내다본 결정이다.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선수가 세터 황택의(27·KB손해보험)다. 황택의는 그간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을 이끌어온 세터 한선수에게서 주장과 주전 자리를 모두 물려받았다. 지난달 21일 충북 진천선수촌, 29일 전화통화 인터뷰에서 “주장으로서 남자배구가 국제대회에서 뭔가를 해와야겠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황택의는 2016-2017시즌 V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프로에 데뷔했다. V리그 출범 후 세터의 1순위 지명은 처음이었다. 신장 190㎝ 장신세터인 그는 강서브까지 갖춰 데뷔 전부터 최대어로 불렸다.
데뷔 후에도 승승장구했다. 데뷔 시즌 남자부 신인왕에 올랐고, 2017년 생애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2020-2021시즌부터 2022-2023시즌까지 최근 3시즌 연속 베스트7 세터로 뽑히며 V리그를 대표하는 세터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 주전 세터로 뛴 적은 없다. V리그 남자부 최강인 대한항공의 통합 3연패를 이끈 한선수가 대표팀 주전 세터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선수의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어느덧 노장의 반열에 오르면서 대표팀은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이에 따라 황택의는 한선수의 주전 자리와 함께 주장 역할도 물려받게 됐다.
“배구하면서 주장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형들 하는 걸 보면서 ‘진짜 힘들고 책임감도 강해야겠다’ 생각만 해봤는데 막상 저한테 하라니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잠도 잘 안 오고…. 제 성격이 누구를 챙기는 성격이 못돼서 잘할 수 있을까 생각도 했어요.”
처음에는 배구에도 영향이 미치는 듯했다. “같이 운동하면서 ‘너무 부담 느끼는 거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최대한 티를 안 내려 하는데 부담 갖는 게 주변에서 느껴졌나봐요. 그래서 (한)선수 형이 더 대단하다 생각했어요(웃음).”
첫 주장의 무게는 대표팀의 동료, 감독 및 코치진의 지원으로 이겨내고 있다. “다들 제가 처음인 걸 알아서 옆에서 도와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형들이 많이 도와줘요. 특히 (정)지석이 형이 일부러 장난도 쳐주고 말도 많이 하면서 긴장도 풀어줘요. 소속팀인 KB손해보험에서는 (정)민수 형이 주장을 맡았는데, 그 형도 처음이라고 해서 서로 얘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한국 남자배구의 침체기는 사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이상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고, 2024 파리올림픽도 사실상 어렵다.
올해 AVC 챌린저 대회는 남자배구 부활을 위한 첫 단추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7월말 열리는 2023 FIVB 발리볼챌린저컵 출전자격을 획득하고, 발리볼챌린저컵에서 또 우승하면 최상위 리그인 2024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 진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랭킹포인트를 꾸준히 쌓아올리면 2028 LA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누구보다 간절하다. ‘남자배구 침체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이어져와서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황택의는 “그런 말을 들어서 기분이 나쁘진 않다”고 운을 뗐다.
“이게 현실이니까 기분 나빠하기보다는 뭔가 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안 나다 보니 V리그 인기도 좀 떨어지는 거 같은데, 결국은 이것도 선수들이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선수들이 합심해서 국제대회에서 뭔가 보여주면 올라올 거라 생각해요. 남자배구 현실에 대해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꼭 뭔가를 이뤄내고 와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어요.”
국제대회를 앞둔 기대감도 크다. 황택의는 지난해 국제대회에서는 백업으로 나섰다면, 이제 주전 세터로서 팀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작년에는 시합을 많이 뛰진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느는 것 같아요. 국제대회를 많이 해야 보는 눈도 올라가는 걸 느꼈어요. 올해는 주장으로선 부담이 많이 되지만, 시합을 뛰는 입장으로선 기대가 많이 돼요. 제가 뛰어서 팀이 바뀌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면 좋을 거예요.”
동료들 자랑도 했다. “잘하는 선수들만 모여서 실력은 걱정이 없어요. 아포짓스파이커(OP) (허)수봉이 (임)동혁이, 아웃사이드히터(OH) 지석이형은 말할 것도 없고요. (김)민재는 막내인데도 기죽지 않고 해요. 리그에서 상대편으로 만날 때도 막기 힘들다 생각했는데, 같이 해보니 왜 못 막았는지 알 거 같아요. 점프도 좋고 때리는 스피드도 빨라요. (미들블로커 세대교체 우려는) 재영이 형이 채워주고 있고, 감독님도 관심이 많으셔서 잘할 거라 믿어요.”
물론 꽤 급격한 세대교체에 따른 영향으로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감독님께서 항상 ‘공 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코트 위 6명이 다같이 뛰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예전 잘하던 형들이 많이 빠지면서 인원이 바뀌긴 했지만, 서로가 신뢰하면서 뛴다면 잘할 수 있다 생각해요.”
지난 5월 국군체육부대(상무)로 입대한 황택의는 육군훈련소에서 1주차만 마치고 대표팀에 소집됐다. 만약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면 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는 “그것 때문에 열심히 하는 건 아니고 나라를 대표하는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기대가 없진 않다”고 말했다. 소속팀 KB손해보험이 2021-2022시즌 준우승에서 2022-2023시즌에는 6위로 급락한 영향도 있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집에서 저희 팀 경기를 볼 땐 살면서 제일 힘들었던 거 같아요. 팀도 지고, 경기도 못 나가니까…. 혹시라도 금메달을 따게 된다면 바로 복귀할 수 있고, (나)경복이 형이나 (황)경민이도 같이 면제가 되면 저희 팀 잘할 거라는 기대도 있어요.”
하지만 이는 아직 먼 얘기다. “아시안게임은 생각도 안 하고 있어요. 일단 눈 앞에 있는 AVC 챌린저 대회부터 우승을 하고 싶어요. 부상선수들도 다 복귀를 해서 코트 안에서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만 잡으면 될 거 같아요. 팬들께서도 남자배구 기대 많이 하시는 거 같은데, 선수들이 실망시키지 않도록 좋은 성적 거두고 오겠습니다.”
진천=글·사진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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