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 위협 시달리는 전세계 팩트체커들, 그래도 계속 싸우는 이유

곽우신 2023. 7. 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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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팩트체크 컨퍼런스 '글로벌 팩트10' 성료... 권력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팩트체크 연대

[곽우신 기자]

▲ 요엘 로스와 1:1 대담 지난 6월 30일, 트위터의 신뢰 및 안전 부서 책임자였던 요엘 로스가 '글로벌 팩트10'의 마지막 날 세션에 참여해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취임 첫 주 동안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고,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거짓 및 허위정보와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밝혔다.
ⓒ The Poynter Institute and
 
"비는 왔지만, 그 비가 우리 마음까지 어둡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의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 센터장이 '글로벌 팩트 10(Global Fact 10)'의 폐막을 선언했다. 장마 기간 도중 치러진 행사였지만,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치러진 '글로벌 팩트 10'은 여느 해가 그랬듯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컨퍼런스룸에 모인 수백 명의 팩트체커들은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박수로 인사했다.

'글로벌 팩트 10'은 세계 최대 규모의 팩트체크 컨퍼런스 '글로벌 팩트'의 10번째 행사이다. 지난해 '글로벌 팩트 9'이 노르웨이 오슬로(관련 기사: '가짜뉴스 확산, 페북·인스타는 책임 없나'... 날 세운 팩트체커들)에서 성황리에 치러진 데 이어, 올해 6월 28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SNU팩트체크센터와 IFCN(국제팩트체킹연맹)의 공동 주최로 열렸으며, 아시아권 국가에서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 세계 75개국에서 온 550여 명의 팩트체커, 언론인, 학자들은 '허위조작정보(학계에서는 정치적 구호로 쓰이는 '가짜뉴스' 대신 '허위 조작정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에 맞서 팩트체크가 어떻게 싸워 나가야 할지 심도 있는 논의를 올해도 이어갔다. 정은령 센터장은 이날 폐회사에서 "우리는 이 컨퍼런스에서 팩트체커들이 맞닥뜨린 도전들이 얼마나 크고 어려운 것들인지를 확인했다"라면서도 "그러나 그것들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팩트체커들의 의지, 그리고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들은 그 어려움보다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라고 강조했다.

신변 위협 받는 전세계 팩트체커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 개회사 중인 정은령 SNU팩트체크 센터장 정은령 SNU팩트체크 센터장이 28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글로벌 팩트 10 행사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 The Poynter Institute and
 
정 센터장이 시사한 것처럼, 팩트체크를 향한 위협과 압박은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통의 현상임을 이번 컨퍼런스에서 재확인할 수 있었다. 당초 러시아 독립신문 <노바야 가제타> 소속 탐사 저널리스트가 '글로벌 팩트10'의 기조연설을 맡아 한국에 올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사고가 있었다(관련 기사: 글로벌팩트 연설 차 방한 앞둔 러시아 기자, 갑자기 연락 끊겨).

3일의 기간 동안 다양한 사례들이 팩트체커들 사이에서 공유됐다. '미디어 리터러시 버스'를 타고 스페인 곳곳을 돌며 팩트체크 교육에 나섰던 언론인들은 첫날부터 사이버 테러와 협박에 시달리며 프로젝트 중단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브라질의 팩트체크 전문매체 <아오스파토스> 역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브라질 의사당을 점거한 이들에게 매도당하며 공격받았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짜 팩트체크'가 팩트체크인 것처럼 행세하며 허위조작정보를 퍼트리고 있다.

필리핀 비영리 매체 <베라파일즈>는 정부와 대통령에 비판적인 팩트체크에 나섰으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직접 TV에 나와서 해당 팩트체크를 오히려 사실이 아니라고 거짓 반박했고, 지지자들로부터 소총을 든 남자들의 사진을 전송받는 등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첫날 세션에서부터 한국의 팩트체커들은 ' '진실 판정의 사법화' 현상을 지적하며, 한국의 정치권력이 어떻게 팩트체크를 위축시키는지 공통의 우려를 표했다(관련 기사: 국제 행사까지 열었지만... 한국은 '팩트체크' 위축 걱정).

팩트체크, 허위조작정보와 맞서 싸우다
 
▲ 글로벌 팩트가 걸어온 지난 10년에 대한 회고 '글로벌 팩트10'의 첫날인 지난 6월 28일, 빌 아데어 듀크대 실용저널리즘 및 공공정책 석좌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글로벌 팩트가 걸어온 길을 유쾌하게 소개하며 그 발자취를 돌아보고 있다. 발표 도중 코엑스에서 컨퍼런스 장소를 찾는 게 매우 어려웠음을 유쾌하게 꼬집어서 박수를 받기도 했다.
ⓒ Poynter&IFCN
 
3일 간의 세션에서 가장 많이 눈과 귀에 들어온 단어들은 'Battle', 'Combat', 'Fight', 'Counter' 등이었다. 전세계 곳곳에서 팩트체크와 허위조작정보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어떤 전투에서는 팩트체크가 충분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어떤 전투에서는 분명한 성과를 거뒀다.

컨퍼런스 기간 동안 팩트체커들은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어떻게 효율적으로 허위조작정보와 싸울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지리아와 케냐, 튀르키예와 브라질 등 세계 여러 나라들이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여러 문제들을 각자의 방법대로 우직하게 돌파해나갔다. 조르지아와 나이지리아, 몽골의 팩트체커들은 사실에 기반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비판조차 찍어누르는 각국 정부의 검열과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학계와의 협력 증진에 대해 논의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미래의 '팩트체크' 세대를 양성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AI가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조명되면서, 오히려 AI를 팩트체크에 활용해 효율적으로 이를 교정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들도 공유됐다. 추락하고 있는 언론의 신뢰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왔다.

새로운 방법론으로 단순한 '폭로(debunking)'를 넘어 '사전폭로(pre-bunking)'하는 개념도 활발히 제시됐다. 허위조작정보가 횡행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팩트체크가 대처하는 방향이다. 이는 갑작스럽게 허위조작정보가 등장하더라도 그 유통을 억제하고, 다시 팩트체크하는 수고도 덜 수 있도록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아예 시장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사전에 검증된' 통계와 사실들만을 가지고 토론하는 실험이 열리기도 했다. 토론 도중에 어떤 숫자나 주장이 '사실이다 아니다'로 싸우며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모든 후보가 공통의 데이터를 제공받고 그 안에서만 토론을 진행하는 형식이다. 사전 검증되지 않은 자료가 제시되거나, 팩트체크가 필요한 주장이 갑자기 등장할 경우, 토론 현장의 팩트체커들이 이를 실시간으로 검증하거나 사후 검증해 보도하기도 했다.

또한, 전세계 팩트체커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글로벌 팩트의 최대 후원사인 동시에 허위조작정보 전파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메타와 여러 소셜 미디어들을 다그치며 제 역할을 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트위터의 신뢰 및 안전 부서 책임자였던 요엘 로스는, 컨퍼런스의 마지막 날 마이크를 잡고 그가 트위터를 그만두기 직전까지 일론 머스크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폭로하며 트위터가 왜 허위조작정보 유통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하기도 했다.

 박수 받고 눈물 흘린 핀란드 기자... 서로 응원하는 팩트체커들 
 
▲ 제시카 아로와 1:1 대담-푸틴의 트롤에 관하여 '글로벌 팩트10'의 둘째날인 지난 6월 29일, 친러시아 인터넷 트롤들의 활동을 조사한 핀란드 언론인 제시카 아로가 기조 발표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의 허위조작정보를 파헤친 그는 여러 혐오발언으로 공격받은 바 있다. 미국 국무부로부터 '용기 있는 국제여성상'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던 사실이 드러나 수상이 철회된 적도 있다.
ⓒ Poynter&IFCN
 
정은령 센터장이 폐회사에서 "우리에겐 할 일이 많다"라고 말한 것처럼, 전세계의 팩트체커들은 이처럼 무수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시민의 알 권리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컨퍼런스 기간 중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집권여당은 잘못된 사실관계를 가지고 여러차례 SNU팩트체크센터를 공격했다가 망신을 산 바도 있다(관련 기사: MBC 때리려다 망신살 제대로 뻗친 국힘 박성중 팩트체크 공격 박성중의 자폭? '정부여당 부정비율 79%' 공개).

'글로벌 팩트'는 이처럼 허위조작정보와 맞서 싸우는 제1방어선의 팩트체커들이 매년 서로 연대하고 응원하는 자리이다. 또 다음해 글로벌 팩트를 기약하며, 1년을 더 싸워나갈 힘을 얻는 자리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선전·선동 목적으로 만들어진 '트롤 공장'의 실체를 폭로했던 핀란드 탐사전문기자 제시카 아로는 친러시아 성향 매체들과 해커 등으로부터 신상털기와 모욕에 시달리다 고국을 떠나야 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그는 현장의 팩트체커들로부터 격려의 박수가 쏟아지자 잠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다른 해와 달리 한국에서 개최됐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세션에 동시통역이 제공되면서,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참가자들 역시 높은 수준으로 세션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의 상황과 사례에 관한 분과 회의들도 여럿 열렸고, 여기에 참석하는 영어권 참가자들에게 역시 동시통역이 제공되는 섬세함이 돋보였다.

전세계에서 모인 팩트체커들은 샴페인을 부딪치며 내년에도 다시 한 자리에 모일 것을 약속했다. 2024년 열릴 '글로벌 팩트 11' 개최지는 오는 9월 중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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