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지금 못 한다면? 앞으로도 못해![개척자 비긴즈]
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스물한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긍휼. 교회를 개척하게 되면 이 마음을 꼭 가지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 가치가 사라지면 교회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는 사실을 붙잡기로 다짐했다. 개척 후 제일 먼저 계획 한 것이 긍휼과 선교였다.
주변에서 ‘자립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는 현실적 조언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초보 개척자는 결정했다. 기도하며 결정을 내리기까지 가슴에 적고 또 새겼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하지 못한다. 혹 하게 되더라도 재정 운영의 원칙에 밀려 가장 먼저 줄이고, 가장 늦게 올리게 되는 것이 긍휼과 선교가 될 것이다.’
이 원칙이 흔들리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재정을 사용할 때 소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적고 많음을 떠나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플렉스(Flex)’가 아닐까.
부교역자Y 시절, 교회에서 청소년 부서를 담당했다. 이들의 마음을 얻기란 참 쉽지가 않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러할까.’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사랑. 분명 힘든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이따금씩 옅은 미소라도 띄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짝사랑하던 이성이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을 향해 씨익 웃어보일 때 심장 소리가 귓가에까지 들리는 경험이 이러하지 않을까.
단체 카톡방 안에서도 교역자가 남긴 문자가 폭발적인 반응을 기대하긴 어렵다. 답톡으로 반응하는 몇몇 아이들, 이모티콘으로 소소한 감정을 표출하는 아이들이 눈에 띄는 날은 오랜만에 입은 바지에서 지폐를 찾은 것처럼 기쁜 날이 된다.
며칠 동안 함께 먹고 자며 함께 은혜받는 수련회는 수련회장에 도달하기 전까지 숱한 난관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설득에 설득을 거쳐 데리고 가기란 결코 녹록치 않다. 하지만 그 전쟁을 마치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격적인 승리의 깃발을 흔들 수 있었다.
함께 수련회를 다녀온 아이들이 달라진다. 웃음 소리도 커지고 시끌시끌하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점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고 있음을 본다. 정작 힘들어서 그 주 예배에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지만 수련회 후의 우리의 온도는 올라갔고 성장했음을 볼 수 있었다.
점점 빌드업 되는 공동체에 코로나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예배드리러 나오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멈출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겨났다. 많은 무성한 이야기들로 마음이 무거워지고 예배에 나오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갔다. 시작되는 코로나, 시작되었던 빌드업이 무너지지 않을까 싶어 내 마음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모든 게 다 어려웠고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고 길을 잃었다.
이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마음이 ‘긍휼’이었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일정 연령대 이상은 자주 쓰지만 다음세대 아이들은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말이다. 이 시대는 단어가 빨리 만들어지고 빨리 사라진다. 다음세대가 사용하는 말로 바꿀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긍휼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게 됐다.
‘가엽게 여겨 돌보아 줌’ ‘사랑으로 측은히 여김’ 등의 풀이가 있었다. 결국 긍휼은 본질적으로 ‘함께 있어 주다’라는 말로 뜻이 모아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엄중한 코로나 팬데믹 시국에 누군가와 함께 있어줄 수 있는 일들을 찾고 구하기 시작했다.
함께 사역했던 교사 한 분께서 제안을 했다. “청소년 부서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지만 환경이 다른 친구들을 도우면 어떨까요.” 대구에 있는 미혼모 시설인데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예배 시간에 이 부분에 대해 아이들과 나누었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상처받고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곤란을 겪는 이들. 그래서 마음이 위축되고 스스로를 가두며 외로움의 늪에 빠지는 이들.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긍휼의 마음을 나누고,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지만 함께 있어 주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 마음을 모아 한 주 뒤 헌금을 하자고 했다. 매주 아이들이 드리는 헌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긍휼의 마음을 나누고서 아이들의 마음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모아졌다. 평상시 드려지던 헌금에 비해 8~9배에 달하는 헌금이 모였다. 코로나로 무너질 것 같은 시간들이 함께 있어주는 마음으로 연결되다 보니 오히려 더 견고하게 빌드업이 이뤄졌다.
상황은 여전히 나빠지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함께 아픔을 연대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니 우리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헌금 생활도 바뀌었다. 자신의 헌금이 적어도 결코 하찮지 않음을, 진심을 담아 드린 헌금이 어딘가에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흐르고 있음을 마음에 새겼다. 이때 깨달았다. 긍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마 6:21)고 성경은 말씀한다. 이 말씀을 긍정으로 본다면 긍휼과 선교에 재정을 우선 사용하면 그곳에 우리 마음이 담기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공동체의 마음은 필리핀과 이집트 선교로 향하고 있다. ‘긍휼 헌금’이란 이름으로 매월 마음이 모아져 재정을 사용한다.
흔히 생각한다. ‘개척교회가 무슨 선교를 해. 주일 예배나 안 끊기면 감지덕지지.’ ‘일단 강단이 무너지지 않게 성도들 붙들어 두고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아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다.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마음으로 향하는 곳에 부족한 물질까지 채워주신다. 그곳에 마음과 물질이 전해지고 보물 같은 진리와 복음이 전달된다. 그게 기적과도 같은 하나님의 섭리다.
재정 원칙을 생각하면서 올 여름 일본 선교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단을 알렸다. ‘교회에서 왕복 비행기표를 지원합니다.’ 예상대로 교회가 떠들썩해졌다. 이내 팀이 꾸려졌다. 10명이 선교팀을 이뤄 오는 8월 오사카로 떠나기로 했다.
소식을 듣고 우리보다 4개월 먼저 개척하신 목사님께서 동행할 수 있을지 연락을 주셨다.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함께 선교 여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10명에서 15명, 연합 팀으로 덩치가 커졌다. 연결과 연합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이 선교 현장에서 펼쳐질 것이다. 개척도 초보이며 선교도 초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백지 같은 선교의 첫 장에 무엇이 쓰여질 지 기대가 된다.
개척은 매순간 새로운 광야로 걸음을 내딛는 것과 같다. 보이는 것도 만져지는 것도 없다. 때로 춥고 때로는 무덥다. 모든 상황이 안정보다는 불안정으로 수렴한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두려움이 커져 끝내 ‘멈춤’ 또는 ‘되돌아 섬’으로 마무리되지 않게 하나님은 가장 하나님을 닮은 도구를 가슴에 던져 주신다.
개척자들과 개척 공동체에 던져주시는 하나님의 도구는 저마다 다를거다. 우리에겐 ‘긍휼과 선교’였던 도구가 어느 공동체엔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도구의 본질은 하나라는 것이다. 바로 사랑이다. 그 사랑이 비전이 되고, 비전이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구현해 낼 밀알로 심겨져 또 다른 사랑의 ‘비긴즈’를 뿌리 내릴 것이라 믿는다.(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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