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 오컬트 장르 '악귀' 왜 인기 있나

한승곤 2023. 7. 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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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드라마 시청률·OTT 랭킹1위
보이스피싱범, 가정폭력 등 범죄 다뤄
가해자들 숨지며, '속 시원' 반응들
김태리 '고달픈 청춘' 공감도

편집자주 - 지난 23일 처음 방송된 SBS 금토 드라마 '악귀'가 시청률뿐 아니라 OTT 랭킹까지 모두 잡았습니다. 주말드라마 대전에서 완벽한 승리입니다. 다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인기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악귀'에서 볼 수 있는 무서운 장면은 어디선가 뉴스로 접했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대사가 있는 '악귀' 인기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라마 '악귀'(극본 김은희, 연출 이정림)는 악귀에 씐 여자와 그 악귀를 볼 수 있는 남자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극 중 악귀는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들어 주면서 크기를 키우는 존재다. 이미 방송된 1·2화에서 볼 수 있듯, 악귀는 범죄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김은희 작가는 과거 형사물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범죄를 다뤘다. 이 드라마에서 1980년대에 머무는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이 무전기를 통해 21세기를 사는 박해영(이제훈 분)에게 미제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렇게 극 중에서 사건은 해결된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지만,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을 느꼈고, 그렇기에 '시그널'을 인생 드라마로 꼽는 사람들도 많다.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다시 법정에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악귀' 역시 비슷한 전개로 흘러간다. 악귀는 주인공 구산영(김태리 분)의 엄마 경문(박지영 분)에게 사기를 쳐 집 보증금을 갈취한 보이스피싱범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이런 결말이 나오기까지 범죄자는 경찰 조사를 받고, 금방 사회로 나온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극 중 구산영은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나지막이 내뱉는다.

SBS 새 금토드라마 '악귀' 포스터. 사진=SBS

'악귀'에서 다룬 보이스피싱 범죄는 계속 지능화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1,451억 원으로, 2019년(6,720억 원)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최근에는 대면 편취형 보이스피싱 비중이 증가하고 범죄 수법이 지능화하고 있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피해자 상황에 맞춘 속칭 '맞춤형 보이스피싱 시나리오'도 문제라고 한다.

그렇기에 1화에서 악귀에 당하는 보이스피싱범 장면은 잔혹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이 많다. '악귀' 1화를 시청했다고 밝힌 20대 대학생 박 모 씨는 "(보이스)피싱범이 사회적으로 정말 문제인데, 그렇게(죽어서) 속 시원했다"고 말했다. 또 "김태리가 20대의 심경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공부하고 알바하고, 거기에 피싱 일까지 당해 공감대가 컸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는 '악귀'는 첫 회 9.9%(이하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에 이어 2회 만에 두 자릿수(10%)를 돌파하며 동시간대 방송된 드라마 중 1위를 차지했다. OTT 플랫폼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풀린 스팸 트롤에서도 디즈니+ 한국 TV쇼 부문 1위에 올랐다.

드라마 '악귀' 스틸 컷. 사진=SBS

'악귀'의 또 다른 에피소드는 가정폭력이다. 가정폭력의 경우 귀신의 짓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비정한 부모들의 짓이라는 게 드러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2만2,046건으로 2019년 신고 건수 24만564건에 비해 감소했다. 다만 수치만으로는 가정폭력이 줄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가정 내에서 암묵적으로 발생하는 가정폭력이 있고, 또 은폐되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이른바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의 범인도 친모로 밝혀졌다. 피의자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출산한 아기를 곧장 살해한 뒤 시신을 자신이 사는 경기도 수원 소재의 한 아파트 내에 보관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결국 해당 장면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분노, 공포 등을 느끼며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범죄·스릴러·오컬트 장르에 현실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을 모티브로 해, 악귀보다 더한 범죄자들이 판을 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할 수 있게 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악귀'에게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범죄나 사건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현실감이 있다. 여기에 김태리, '청춘' 캐릭터를 넣어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게) 정서적으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실은 이런 범죄와 가장 가깝게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들도 작품에 녹아 있다. 그렇게 문제의식을 건드리고, 공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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