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삼식이에서 삼시세끼를 차리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권진현 2023. 7. 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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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과 아내의 채취업으로 싹 달라진 하루 일과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권진현 기자]

임무교대

우리 각자의 역할은 명확했다. 나는 돈을 벌고, 아내는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아내는 결혼 전까지 보육교사였지만, 가사와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 별 탈 없던 일상은 갑작스러운 남편의 육아휴직 선언으로 변화기에 접어들었다. 아내가 보조교사로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부부의 포지션이 바뀌게 되었다. 

직장인이 아닌 주부모드의 삶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의 등원과 하원을 챙기고, 세탁기와 건조기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빨래는 완성되었다. 매일 매트를 닦고 설거지를 하며 쓰레기 분리수거를 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첫째의 공부를 가르쳐주었다. 둘째와 놀이터에서 1시간씩 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한 가지만 제외한다면. 

"해도 해도 끝이 없노"

삼시세끼를 차리던 아내는 가끔 푸념하곤 했다. 매일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외롭고 고된 일이었다. 때마다 차려 나오는 밥을 먹는 것과 그것을 직접 준비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직장인인 나는 이런 것을 알지 못했다. 저녁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 그저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외근을 하며 밥을 사먹는 게 일상이었던 내가 어느덧 오늘은 무엇을 해먹을지 고민하고 있다. 아내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삼식이(아내가 차려주는 세 끼를 먹는 남편을 이르는 말)였을 내가 삼시세끼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렇게 40 평생 라면과 계란프라이 외에는 요리 경험이 전무했던 나의 생활요리가 시작되었다.
 
 돼지 앞다리살과 별도 구매한 양념소스를 활용해서 만든 두루치기. 약간의 야채만 있으면 손쉽게 만들 수 있다.
ⓒ 권진현
 
삼식이 아빠의 도전

혼자 있을 때는 끼니를 때우는 것이 어렵지 않다. 재래시장과 편의점, 밀키트, 배달음식 등 사방에 먹을 것이 천지다. 굳이 내 손을 거치지 않아도 손쉽게 먹을 수 있다. 덜 건강하고, 비용이 더 들 뿐.

하루에 한 번, 저녁밥은 직접 준비해야 했다. 1년 365일 아이들에게 비엔나소지지만 구워줄 수는 없었다. 비싸고 자극적인 외부 음식을 매일 사서 먹는 것도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퇴근 후 피곤해 하는 아내에게 저녁식사 준비를 맡길 수도 없었다.  

유튜브를 검색했다. 요리하는 유튜버가 너무 많아서 어떤 영상을 봐야 할지를 먼저 선택해야만 했다. 내가 정한 기준은 3가지였다. 최소한의 재료로, 쉽게, 빨리 만들 수 있는 것. 3가지를 만족하는 유튜버를 찾은 다음 하나씩 따라 해보기로 했다. 

모르는 것이 많고 생소했지만 어렵다고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요리의 첫 단계는 재료 확인이었다. 재료를 준비하면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을 맞추는데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원재료는 무엇인지 천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재료가 준비되면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종류별로 야채를 다듬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재료를 눈에 보이게 다 끄집어내고, 레시피를 수 차례 확인한 후 제조에 들어갔다. 

요리는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시행착오가 없지도 않았다. 정확히 계량하지 않고 대충 만든 음식은 자주 남거나 부족했다. 팬을 다 태워먹거나 간 조절 실패로 너무 짠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작은 냄비에 이것저것 잔뜩 욱여넣고 팔팔 끓이다가 사방으로 내용물이 튀었을 때는 앞이 캄캄했다. 

니들이 가사를 알아?

"뭐 했길래 싱크대가 이 모양이고?"

끙끙대며 음식을 만들고 나면 부엌은 항상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음식을 하면서 아이들을 케어하고, 동시에 설거지도 했다. 눈과 손은 음식을 향해 있는데, 입과 귀는 항상 아이들을 향해 열려있었다. 어떤 음식을 하더라도 변수가 없었고, 음식의 완성과 동시에 싱크대는 깨끗해져 있었다. 

끝이 없는 가사노동은 티도 안 나는 업무이지만 그렇다고 건너 뛸 수도 없다. 아이를 돌보고 청소를 하며, 세 끼 식사를 준비하고 크고 작은 온갖 일들을 꾸역꾸역 하던 일상은 곧 아내의 삶이었다.
 
 각종 야채를 썰어 밥과 함께 볶아 먹는 야채볶음밥.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다.
ⓒ 권진현
 
아내는 육아를 포함한 집안일을 묵묵히 해치웠다. 보수도 없고 그렇다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하지만 단 하루도 빠져서는 안 될 가사를 도맡았다. 평소 깔끔한 성격의 아내는 집이 지저분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덕분에 항상 쾌적한 환경에서 지낸다. 10년이 넘도록 같이 살았는데, 몇 달을 쉬면서 이제야 깨닫는다. 아내는 프로 주부였다. 

식어빠진 음식과 너저분한 싱크대를 보며 생각했다. 아이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좋아할까? 요리한답시고 괜히 집안을 어지럽혀서 아내가 싫어하지는 않을까? 어차피 몇 달 뒤면 다시 일을 하게 될 텐데, 괜히 오버하는 것은 아닐까? 

"아빠, 더 먹고 싶어."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아내와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가족을 보며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자라는 것을 느꼈다. 돈을 버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좁은 부엌에서도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었다. 
 
 맵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간장떡볶이를 만들어 보았다.
ⓒ 권진현
 
요리를 통해 얻은 것들

"나온나."

요리에 여전히 서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가 야채를 써는 모습을 아내가 보기라도 할 때면, 어김없이 식칼을 빼앗아간다. 아내의 분노의 2배속 칼질을 보면서, 더 노력해야겠다는 반성과 다짐을 한다.

나와는 도통 상관 없던 영역인 요리에 도전하며 가장 먼저 얻은 것은 성취감이었다. '나도 음식을 만들 수 있구나,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인생의 동반자였던 인스턴트, 배달 음식과 자연스럽게 거리두기를 하게 되었다. 라면을 끓이는 대신 계란과 대파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계란볶음밥을 먹고, 비싼 샌드위치를 사먹는 대신 계란과 감자를 삶아 직접 속재료를 만들어 먹게 되었다. 할 줄 아는 음식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단조롭던 식단이 다채롭게 변해갔다.
 
 감자와 계란만 있으면 속재료를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 권진현
 
가족과의 친밀감 형성은 덤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야채볶음밥은 매주 한 번씩은 만들고 있다. 야채를 다듬고 일일이 볶으면 1시간은 족히 걸리지만, 맛있게 먹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용돈과 장난감을 쥐어주며 아이들을 달래주던 나는 이제 요리를 통해 아이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선다. 육아휴직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재능을 발견한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 group 》 육아삼쩜영 : https://omn.kr/group/jaram3.0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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