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 조금씩 이상... 튀어도 괜찮아요"

백채원 2023. 7. 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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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퀴어 프렌들리 비건 타투이스트 우디 "사회의 시선에 몸을 가두지 마세요"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백채원, 이하은 기자]

작년 7월은 유난히 뜨거웠고 습했다. 한낮 최고기온이 33도, 일강수량이 34mm에 달했던 어느 날 서울광장에선 1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잔디밭에서 춤을 추거나 여유를 즐겼다. 3년 만에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다시 열린 것이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반대 집회의 고성을 등진 채 타투 스티커를 건네며 '자유'를 말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퀴어 프렌들리 비건 타투숍, <업스테어 스튜디오>의 타투이스트 우디다.
 
▲ 업스테어 스튜디오의 오너, 우디 작가 우디 작가를 소개하는 사진이다.
ⓒ 본인제공
 
그가 작업하는 장르는 올드스쿨 타투다. 영국의 뱃사람들이 멀리 두고 온 여인을 그리워하며 몸에 이름을 새긴 것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무사와 안전을 기원하는 타투는 오랜 시간 동안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염원이 됐다.

부적에 가까운 이 타투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희망이, 인생의 항로를 바꿀 용기가 됐다고 말하는 이가 바로 타투이스트 우디다. 그는 퀴어퍼레이드로 자신을 이해했고, 타투로 자유를 경험했으며, 비건으로 해방을 알리게 됐다고 했다. 우디 작가를 5월 22일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타투, 내 몸을 사랑하는 방식이 되다

20대 초반에 처음으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후 우디 작가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님"을 확신했다고 한다. 자신이 퀴어임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가 유별난 사람이라 느껴질 만큼 그의 주변엔 늘 차별이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머리가 너무 짧다, 너무 보이시하게 다닌다, 쟤는 남자친구 사귀는 거에 관심이 없다 등 제 정체성을 마음대로 운운하며 비정상성으로 치부하는 모습이 환멸 나더라고요. 나중에는 연기도 했어요. 남자친구가 있는 것처럼, 사실 긴 머리였는데 사연이 있어 자른 것처럼요."

다름에 대한 이해의 부재는 정상과 비정상을 무 자르듯 갈라냈고, 그를 부정한 존재로 몰아세웠다. 수많은 차별에 무덤덤해지려던 그에게도 '왜 내가 퀴어일까' 자문하며 자기혐오를 쌓았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 가본 퀴어퍼레이드에서 "내가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2016년 퀴어퍼레이드, 차별과 혐오에서 벗어나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용기를 내고, 소리 높여 자유를 외칠 수 있었던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남았다. 

타투이스트가 되기로 마음먹기 전까지의 모습이 마치 '길을 잃은 것 같았다'고 그는 기억했다. 미술을 배워본 적이 없었던 그는 어떻게 타투이스트의 길을 걸어가게 됐을까.

"저는 고등학생 때 소위 말하는 '만화책 잘 따라 그리는 친구'였어요. 미술에 뜻을 두려던 적도 있었으나 입시 미술이 제게 맞지 않아 꿈을 접었죠. 그 다음으로 관심을 가진 전공이 영상 예술이었고 그래서 광고홍보학과를 갔어요. 입학한 후로 대학 생활을 착실하게 해나갔어요. 부모님이 원하시던 대학교에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도 받았죠.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이 길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내가 이 일을 하면 과연 즐거울까?'를 생각해보니 제 대답은 아니었어요. 하필 그때가 주변인들에게 한창 연극을 하던 때라... (웃음)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정말 충동적으로 타투숍을 찾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처음 타투를 받았는데 엄청난 해방감으로 다가오더라고요."
 
▲ 업스테어 스튜디오의 우디 작가 타투 작업을 하고 있는 우디 작가의 모습이다.
ⓒ 본인제공
딱 한 번의 일탈은 행복해지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 해방감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우디 작가는 "타투라는 수단을 이용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몸에 직접 새기며 의지를 표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처음 받은 타투가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 이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충동적인 결정이긴 했죠.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까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오히려 홀가분해졌달까요. '타투 왜 했냐'고 물어보면 하고 싶어서 했다고, '누구 이름이냐'고 물어보면 여자친구 이름이라고 답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지금도 그렇지만 타투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엇나간 사람'. '좀 튀는 사람', '평범한 일상을 살지 않는 사람'과 같은 이미지를 갖잖아요. 그래서 처음엔 저도 괜히 타투 받아서 나중에 취직할 때 해가 되는 건 아닌지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왜 내가 이런 거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사회가 커밍아웃을, 타투를 원하든 원치 않든 그건 더 이상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좇는 것보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그에겐 더 우선이었다.

퀴어 프렌들리 비건 타투숍, 거창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면 그가 운영하는 퀴어 프렌들리 비건 타투숍 '업스테어 스튜디오'는 어떤 지향점을 담고 있을까. 

"어쩌면 '비건 타투숍'이라는 것도 그냥 말을 한 마디 더 얹었을 뿐일 수도 있어요. 옛날 타투 잉크는 동물의 뼈를 갈아 만든 탄화골근을 재료로 사용해서 대부분 논비건이었죠. 근데 최근에 나오는 잉크들은 대부분 비건이에요. 다만 윤활제나 전사용액, 애프터케어를 위한 크림처럼 타투 후 부가적으로 사용하는 제품들이 논비건인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이런 소소한 소모품들을 신경 써주면 비건 타투가 가능해집니다. 여기에 저희는 랩이나 잉크 컵과 같은 일회용품을 생분해성 제품으로 구매해 사용해요.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죠?"

비건 타투숍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냐는 물음에 그는 현실과 타협하고 싶은 순간이 때론 생긴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죠. 제가 우스갯소리로 '비건 택스(Vegan tax)'라고 그러거든요. (웃음) 비건 제품들은 이상하게 비싸잖아요? 타투도 마찬가지예요. 비건 재료가 논비건 재료보다 2배 정도 비싸요. 그래서 사실 스튜디오 개업한 이후 2~3년 정도는 적자였어요. '이걸 계속 이어갈 수 있을 만큼의 신념인가?' 너무 힘드니까 이런 생각도 했었고요. '그래도 비거니즘의 가치를 알리려고 비건 타투숍을 열었던 거야' 하며 되새겼어요. 지금은 조금씩 저희 숍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내 신념이 틀리진 않구나' 싶죠."
 
▲ 업스테어 스튜디오의 우디 작가 전사 작업 중인 우디 작가의 모습이다.
ⓒ 본인제공
 
'여성', '퀴어', '동물'에 대한 혐오가 없는 타투숍을 위해 우디 작가와 그의 동료들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모두가 안전하고, 자유롭게 타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업스테어 스튜디오에는 몇 가지의 규칙이 있었다.

"저희 스튜디오는 '전작업자가 퀴어 또는 앨라이(Ally: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사람)'로 구성되어 있어요. 고객이 퀴어라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차별을 받아선 안 되니까요. 또 숍 안에서만큼은 '육식하지 않기' 그리고 'SNS에 육식 전시하지 않기'도 있어요. 대신 스튜디오 안에는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비건 음식이나 간식을 늘 마련해둡니다. 이 밖에도 '혐오 표현이 들어간 발언은 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업스테어 스튜디오의 규칙이에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저희의 소신과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누구도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우디 작가에게 힘든 점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그는 '손님에게 되려 혐오적인 발언을 들었던 경험이 있었다'라는 뜻밖의 이야기가 돌아왔다. 

"사실 저희가 역으로 혐오적인 표현을 들은 적도 많아요. 그 어떤 손님도 차별과 혐오 발언을 듣지 않도록 편안한 환경을 마련하고자 신경 썼는데, 오히려 저희가 혐오 발언을 들은 거죠. 희롱하고 혐오하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저도 사람인 탓에 긴장을 해요.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할까 말까', '앞으로 이 손님과 여러 번 더 만나서 작업을 이어가야 할 수도 있고 이 고객과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요. '과연 말하는 것이 맞을까' 속으로 잠시 고민하기도 했어요. 근데 '할 말은 하자'라는 느낌으로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대부분 죄송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종국에, 그가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에 있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면 '남들 한 명 한 명도 다 다를 것'이란 거다. 우리들의 삶도 저마다 다른 모양을, 별난 구석을 갖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사람은 다 조금씩 이상하거든요. 이상함을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르잖아요. 애시당초 기준 자체가 모호해요. 정상적인 것, 평범한 것도 누가 만든 범주인지 몰라요. 주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튀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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