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 막힌 바이든 정책…민주당 역풍 기대, 공화당도 촉각

김형구 2023. 7. 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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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건물에서 대법관들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부임 후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클라렌스 토마스 대법관, 존 로버츠 대법관(대법원장), 새뮤엘 앨리토 대법관,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윗줄 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닐 고서치 대법관, 브렛 캐버노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AP=연합뉴스

보수 성향이 다수인 미국 연방 대법원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역점 정책이나 민주당의 이념 지향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최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미 연방 대법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에 대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6대3 의견으로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해당 제도는 연간 소득 12만5000달러(부부 합산 시 25만 달러) 미만의 가구를 대상으로 한 사람당 최대 2만 달러까지 학자금 채무를 면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던 것을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구체화한 일종의 승부수였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한 6명의 대법관은 행정부가 총 4300억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 앞서 의회 승인이 필요하며 독자적 권한이 없다고 했다. 반면 3명의 소수의견을 대표집필했던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대법원은 (예산)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4000만 미국인이 혜택을 받지 못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 별도 성명에 이어 긴급 연설을 통해 “대법원 결정은 잘못됐으며 실수”라고 지적한 뒤 “우리는 고등교육법에 근거해 교육부 장관이 특정 조건의 학자금 대출을 면제하도록 할 것”이라며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학자금 대출 탕감을 이뤄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연방 대법원은 이날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 서비스 제공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결도 내렸다. 한 웹 디자이너가 종교적 이유로 동성 커플의 작업 요청에 응할 의사가 없는데 주(州) 법에 따라 벌금을 부과받는 건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원고 손을 들어줬다. 앞서 1960년대부터 이어진 미 대입 정책의 근간 중 하나로 흑인ㆍ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을 우대해 온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전날 대법원 위헌 결정이 나와 큰 파장을 일으킨 데 이어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는 판결이 속출한 것이다.


바이든 “대법원 결정은 잘못”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미 대입 소수인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연방 대법원의 위헌 결정을 비판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강경하게 대법원을 비판했다.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결정에 “비정상적 법원”이라고 했고, 학자금 대출 탕감제 및 동성 커플 작업 거부 관련 판결에는 각각 “헌법을 잘못 해석했다. 대법원 결정은 잘못됐으며 실수” “성소수자에게 더 많은 차별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에서도 격앙된 반응이 나온다. 당 일각에선 “법원이 위험하다. 즉각적인 대법원 개혁이 필요하다”(자말 보우먼 하원의원)는 사법 개혁론이 나왔다.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도 “MAGA(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구호)가 장악한 대법원”이라는 수위 높은 표현을 써 가며 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보수 성향 대 진보 성향 대법관이 6대 3으로 보수 우위 구도가 된 대법원이 민주당의 2024년 대선 전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대법원은 로버트 대법원장을 비롯해 클래런스 토마스, 새뮤엘 앨리토, 닐 고서치, 브랫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등 6명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모두 공화당 대통령 때 임명됐다. 진보 성향은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3명이다. 이들은 모두 민주당 대통령 때 임명됐다.


민주당, ‘낙태권 폐기 역풍’ 재현 기대


미 정치권의 시선은 대법원발 변수가 내년 대선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로 향하고 있다. 대법원의 보수 성향 판결이 오히려 민주당과 진보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다. 앞서 지난해 6월 대법원이 낙태권을 인정한 기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하자 여성 유권자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지지층이 뭉치며 5개월 뒤 치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비교적 ‘선방’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 있었다. 이에 따라 최근 굵직하고 이념적 색채가 강한 사안에서 잇따라 나온 보수적 판결이 ‘어게인 2022’를 만들지 관심이 모아진다.

민주당 일각에선 기대 섞인 분위기가 없지 않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하원 내 아시아태평양 코커스 의장을 맡고 있는 주디 추 민주당 의원은 대법원의 학자금 대출 탕감 무효화 판결과 관련해 “이 결정은 지역 사회를 위한 고등교육의 꿈이 가로막힐까 우려하는 유권자들을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맞불 입법도 검토하고 있다. 대학이 동문 자녀를 우대하는 ‘레거시 입학’을 중단시키는 방식의 대안 입법을 고려 중이다. 바비 스콧 민주당 하원의원은 “대법원 판결로 속이 쓰리겠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것임을 알리는 캠페인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민주당이 대법원의 특정 판결에 맞서 싸우는 데 정치적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보수적 법원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을 결집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공화당도 흑인·라틴계 여파 촉각


민주당 일각에선 그동안 어퍼머티브 액션 등 인종 문제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중산층 강화 등 계층 이슈에 더 집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모든 민주당원은 어디로 사라졌나』의 저자 루이 테세이라는 “이번은 민주당이 ‘(인종ㆍ민족 등에 기반한) 정체성’ 이슈에서 궤도 수정을 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라고 말했다.

공화당도 최근 대법원 판결이 유권자 민심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내 일각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흑인·라틴계, 중산층 등 전통적 취약 지대의 당 지지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을 지낸 마이클 스틸은 “흑인들에게 사실상 기회를 빼앗은 판결 이후 공화당이 흑인 사회에 다가가는 것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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