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접종기록 있어도 추적 어렵다..."불법체류 부모 그림자 아기"
감사원이 지난 22일 경기 수원시에 통보한 미신고 출생 아동의 보호자는 31세 중국 국적의 남성 S씨였다. 아동의 성별란에는 표기가 없어 남아인지 여아인지도 알 수 없었다. 입건 전 조사에 착수한 경기 수원중부경찰서와 시는 S씨가 살고 있다는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의 한 공동주택을 찾았으나 내국인 부부가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S씨의 행방은 묘연했다.
수원출입국외국인청에 S씨에 대한 신원 조회를 요청하고 S씨 소유로 추정되는 휴대전화 번호를 확보해 전화를 걸었지만 엉뚱한 외국인이었다. 이 사건을 이송받은 경기남부경찰청 여청수사대는 S씨가 중국 국적자가 아니고 캄보디아 국적의 30대 남성으로 동일 국적의 여성 사이에 지난 2019년 2월 아기를 낳은 뒤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안성시에 거주한 베트남 국적의 N(35)씨도 출산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이른바 미등록 아동의 보호자로 분류됐다. 안성시 수사 의뢰를 받은 경찰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본부와 항공사를 통해 N씨가 2015년 1월 출산한 여아를 같은 해 N씨의 지인이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확인했다.
외국인 미신고 출생 아동 소재 파악 ‘산 넘어 산’
경기남부청이 미신고 출생 아동 관련 수사한 사건 12건 중 외국인이 보호자인 사건은 총 3건이다. 이중 아동의 소재가 파악돼 종결된 2건 외 태국 국적 여성의 신원을 확인하고 2015년 5월 출산한 아기에 대해선 보호자 진술 등을 토대로 소재를 확인하고 있다.
내국인의 출생 미신고 아동의 소재 확인은 대부분 ‘시간 문제’였다. 전입·전출 신고와 현장 탐문 등을 통해 수사 개시 당일 대부분 행적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의 경우 보호자부터 신원 정보가 불명확해 추적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일선 수사팀의 하소연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감사원에서 시에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외국인 이름과 등록번호로 출입국 당국에 신원 조회를 해서 한국 내 주소를 찾아가 봐도 이미 이사한 지 한참 지나 행적을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번 사건 관련 외국인 보호자의 아이들은 모두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뒤 당일 B형 간염 백신을 접종하면서 임시 신생아 번호를 부여받았지만, 부모가 미등록외국인(불법체류자) 신분이라 보호자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한국에 머무를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미등록외국인의 자녀는 부모를 따라 국적도 없이 존재 하나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아동’으로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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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신고할 순 있지만…말장난”
법무부가 관리하는 만 19세 이하 미등록외국인의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5078명이다. 문제는 이 통계가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 국적의 출생 미신고 아동이 아니라 국외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들어온 미등록외국인의 숫자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미등록외국인 아동에 대한 공신력 있는 집계는 없다.
미등록외국인이 한국에서 출산한 자녀라고 해서 출생 신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 예규에는 행정관청에 신고하면 접수증을 신고자에게 교부하면서 이 접수증이 어떠한 공적 증명력도 가지지 않는다고 설명한 뒤 ‘특종신고 서류편철장’에 보관한다고 되어 있다. 신고는 가능하나 수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진혜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는 “외국인이 출생신고를 할 수는 있다는 게 말장난 같지만, 누구든 신고는 할 수 있도록 해둔 것”이라며 “출생 신고 이전에 임시 신생아 번호를 받을 때부터 보호자의 주민등록번호, 외국인등록번호가 필요한데, 외국인등록조차 안 된 엄마라면 임시 신생아 번호도 아기에게 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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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외국인 출생 아동 등록제 법안 발의
국회는 지난 15일 외국인아동의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했다. 국내에서 출생한 모든 외국인 아동이 부모의 법적 신분과 관계없이 출생 등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부모의 법적 지위와 관계 없이 모든 아동에 대한 출생신고를 보장하라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등의 국제 사회 권고를 받아들이고 외국인 출생 아동의 출생 등록될 권리를 보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 부여와는 무관하다.
소 의원은 “출생 신고가 누락돼 희생되는 국내 아동들의 안타까운 피해 사례에 비춰볼 때, 존재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미등록 이주 아동의 피해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제정법은 대한민국 법질서 밖에 있는 외국인을 법질서 안으로 포섭해 보편적 인권 가치를 실현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안전에도 기여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 형사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는 30일 기준 출생 미신고 보건복지부 전수조사와 관련해 지자체 협조요청과 수사 의뢰 등 95건을 처리하고 있다. 경찰은 수원 냉장고 영아 살해 사건 등 아동 8명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했으며, 아동 13명의 소재를 확인하고 79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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