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망한 동독 전철 밟나…남북관계도 외무성에서 담당?
동독, 체제경쟁서 패배하자 '2국가
병존' 노리고 동서관계 외무부 처리
서독은 '내독부'에서 처리해 대조적
북한이 대남(對南) 관계도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담당하는 외무성에서 처리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거 동독이 서독과의 관계를 외무부에서 처리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상 체제 경쟁에서 패배했음을 인정하고 '2국가 체제로 병존'하려는 의미였으나 끝내 흡수통일을 당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북한은 전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대남 관계를 전담하는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나 통전부(통일전선부)가 아닌 외무성 명의로 발표했다.
김성일 북한 외무성 국장이 담화를 통해 "남조선의 그 어떤 인사의 방문 의향에 대해 통보받은 바 없고 알지도 못하며 또한 검토해볼 의향도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며 "금강산 관광지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분이며, 우리 국가에 입국하는 문제에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현 회장의 방북 시도를 북한이 거부한 것이야 대수로울 게 없지만, 발표 주체를 놓고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대북(對北) 관계만은 외교부가 아닌 통일부에서 전담하듯, 북한 또한 그간 대남 관계는 통상적으로 조평통이나 통전부를 통해 발표해왔는데 이번에는 외무성이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를 놓고 북한이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다른 외국과 동일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재정립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이번 외무성 명의 담화에서 '아태평화위를 통한 초청장 발송'이라는 그간의 방북 절차를 단호히 부인한 것에서도 이런 조짐이 읽힌다. 앞으로는 일반적인 타국의 외국인들처럼 우리 국민도 방북을 위해서는 북한의 입국사증(비자)을 발급받는 절차를 밟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북한의 움직임은 구 동독과 비슷한 모양새라 주목된다.
서독과 동독은 둘 다 유엔에 개별 가입했으나 서독은 독일 전체를 주권이 미치는 영역으로 보고 동독과의 관계는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독일 내부의 특수 관계로 간주해, '동서 관계'를 외무부가 아닌 내독부(Bundesministerium für innerdeutsche Beziehungen)에서 처리했다. 내독부가 바로 우리의 통일부에 상당한 조직이며, 1991년 독일 재통일 이후에야 폐지됐다.
반면 동독은 동서 관계도 다른 외국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외무부에서 처리했다. 서독과 동독 간의 군사분계선도 서독은 '국경'이라는 점을 부인해 전투경찰이 담당하면서 "여기는 독일의 끝이 아니며, 저 너머 땅도 독일"이라는 팻말을 세워놨으나, 동독은 국경경비대(Grenztruppen)에서 관할했다.
동서 관계를 처리하는 서독과 동독의 상반된 태도는 체제 경쟁의 승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서독이 '라인 강의 기적'을 거치며 국력이 수직 상승하자, 동독이 독일 내부의 체제 경쟁을 포기하고 '2국가 체제'로라도 연명하기 위해 서독과의 관계를 일반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재정립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 당하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남북 관계를 일반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와 같이 외무성에서 처리하려는 북한의 움직임이 구 동독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는 관측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김여정이 재작년에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조평통을 정리하는 문제'를 언급한 이후, 조평통의 움직임이 전혀 관측되지 않고 있다. 통일부에 대응하는 기관인 조평통이 폐지됐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조평통을 아예 없애고 남북 관계도 일반적인 외국 관계처럼 외무성에서 처리하려는 것이라면, 이는 동서 관계도 외무부에서 처리했던 동독의 전철을 밟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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